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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실경산수화] 실경을 재단하다

여행에서 직접 보고 그린 밑그림과 기억 등을 바탕으로 화가는 실경산수화는 그린다. 실제 보았던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적절한 시점을 선택하여그림을 그린다. 심원(深遠)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평원(平遠)은 앞쪽에서 뒤쪽까지 꿰어보는 시점, 고원(高遠)은 아래에서 올려다 본 시점을 말한다. 조선시대 금강산과 관동팔경 기행은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었다. 화가들은 자신이 눈으로 보았던 풍경을 남기고자 했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정신세계를 표현한 전통적인 산수화와는 달리 실제 풍경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했던 욕구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필운대에서 불꽃놀이(弼雲臺賞春圖), 정선, 조선 1740 ~ 50년대, 비단에 엷은색, 개인소장>

필운대는 현재 배화여고가 들어선 인왕산 남쪽 기슭으로, 조선시대에늘 한양 최고의 봄나들이 명소였다. 이 그림은 사직동 방면에서 인왕산을 오르며 필운대를 바라본 장면을 그린 것이다. 오른쪽 멀리 푸른색으로 그린 뾰족한 산은 관악산이고, 그 앞의 누각은 숭례문이다. 정선은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은 안개로 가려 여백을 주는 동시에 멀리 있는 관악산을 화면 안으로 끌어와 근경과 원경의 풍경을 모두 아우르는 시점을 선택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실경을 재단하다
여행에서 돌아온 화가는 밑그림(초본)과 기억을 바탕으로 실경산수화를 그립니다. 화가는 거대한 산수를 2차원 평면에 옮기기 위해서 화면의 구도를 고민합니다. 화가는 높은 봉우리를 아래에서 올려다보거나 넓은 평야를 저 멀리까지 바라보는 시점을 선택하게 됩니다. 심지어 새처럼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풍경을 표현할 수 도 있습니다. 또한 그림의 크기와 부채, 두루마리, 병풍 등 다양한 화면에 맞추어 경치를 마름질합니다. 금강산은 가장 인기있는 명승지이자 실경산수화의 소재로, 화가들은 산과 계곡, 바다가 어우러진 실경을 제각기 재단하여 여러 장면으로 그렸습니다. 실경산수화를 그리는 과정은 풍경 사진을 찍는 것과 닮았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짧은 순간에 구도와 초점, 꾸밈효과를 고민하는 것처럼, 자신만의 시선으로 풍경을 담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정선(1676~1759년)은 당시 인기였던 금강산, 관동팔경 등의 명승과 서울 주변 명소들, 지방관으로 근무했던 지역의 경치 등을 많이 그렸다. 초기에는 실경산수화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으며 점차 자연에서 받은 느낌을 재구성하여 독창적인 진경산수화로 발전시켰다.

<임진강에서의 뱃돌이(羽化登仙.熊淵繫續圖), 정선, 조선 1742년, 비단에 엷은색>

<임진강에서의 뱃돌이(羽化登仙.熊淵繫續圖), 정선, 조선 1742년, 비단에 엷은색>

1742년 10월 보름날 밤,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는 임진강에 배를 띄워 유람했다. 유람에 동행했던 사람은 당대 최고의 시인 연천 현감 신유한과 양천 현령 정선이었다. 이 뱃놀이는 660년전, 북송의 소식이 <후적벽부>를 남겼던 고사를 재현한 문화행사였다. 정선은 우화정(羽化亭)에서 배를 띄우는 광경(오른쪽)과 웅연에서 닻을 내리는 장면을 그리면서 북종화와 남종화의 기법을 혼합하여 실경을 문인화풍으로 표현하였다. 중국 고전의 장소를 조선 강변으로 옮겨와 재구성한 운치 있는 그림이다. 원래 이 작품은 <연강임술첩(涎江壬戌帖)>이라는 제목의 화첩으로 제작되었는데 현재는 화면이 분리되어 액자 형태로 감상할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정양사의 부채그림(正陽寺圖),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멱, 국립중앙박물관>

정양사는 내금강의 대표 사찰 중 하나이다. 정양사의 누각인 헐성루(歇惺樓)는 금강산을 한 눈에 바라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했다. 정선은 금강내산의 총도식 구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정양사를 화면 앞으로 바싹 당겨, 감상자가 마치 헐성루나 그 앞에 선비들이 서 있는 천일대(天日臺)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표현했다. 금강산의 바위 봉우리들은 부채 끝선을 따라 둥글게 둘러졌다. 선면(扇面)은 위쪽으로 넓게 확장되는 형태로 사람의 시야 범위와도 유사하여 실경의 현장감을 잘 살릴 수 있는 특징이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해인사의 부채그림(海印寺圖),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정선은 금강산과 한양 그림으로 잘 알려졌지만 영남 지역의 경치도 화폭에 담았다. 그는 1721년부터 1726년까지 하양(河陽, 지금의 경북 경산시)현감을 지냈는데, 합천 해인사를 담은 이 부채 그림은 그 무렵에 그린 것이다. 정선은 해인사 주변의 가야산 풍경까지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 부감시를 취하였다. 그 결과 사찰 입구의 홍하문(紅霞門)부터 가장 안쪽에 자리한 장경판전까지 해인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채의 반원형 화면을 이용해 단풍이 붉게 묽든 가을 산사의 정취를 한껏 담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김윤겸(1711~1775년)은 정선과 함께 18세기에 활동했던 화가로 김상헌의 손자인 김창업의 서자이다. 김응환 등과 함께 정선파를 형성했으나 자신의 화풍을 갖춘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금강산, 한양 근교, 단양, 영남지방 등 명승을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실경을 대담하게 생략하면서 입체감을 가미시킨 표현 등이 특징이다.

