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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실경산수화] 경치를 스케치하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후원자의 유람길에 동행하거나 지인의 지방관 부임에 동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행을 나섰다. 경치는 현장에서 간략하게 초본을 그렸는데 경치의 특색, 화가의 눈에 처음 보이는 인상 등 핵심적인 부분을 스케치하였다. 전시에서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강세황, 김홍도, 정수영이 그린 풍경 스케치를 전시하고 했는데 실제 경치를 대하는 화가의 접근 방식 등을 살펴볼 수 있는데 스케치 자체로도 뛰어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극락암(極樂庵), 용추(龍湫), 실상사(實相寺), 문현(文縣)>,

<기행문>

<우금암( 禹金庵)>

부안여행스케치, 강세황, 조선 1770 ~ 1771년, 종이에 먹, 로스엔젤레스카우티미술관
전라북도 변산의 명승을 간략하게 그린 두루마리 그림이다. 강세황은 차남 강완이 부안 현감으로 부임하자 이를 계기로 변산 일대를 유람했다. 여행 경로를 따라 우금암, 문현, 상사, 용추, 극락암을 그렸고 그림 중간에 기행문을 썼다. 강세황은 용추 폭포에 이르기 위해 가파른 비탈길을 엄금엉금 기어올랐다고 적었는데, 그림에서도 경사가 심한 좁은 길로 표현하였다. 경물을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고 현장에서 느낀 전체적인 인상을 거칠고 단순하게 표현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금강산 유람 서화첩, 강세황, 조선 1788년경,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강세황은 장남 강인이 강원도 회양 부사로 근무하던 1788년에 회양과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이 여정에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산 실경을 그리러 온 김홍도, 깅응환 등이 동행하였다. 화첩에 수록된 일곱점의 그림 중 앞부분에 수록된 <백산>, <회양관아>, <학소대>, <의관령>은 강셍황이 김홍도 일행을 기다리며 회양에서 직접 본 경치를 그린 것이다. 특히 학소대는 강세황이 몇 번씩 올라, 그 곳에서 본 경치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장소이다. 강세황은 평담한 필치와 무기 있는 먹으로 실제 경치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해동명산도(海東名山圖)>는 김홍도와 김응환은 정조의 명을 받고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의 명승지를 먹으로 간략하게 그린 그림이다. 총 32면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방명, 명승지, 번호가 적혀 있어 그린 위치와 순서를 알려주고 있다.  마지막 <피금정>에 ‘六十’이 적혀 있어 60면 이상으로 추정된다.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포함하여 금강산에서 평해 월송정까지 명소 대부분을 국왕을 위해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10. 경포대(鏡浦臺), 강원지역 명승 스케치, 김홍도, 조선 1788년 이후,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11. 호해정(湖海亭)>

<12. 삼척 능파대(凌波臺)>

<15. 울진 망양정(望洋亭)>

<16. 문암(門巖)>

<18. 평해 월송정(越松亭)>

<19. 양양 낙산사(洛山寺)>

<24. 계조굴(繼祖堀)>

<17. 현종암(懸鐘巖)>

<28. 영랑호(永郞湖)>

<31. 해산정(海山亭)>

<32. 해금강전면(海金剛前面)>

<치폭(馳瀑)>

<36. 만물초(萬物草)>

<37. 옹천(甕遷)>

<38. 총석정(叢石亭)>

<43. 삼불암(三佛巖)>

<44. 백화암부도(百華庵浮屠)>

<60. 피금정(披襟亭)>

1788년 9월경,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홍도와 김응환은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의 명승을 그려오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 화첩은 여정 중에 그렸거나 그 직후 수정과 선별을 거친 초본을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붓과 먹을 사용해서 윤곽선 위주로 간략히 그렸으면서도 경물의 특징을 정확하게 포착하였다. 다양한 구도와 수준 높은 필법을 통해 김홍도가 정조에게 진상한 금강산 실경사수의 면모를 짐작해볼 수 있는 초본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한임강유도권(漢臨江遊圖捲)>은 문인화가였던 정수영이 한강과 임진강 일대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풍경을 간략하게 초안으로 그린 그림이다. 여행현장에서 즉석으로 자유분방하게 그린 그림으로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자신이 보았던 경치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재간정(在澗亭),  한강과 임진강 유람 스케치, 정수영, 조선 1796 ~ 1797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여주읍치(驪州邑治)>

