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조양동에 있는 거북받침돌이다. 성덕왕릉에 100 m 떨어진 곳에 있는 성덕왕비(聖德王碑) 거북받침돌이다. 글자를 새긴 비몸과 머릿들은 남아 있지 않다. 성덕왕의 아들인 형인 효성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경덕왕 때(745년) 세워졌다. 경덕왕은 아버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성덕대왕 신종(국보)을 주조하기도 했다.
<경주 성덕왕릉 귀부(거북받침돌)>
거북받침돌은 목이 부려져 남아 있지 않다. 발은 앞으로 나아갈려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 무늬가 새져져 있으며 비몬을 올려놓았던 홈이 파여 있다. 당나라 능묘제도가 받아들여지면서 왕릉 앞에 세워졌던 비(碑)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불국사가 세워졌던 8세기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나다.
<정면에서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뒷에서 본 모습>
<앞발>
<뒷발>
<등에 새겨진 육각형 무늬>
<비몸을 올려 놓았던 자리>
<성덕왕릉에서 본 모습>
<신라 33대 성덕왕릉>
성덕왕릉 귀부, 경북 경주시 조양동 666
이 귀부는 신라 성덕왕(聖德王)의 능비에 세웠던 받침돌이다. 거북머리는 깨어져 없지만, 발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형상이다. 등에는 육각 귀갑(龜甲)무늬가 새겨졌고, 가운데에 비몸[碑身)을 꽂았던 네모난 홈이 파여 있다. 여기에 새겨진 거북 등무늬나 당초문은 8세기의 신라 왕릉에 건립된 귀부의 제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신과 머릿돌은 없어졌지만 경덕왕(景德王)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귀부는 6세기 이후부터 8세기 사이의 귀부 양식을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