<진주담의 부채 그림, 김윤겸, 조선 1756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금강산 만폭동에 위치한 진주담에 쏟아지는 물줄기와 소용돌이치는 물의 형세를 간결한 필선으로 리듬감 있게 묘사하였다. 정선의 선면화는 부감시로 넓은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김윤겸은 한눈에 들어오는 실제 풍광을 그대로 그린 듯 현실적인 시점을 채택하였다. 너럭바위에 앉아 진주담을 바라보는 인물은 화가 자신의 시점을 은유한 것이다. 진주담을 그린 현존하는 실경산수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주목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하룡유담, 김윤겸>

<극락암도, 김윤겸>

영남지역 명승 그림(嶺南紀行畵帖), 김윤겸, 종이에 엷은색, 동아대석당박물관, 보물
영남 지방은 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조선시대 탐승객의 발길이 드물었다. 이 화첩에 그려진 부산과 경상도 일대는 실경산수화의 대상으로는 거의 주목되지 않았던 장소이다. 김윤겸은 1765년경 경상도 진주목에 속한 소촌역 찰방(察訪)을 지낼 때 영암 일대를 탐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첩 마지막 면의 좌우에는 지리산 계곡인 함양의 하룡유담과 절벽 위 암자인 극락암이 각각 펼쳐진다. <극락암도>는 왼편에 거대한 절벽과 작은 암자를 대비시켜 간결하게 묘사했고, 오른편 나머지 공간은 겹겹이 멀어져가는 산봉우리로 채웠다. 옅은 푸른색으로 채색된 끝없는 덕유산 자락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지리산 전경, 김윤겸,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금대암(金臺庵)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모습이다. 금대암은 경상남도 함양에 위치한 사찰로, 천왕봉에서 이어지는 지리산 북쪽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화가는 자연스러운 부감시로 지리산의 능선과 칠선계곡의 물길을 굽이굽이 묘사하였다. 넘실대듯 이어진 부드러운 봉우리는 토산의 특징이며, 계곡을 따라 숨은 듯 작게 묘사한 마을은 지리산의 거대한 규모를 강조한다. 지리산은 명성에 비해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널리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그림은 김윤겸이 진주의 소촌역 찰방을 지낼 때 영남의 곳곳을 사생한 그림 중 하나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단양의 사인암과 운암(舍人巖, 雲巖), 김윤겸, 조선 1763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김윤겸은 서울의 백악산 뿐 아니라 충청북도 단양의 사인암, 운암, 석문과 제천의 후선각(候仙閣)을 사인암과 운암은 그 형태가 기이한 암석으로, 근방에 흐르는 남조천과 어루저지며 아름다운 풍치를 더한다. 김윤겸은 단순하고 각진 모양으로 바위의 형태를 잡고 먹과 청색의 담채로 음영을 넣었다. 나뭇잎은 짧은 선이나 점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사인암도>에는 너럭바위에서 물을 바라보는 인물과 차를 끓이는 시동을 그려 명승지에서의 풍류를 더하였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극락암, 김희성>

김희성의 그림모음, 김희성 등,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개인소장
김희성의 그림과 그가 수집한 그림들을 모아 만든 화첩이다. 그 가운데 <용음뢰>, <화암>, <극락암>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음(安陰, 안의면)의 명승을 그린 그림이다. 김희성은 산과 바위에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나타냈고 전체적으로 녹청색을 옅게 칠해 여름철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백운산의 높은 바위 위에 극락암이 있고 그 뒤편으로 바위 봉우리들이 그려졌다. 산 중턱의 길을 따라 승려와 짐꾼이 이동하고 있다. 김희성의 <극락암도>는 여운을 강조한 김윤겸의 그림과 달리 설명적인 느낌이 강하다. 화첩 왼쪽 가장자리에 적힌 화평을 통해김희성의 그림을 감상한 강세황이 안음의 명승에 가보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 강세황의 평, 안음에 이러한 절경이 있지만 직접 가보지 못해 안타깝다.-