<신륵사(神勒寺), 동대(東臺)>

<신륵사, 동대, 동적석(東積石)>

<휴류암(鵂鶹巖)>

“이 바위를 지날 때 홀연히 현과 피리 소리가 들려 그 소리를 찾아 배를 댔다. 고기 잡는 노인이 물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손으로는 해금을 타고 입으로는 풀피리를 불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며 술을 주고 드디어 함께 배를 타고 대탄에 있는 이상사 집으로 향하였다. 이 여행은 병진년(1796년) 여름, 동감인 이윤일, 임학이와 함께 물길을 거슬러 올라 청심루에서 노닐었을 때이다.”

<수청탄(水靑灘) 헌적별업(軒適別業, 여춘영의 별장)>

<수청탄(水靑灘)>

<흥원창(興元倉)>

<신륵사(神勒寺)>

<신륵사(神勒寺)>

<여주읍내(驪州邑內)>, 청심루(淸心樓),두멍암>

<용문산(龍門山)>, 추읍산(趨揖山)>

<고산서원(孤山書院)>

<미호(美湖), 꽃마을(花塢)>

<삼각(三角), 도봉(道峰)>

<수락산(水落山)>

<용당우(龍堂隅)>

<심씨정자(沁氏亭子)>

<우미천(牛尾川)>

한강과 임진강 유람 스케치, 정수영, 조선 1796 ~ 1797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한강과 임진강을 따라 배로 유람하며 바라본 경치를 사생한 그림이다. 문인화가였던 정수영은 종이를 이어 붙인 긴 두루마리를 가지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경치가 나타날 때마다 사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가는 잘 알려진 명승대신 자신의 시선이 머문 장소를 그렸다. 화면 곳곳에 써 넣은 글에서 정수영이 각 장면을 선택한 이유가 드러난다. 서툰 듯 즉흥적인 붓질과 옅은 채색은 여행의 현장감을 생생히 전달해 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금강산 사생 초본을 바탕으로 제작한 화첩, 정수영, 조선 1799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현장에서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린 금강산 실경산수화이다. 1797년 가을, 정수영은 한강 유람에도 동행했던 여춘영과 함께 금강산을 여행하고 초본을 그려왔다. 그 후 6개월에 걸쳐 금강산과 해금강의 경치를 그리고 기행문을 더하여 1799년에 이 서화첩을 완성했다. 펼쳐진 면에는 외금강에 위치한 구룡폭포를 ‘가까이서 본 경치’와 ‘마주 본 경치’가 각각 그려져 있다. 왼쪽 면의 ‘마주 본 경치’는 폭포 동쪽 반석에 앉아서 관찰한 것으로, ‘가까이서 본 경치’보다 조금 더 떨어진 위치에서 포착했기에 폭포 위쪽의 암석 등도 표현되었다. 구룡폭포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정수영의 남다른 관찰력과 개성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화가, 그곳에서 스케치하다.
이름난 경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쉽지 않았습니다. 도화서 화원은 업무에 매여 여러 날 자리를 비우기 어려웠습니다. 비용과 시간에 대한 부담은 문인화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후원자의 유람길에 동행하거나 자신 또는 지인의 지방관 부임을 기회 삼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화가는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 강산을 종이에 담았습니다. 현장에서 간략하게 그리는 초본에는 경치를 보는 화가의 즉각적인 반응이 담겨 있습니다. 풍경의 요점을 빠르게 잡아내 그리고, 틀린 부분은 수정하거나 먹으로 나타낼 수 없는 색채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또 장소의 이름과 함께 현장에서 겪은 일과 떠오른 감정을 화면에 써 놓기도 했습니다. 실경산수화의 초본은 화가의 시선을 생생히 증언하는 또 하나의 완결된 작품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홈페이지, 국립중앙박물관,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