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탑동에 있는 경주 오릉(五陵, 사적)이다. 신라 궁성이었던 월성 서남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능역에는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 있는데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과 박혁거세의 왕후 알영부인이 묻혔다고 전해진다.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 봉토분으로 실제로는 이런 형태의 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에 등장한 무덤의 형태이며, 후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경주 미추왕릉이나 김해 수로왕릉 처럼 주요 성씨 시조 무덤으로 조선시대 이후 제단이 설치되는 등 성역화되어 있다. 조선 선조 이후에는 박씨 종친에서 제사를 주관하였다고 한다.
<경주 오릉(사적)>
앞쪽에 있는 1호 무덤은 높이 10 m로 큰 편이며, 뒷편에 높이 9 m의 2호무덤, 높이 7.2 m 표주박형태의 3호무덤, 높이 3.6 m의 4호 무덤, 높이 1.8 m의 5호 무덤이 있다. 후대 무덤의 형식이며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누구의 무덤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높이 10 m의 1호무덤>
<2호무덤, 3호무덤>
<표주박형태의 3호 무덤과 뒷편 안쪽에 있는 4, 5호 무덤>
혁거세거서간이 죽다 ( 4년 03월(음) )
61년(4) 봄 3월에 거서간이 승하(升遐)하였다. 사릉(蛇陵)에 장사 지내니, 담암사(曇巖寺)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누리가 생기고 남해차차웅이 죽다 ( 24년 09월(음) )
21년(24) 가을 9월에 누리[蝗]가 생겼다. 왕이 돌아가시니 사릉원(蛇陵園) 내에서 장례를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유리이사금이 죽다 ( 57년 10월(음) )
〔34년(57)〕 겨울 10월에 왕이 돌아가시니 사릉원(蛇陵園) 내에서 장례를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파사이사금이 죽다 ( 112년 10월(음) )
33년(112) 겨울 10월에 왕이 돌아가시니 사릉원(蛇陵園) 내에서 장례를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나라 성씨 중 박씨는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파사왕계를 제외하면 대부분 통일신라 말기 경명왕(54대), 경애왕(55대)의 후손으로 밀양.반남.고령.함양 등 전국 각지에 그 본을 두고 있다. 경주 오릉은 박씨들의 시조를 모신 곳으로 조선시대부터 성역화되어 넓은 능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조경도 잘 꾸며져 있다.
<경주 오릉>
오릉 앞에는 조선왕릉 정자각처럼 제사를 올리는 큰 건물이 세워져 있으며 봉분 앞에는 상석 등이 놓여 있다. 주위에는 소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나무들을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오릉 앞 제사를 올리는 공간>
<봉분 앞에 놓여진 상석과 간단한 석물들>
<오릉으로 들어가는 길>
<오릉 주변 숲>
숭덕전은 신라시조 박혁거세 제사를 모시기 위한 재실건물로 조선초 세종 때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영조대에 지어진 것이다. 그 앞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이다.
<경주 오릉 숭덕전>
시조묘를 세우다 ( 6년 01월(음) )
3년(6) 봄 정월에 시조묘(始祖廟)를 세웠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신라 종묘제의 시작 ( 6년 (음) )
제사(祭祀), 신라(新羅) 종묘(宗廟)의 제도(制)를 살펴보면, 제2대 남해왕(南解王) 3년 봄에 처음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묘당을 세워 사계절로 제사지냈는데, 친누이 아로(阿老)註 004에게 제사(祭祀)를 주관하게 했었다. (삼국사기 권 제32 잡지 제1 제사,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신라 오릉(新羅 五陵, 사적), 경북 경주시 탑동 67-1
이 능은 남산의 서북쪽에 해당되는 경주 평야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 무덤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赫居世王)과 제2대 남해왕(南解王), 제3대 유리왕(儒理王), 제5대 파사왕 (婆娑王) 등 초기의 박씨 임금 네 분과, 혁거세왕의 왕후 알영부인(閼英夫人)의 능으로 전해 온다. 내부 구조는 알 수 없으나, 겉모습은 경주시내 평지 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형태이다. 경내에는 혁거세왕의 제향(祭享)을 받드는 숭덕전(崇德殿)과 그 내력을 새긴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경주 오릉 능역 내에는 신라 시조 왕비 알영부인이 태어난 곳으로 전해지는 우물인 알영정(閼英井) 터가 있으며 그곳에는 이를 기념하는 유지비가 세워져 있다.
<경주 오릉 알영정 터>
알영이 태어나다 ( 기원전 53년 01월 )
5년(B.C. 53) 봄 정월에 용이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났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는데, 노구(老嫗)가 보고서 기이하게 여겨 거두어 길렀다.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성장하면서 덕행과 용모가 빼어나니, 시조가 그 소식을 듣고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행실이 어질고 내조를 잘하여 이때 사람들이 그들을 두 성인(聖人)이라고 일컬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 거서간,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신라시조왕비 탄강지(新羅始祖王妃 誕降) 알영정(閼英井)
알영정(閼英井)은 신라시조왕비 알영(英)부인께서 탄생한 곳이다. 기원전 69년에 한 노구(老區)가 이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우물가에 큰 용이 있어 놀랐다. 그 용 옆구리에서 귀녀가 탄생하기에 수양(修養)한바 용모가 단미(端美)하고 총명(聰明)·지혜(智慧)하여 시조왕비가 되었다. 신라 시조왕 재위(在位) 61년간 내보(內輔)가 지대하였고 권유농상(勸誘農桑)하고 무휼빈민(無恤民)하여 이성(二聖)으로 존경을 받았다. 천강성배(天降聖配)하였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 위키백과 2022년
- 삼국사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