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동방동에 있는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 재위 839, 김우징)의 능이다. 신무왕은 원성왕의 증손으로 839년에 장보고의 힘을 빌어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 해에 병으로 죽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제형산(弟兄山) 서북쪽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이 무덤이 신무왕릉으로 알려져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경주 신무왕릉(사적)>
신무왕이 즉위하다 ( 839년 윤01월(음) )
신무왕(神武王)이 즉위하였다. 왕의 이름은 우징(祐徵)으로, 원성대왕(元聖大王)의 손자인 상대등(上大等) 균정(均貞)의 아들이며, 희강왕(僖康王)의 사촌 동생이다. 예징(禮徵) 등이 왕궁 안을 깨끗이 한 후, 예를 갖추어 그를 맞이해 즉위케 하였다. 조부 이찬(伊湌) 예영(禮英)을 혜강대왕(惠康大王)으로, 죽은 아버지를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어머니 박씨 진교부인(眞矯夫人)을 헌목태후(憲穆太后)로 추존하였다. 아들 경응(慶膺)을 세워 태자로 삼았다.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 궁복(弓福)을 감의군사(感義軍使)로 봉하고 식읍[食實封] 2,000호를 주었다. 이홍(利弘)이 두려워하여 처자식을 버리고 산속 숲으로 도망갔으나, 왕이 기병[騎士]을 보내 쫓아가 잡아 죽였다. (삼국사기 권 제10 신라본기 제10,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신무왕이 죽다 ( 839년 07월23일(음) )
〔원년(839)〕 왕이 큰 병으로 드러누웠다. 〔왕의〕 꿈에 이홍(利弘)이 화살을 쏘아 등에 맞았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등에 종기[瘡]가 났다. 이달 23일에 이르러 〔왕이〕 죽었다. 시호(諡號)를 신무(神武)라 하고, 제형산(弟兄山) 서북쪽에 장사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0 신라본기 제10,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봉분의 크기는 높이 3m, 지름 16m이며,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이다. 봉분의 바닥에는 둘레돌로 보이는 자연석이 노출되어 있다. 능은 낭산 사천왕사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
경주 신무왕릉, 사적
이 능은 신라 제45대 신무왕(839 재위)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무왕의 이름은 우징(祐徵)이고, 원성왕(元聖王)의 손자인 상대등 김균정(金均貞)의 아들이다. 흥덕왕(興德王) 사후에 왕위 쟁탈전에서 아버지를 도왔으나 패하여 청해진으로 도망하였다가 장보고(張保皐)의 군사를 빌려 민애왕(閔哀王)을 내쫓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제형산(弟兄山) 서북쪽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왕경의 동남쪽인 동방동에 있는데 능이 있는 구릉 동남쪽 산의 이름이 형제산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출처>
- 안내문, 경주시청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