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전통마을인 교촌마을이다. 조선중기 이후 경주최씨가 향교가 있는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크게 번창하여 집성촌처럼 보이는 마을이다. 경주향교를 중심으로 경주 만석군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댁을 비롯하여 교동법주 고택, 요석궁 등 대지주들이 살았던 저택들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집을이 모여 있다. 이곳은 통일신라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이 있던 곳이며 경주향교가 있어 교동 또는 교촌마을로 불린다. 신라 궁성인 반월성 서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삼국시대 김유신이 살았던 집터인 재매정을 비롯하여 월정교, 문천교 등 많은 역사유적이 주변에 있다.
<경주 교촌마을>
경주최씨 집안은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농업경영으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대지주였다. 조선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경주를 찾았으며, 최부자집을 비롯하여 교촌마을이나 향교 등에서 묵으면서 경주를 여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씨 집안은 유력 인사들을 접대하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겼으며,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집을 크게 지었던 것으로 보이다. 손님접대와 관련된 많은 일화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집안의 전통주인 교동법주는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경주 최부자댁 위상을 보여주는 큰곳간>
교초마을 최씨 종가인 최부자댁은 1700년 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가옥으로 99칸 규모의 대저택이었다. 저택은 사랑채, 안채, 문간채, 곳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남일대에서 손꼽히는 부호이지만 저택의 건물규모가 크거나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황태자시절에 서봉총 발굴에 참여했던 스웨덴의 구스타브 국왕도 이 저택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최부자댁 사랑채>
<안채>
<옛 절터 주춧돌을 재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주춧돌>
경주법주 고택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8세기 교촌마을 경주최씨 7대 최언경이 향교 옆으로 이사오면서 지은 집이다. 종가인 경주 최부잣집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작은댁이라 불린다. 이집은 최부자집에서 대로 빚어온 경주 교동법주를 계승하고 있다. 교동법주는 숙종 때 사옹원 참봉을 지낸 최국준이 처음 빚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최경이 2대째 기능보유자로 명맥을 잇고 있다.
<경주법주 명맥을 잇고 있는 작은댁>
<사랑채>
교촌마을에 있는 유명한 한정식 식당인 요석궁은 최부자댁 12대 최준의 동생인 최윤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밭가운데 댁’으로 불린다. 식당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부엌이나 광을 온돌방으로 바꾼 것 외에는 원래의 모습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식구가 많지 않은 일반적인 고택과는 달리 꾸준히 사용하고 있어 고택의 화려했던 시절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요석궁 사랑채>
<안채>
최부자댁에서 향교로 들어가는 길은 시골 골목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고택, 1970년대에 지어진 시골집, 최근에 크게 수리한 한옥 등 다양한 형태의 집들을 볼 수 있다.
<최부자댁에서 향교로 들어가는 길>
<솟을대문이 있는 집>
<전형적인 시골집>
<최근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이는 한옥, 교촌마을 체험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경주향교 외삼문>
경주향교는 통일신라 신문왕 때(682)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을 세웠던 곳이다. 현재의 향교는 조선 성종 때(1492)에 성균관을 본 떠서 다시 지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중건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이 있는 제향공간을 앞쪽에, 명륜당이 있는 강학공간을 뒤에 배치한 전묘후학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향교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신삼문이 문화재(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향교 제향공간>
<강학공간>
사마소(司馬所)는 교촌마을 동쪽 월정교 터에 있던 것을 1984년 마을 입구로 옮겼다. 사마소는 16세기 초 지방의 사마시 출신 젊은 유림들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대체로 관아 부근에 위치하여 지방관의 지방통치를 간섭하는 세력이 되었다. 조선중기 이후 서원이 지역여론을 장악하면서 타지역에서는 없어졌다. 경주를 찾는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경주 사마소>
사마소 부근에 있는 재매정(財買井, 사적)은 김유신 장군이 살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이다. 우물은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다. 교촌마을이 통일신라 귀족층 주거지였음을 잘 보여주는 유적지이다. 집터는 1993년에 재매정을 중심으로 주변 집터를 발굴,조사하였다.
<재매정(사적)>
<재매정 주변 집터>
<출처>
-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 경주 교촌마을 홈페이지,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