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운현궁 양관(사적), 일제가 흥선대원군 일가에 지어준 서양식 저택

운현궁 양관(洋館)은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의 저택으로 일제가 한일합방 이전인 1907년도에 지어준 건물이다. 원래 이 곳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의 뒤뜰에 해당하는 곳으로 별당격인 아재당과 정자인 영화루, 은신군.남연군의 사당이 있었던 자리로 이들 건물들을 헐고 일제가 한일합병에 앞서 왕실인사를 회유하기 위해서 만들어 준 것으로 보인다. 이준용은 흥선대원군의 장손으로 여러차례 국왕을 추대되었던 인물이다. 일제가 을사늑약 이후 고종을 압박하기 위해 이 건물을 일본에서 귀국한 이준용에게 지어주었다. 이 건물은 그후 의친왕의 차남이 이우의 소유가 되었다가 해방후인 1946년부터 덕성학원에서 소유하게 되어 현재는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행, 총독부청사 등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건축했던 많은 서양식 건축물들과 비슷하게 바로크 건축양식을 모방해서 만든 건물로 외형적으로 화려하면서 곡선이나 타원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의 건축시기 또한 비슷한 양식의 건물에 비해서 이른 시기인 1907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공공기관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관 출입문을 마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돌출되게 지어졌다.

<운현궁 양관(사적)>

구한말 청나라를 비롯하여 여러차례 고종을 폐위하고 이준용을 국왕으로 옹립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이준용은 을미사변 이후 일본으로 쫓겨났다가 고종이 폐위되고 순종이 즉위한 1907년에 귀국하였다. 이 건물은 그가 귀국하던 1907년에 일제가  황제였던 고종과 순종을 압박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운현궁 양관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운현궁 양관과 그 주변은 해방 이후 덕성학원이 소유하게 되어 지금은 운현초등학교와 덕성여대 평생교육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정자로 보이는 건물>

입구에는 정자 용도로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을 볼 수 있다.

<들어가는 길>

<앞에서 본 모습>

중앙에 현관을 두고 있는 2층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서양식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식이 많은 함석지붕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본 모습>

철근 콘크리이트로 지은 건물로 보이는데, 유럽 건물들을 모방하여 원형기둥들과 아치를 많이 사용하여 외관을 장식하고 있다. 정원을 감상하기 좋도록 한옥의 툇마루나 누마루처럼 베란다를 많이 두고 있다.

<현관 포치>

일제가 만든 공공기관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붕이 있는 현관 입구. 마차나 자동차를 현관에서 비를 맞지 않고 바로 탈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서양건축물에서는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는데, 유독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함석 등으로 만든 여러가지 장식이 있는 지붕>

<운현궁 양관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