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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효소왕릉, 신라 32대 효소왕

경북 경주시 조양동에 있는 신라 32대 효소왕(孝昭王, 재위 692~702년)의 능이다. 효소왕은 신문왕의 아들로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라 20년 정도 재위했으나 대부분 어머니 신목왕후가 섭정하였다. 시장을 개설하여 경제력을 확충했으며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고 제도를 받아들이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아버지 신문왕을 위해 황복사에 삼층석탑을 세웠다. 어린나이 죽었으며 동생인 성덕왕이 왕위를 이었다.

<경주 효소왕릉(사적)>

효소왕이 왕위에 오르다 ( 692년 07월(음) )
효소왕(孝昭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이홍(理洪) 또는 〔홍(洪)을〕 공(恭)이라고도 적는다.으로 신문왕(神文王)의 태자(太子)이다. 어머니는 김씨(金氏) 신목왕후(神穆王后)로서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의 딸이다. 당(唐)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사신을 보내 조문(弔問)·제사(祭祀)하고, 이어 왕을 신라왕(新羅王)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행좌표도위대장군(行左豹韜尉大將軍) 계림주도독(雞林州都督)으로 책봉하였다. 좌우이방부(左右理方府)를 고쳐 좌우의방부(左右議方府)로 하였는데, 이(理)란 글자가 〔왕의〕 이름자에 저촉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권 제8 신라본기 제8,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효소왕이 죽다 ( 702년 07월(음) )
11년(702) 가을 7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효소(孝昭)라 하고 망덕사(望德寺) 동쪽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8 신라본기 제8,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봉분은 높이 4.3 m, 지름 10.3 m의 원형 봉토무덤이다. 자연석으로 둘레석을 쌓았으나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성덕왕릉과는 달리 문인석, 사자장 같은 석물을 두지 않고 있으며 무덤 앞에 작은 혼유석만 있다. 봉분의 규모는 크지 않으며 특별한 장식이 없는 등 당나라 능묘제도를 받아들이기 이전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효소왕릉 봉분>

<성덕왕릉 거북받침돌 뒷편으로 보이는 효소왕릉>

<효소왕릉 앞 들판>

경주 효소왕릉, 사적, 경북 경주시 조양동 산 8
이 능은 신라 제32대 효소왕(재위 692~702, 김이공)이 모셔진 곳이다. 토함산 서쪽에 있는 형제봉의 동남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구릉 말단부 서쪽에 있다. 능은 밑둘레 57 m, 지름 15.5 m, 높이 4.3 m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봉토분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여 보호석인 둘레돌을 돌렸으나, 지금은 몇 개만이 드러나 있다.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쪽 가까운 곳에는 성덕왕릉(聖德王陵)이 있다. 왕은 시장을 개설하여 경제력을 확충하고, 당나라.일본과 문물을 교류하는 등 국력을 키우는 데 힘썼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