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천현(果川縣)은 오늘날과는 달리 과천시, 안양시, 의왕시 대부분과 서울 동작구와 서초구 등을 관할하던 고을이었다. 이지역에는 고려시대 과주(果州)가 설치되었고 조선초 태종대에 종6품 현감이 고을수령인 과천현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 과천은 강남의 양재동, 사당동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충남, 호남 지역에서 출발한 대부분의 교통로가 서울로 연결되는 관문이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과천현감은 그 직위는 종6품으로 그리 높지 않지만 남태령을 통해 서울로 입성하는 수많은 교통로가 지나가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평양감사 등과 함께 지방관리 중에는 중요한 요직으로 정치.경제적인 이권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태령을 지키던 관리나 포졸들의 횡포는 당시 꽤 심했다고 한다. 오늘날 과천시는 조선시대 과천현의 현내면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1986년 과천시로 승격될 때까지 시흥군에 속해 있었다, 서울 남쪽 관악산과 청계산 사이를 흐르는 양재천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정부청사, 서울대공원, 경마장 등이 있는 전형적인 서울의 위성도시이다.
<과천현 관아터>
과천시 중앙동주민센터로 사용하고 있다. 주민센터 입구에는 이곳에 옛 관아터였음을 말해주는 오래된 고목들이 남아 있다.
<오래된 고목>
옛 과천현 관아는 과천시의 중심부인 중앙동주민센터에 있었는데 지금도 객사건물인 온온사를 비롯하여 관아에 있었던 크고 작은 노거수들이 남아 있다. 과천현 관아는 지방 관청건물이지만, 서울과 충청.호남지역과 연결되는 관문에 위치하고 있었던 까닭에 국왕의 능행, 온천행, 사냥행 등에서 잠시 쉬어가는 행궁의 기능도 있었기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서 관아의 규모가 컸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관아 객사인 ‘온온사’도 정조 수원 현륭원을 참배하면서 쉬어갈때 지어준 이름으로 정조가 친필로 현판을 하사했다고 한다.
<과천현 객사 건물인 온온사(穩穩舍)>
<오른쪽에서 본 모습>
건물은 정청 3칸, 양쪽에 동.서헌 3칸씩 두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객사건물이다. 과천현 관아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정조가 화성행차사 머물렀기때문에 행궁 역할도 했던 건물이다.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정청(正廳)>
<현판>
정청에는 ‘온온사(穩穩舍)’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정조는 화성 현륭원을 참배할 때 이 곳 과천현 관아에 머물면서 객사이름을 ‘온온사’라 짓고 친필로 현판을 하사했다고 한다.
<동헌>
공무로 여행하는 관리들의 숙소로 이용되는 동헌(東軒). 온돌방 2칸과 손님을 접견 할 수 있는 1칸짜리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관리 중 동반에 해당하는 문신들이 주로 머무는 숙소라 할 수 있다.
<손님을 접견할 수 있는 공간인 대청마루>
<무신들이 주로 사용하는 서헌(西軒)>
<툇마루>
과천 온온사(穩穩舍),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길
조선시대 과천현의 객사이다. 과천현의 치소가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조선초기이며, 이 객사는 조선 인조27년(1649)에 건립되었다.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 놓은 곳으로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이 전패를 향하여 절을 올렸다. 또한 공무로 벼슬아치들이 이 고을에 들렀을 때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객사는 고을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위치하며 건물도 격식을 갖추어 지었다. ‘온온’은 경관이 아름답고 몸이 편안하다는 뜻인데, 정조 14년(1790) 왕이 수원 현륭원에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이곳에 머무르면서 과천 동헌을 ‘부림헌’, 이곳을 ‘온온사’라 이름짓고 친히 편액을 썼던 것에서 유래한다. 정청 3칸이 중앙에 있고 좌우로 동.서헌이 각각 3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청 부분 지붕을 동.서헌보다 약간 높힌 전형적인 객사 건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원래는 현재의 중앙동사무소 자리에 있었는데 1986년에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출처: 과천시청>
<원래 객사가 있었던 자리에 들어선 주민센터>
<마당 한쪽편에 모아 둔 역대 과천현감 선정비>
과천지역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에 모았다고 한다.
역대 현감 비석군
이 비석군은 본래 시흥군 과천면 관무리 홍천말 249의 5번지 도로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 조선 정조6년(1782)에 건립된 현감 정동준의 비로부터 1928년에 세워진 변성환에 이르기까지 모두 15명의 비석이 보존되어 있다. 대부분의 비석은 장방형의 비좌에 비신을 갖춘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 과천현에 부임했던 역대 현감의 변화상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이 건립연대를 알 수 있어 당대에 유행했던 비석의 형식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라 생각된다. <출처:과천시청>
<마당 한쪽편에 볼 수 있는 옛 건물에 사용했던 석재들>
과천현(果川縣) 관아지
관천현의 관아는 조선초기 무학대사의 제자 열이 과주의 치소를 이 일대에 정하여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이 없어 당시의 관아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제왕의 능행, 온행, 사냥행 등을 수행하는 행궁의 기능과 지방관청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여 다른 곳의 관아보다 규모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천현 관아는 발견되는 석조유물과 노거수목으로 보아 현 온온사를 중심으로 한 관아지이었을 것이다. <출처:과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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