<묘길상, 김윤겸>

<장안사도, 김윤겸>

내금강의 명승그림(蓬萊圖券), 김윤겸, 조선 1768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내금강의 명승 여덟 폭이 포함된 화첩이다. 김윤겸은 장안사에서 출발해 묘길상(妙吉祥)에 이르는 내금강의 명승지를 그렸고, 불게 채색된 단풍은 가을의 정취를 전해준다. <장안사도>는 정선의 그림을 충실히 계승하여, 당시에는 이미 사라진 만천교도 그려 넣었다. 김윤겸은 전형적인 구도를 따르면서도 장안사의 뒤쪽 건물을 지붕만 보이도록 겹쳐 그리는 등 전통적인 부감시보다는 수평시를 사용하였다. <묘길상도>는 만폭동 벼랑에 새겨진 고려의 마애불을 그린 것이다. 경물을 추상적으로 단순화하고 엷은 채색으로 서정성을 불어 넣은 수법에 김윤겸의 개성이 잘 나타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김응환(1742~1789년)은 조선후기 도화서 화원을 다수 배출한 개성 김씨 집안의 핵심적 인물로 <금강산화첩>, <금강전도> 등을 그렸다.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 강세ㅐ황과 함께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여행하며 실경을 그렸다. 남종화법과 진경산수에 모두 능했으며 정선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다.

<내원통암>

<명운담>

<마하연>

<옹천>

<해산정>

금강산 유람 기념 그림(東遊帖), 작가 미상, 조선 1825 ~ 1838년경, 종이에 색,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이풍익이 1825년 8월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28점의 시문에 금강산 실경산수화를 엮어 만든 시화첩이다. 각 장면은 <해동명산도첩> 등 김홍도의 금강산 그림과 흡사하다. 19세기에는 김홍도를 모사한 그림으로 금강산 유람을 기념하는 서화첩을 꾸미는 일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 화첩에서 화가는 구도와 필법 등 김홍도의 화풍을 충실하게 모방하였다. 필치가 다소 섬약한 대신 채색을 적극적으로 구사하여 장식적인 인상을 준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금강산 전도, 김응환, 조선 1772년, 종이에 엷은 색, 개인 소장>

김응환이 김홍도를 위해 정선의 <금강전도>를 모방하여 그린 그림이다. 금강산의 전모를 부감시로 종합한 구도와 토산은 미점(米點)으로, 암산은 수직준(垂直皴)으로 구분하여 표현한 수법은 정선의 화풍과 유사하다. 그러나 봉우리 사이의 옅은 안개와 부드러운 담채 효과는 김응환의 새로운 해석에 따른 것이다. 여유있는 공간 구성과 부드러운 필선은 정선과 구별되는 김응환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단발령(斷髮嶺>

<장안사(長安寺)>

<명경대(明鏡臺)>

<문탑(門塔)>

<증명탑(證明塔)>

<영원암(靈源庵)>


<삼불암(三佛庵)>

<백화암부도(白華庵浮圖)>

<헐성루(歇惺樓)>

<금강문(金剛門)>


<원통암(圓通庵)>

<수미탑(須彌塔)>

<분설담(噴雪潭)>

<보덕암(寶德庵)>

<마하연(摩訶衍)>

<묘길상(妙吉祥)>

<비로봉>


<만경대(萬景臺)>

<중내원(中內院)>

<유점사(楡岾寺)>

<하발연(下鉢淵)>

<신계사(神溪寺)>

<비봉폭(飛鳳瀑)>

<옥류동(玉流洞)>

<구룡연(九龍淵)>

<만물초(萬物草)>

<옹천(甕遷)>

<백정봉(百鼎峰)>

<대호정(帶湖亭)>

<현종암(懸鐘巖)>

<총석정(叢石亭)>

<낙산사(洛山寺)>

<경포대(鏡浦臺)>

<망양정(望洋亭)>

금강산과 강원지역 명승그림(海嶽全圖帖), 김응환, 조선 1788 ~1789년, 비단에 엷은 색, 개인 소장
김응환이 1788년에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와 함께 금강산을 유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화첩이다. 총 60면의 그림 가운데 다른 화가의 금강산 그림에는 없는 용곡담(龍谷潭), 자운담(慈雲潭), 무봉폭(舞鳳瀑), 백정봉(栢鼎峰)이 포함되어 있다. 화면을 꽉 채운 구도에 경물을 대담하게 단순화시켰다. 화면 전반의 능숙한 농담 조절과 감각적인 채색에 김응환의 개성이 드러난다. 김응환은 ‘산수에 정통’하지만 ‘정밀한 그림에 맞지 않다.’는 평을 들었는데, 거침없는 필치의 이 화첩의 특징과 상통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김하종(1793~?)은 화원집안 출신으로 벼슬은 첨사를 지었다. 인물화에 뛰어나 순조와 철종 어진 제작에 참여하였다. <해산첩(海山帖)>은 그의 대표작으로 금강산과 설악산 등 영동지방의 빼어잔 경치를 담고 있다.

<영원동(靈源洞)>

<구구동(九九洞)>

<마하연(摩訶衍)>

<총석(叢石)>

<계조굴(繼祖窟)>

<설악경천벽>

강원지역 명승 그림(海山圖帖), 김하종, 조선 1816년,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금강산과 관동, 설악산의 명승을 포괄하는 25면의 산수화로 구성된 화첩이다. 규장각의 관료 이광문은 춘천 부사가 되자 금강산 유람을 계획하며 24세의 화원 김하종을 데리고 가 실경산수를 그리게 하였다. 김하종은 대대로 화원을 배출한 개성김씨의 후손으로, 작은 할아버지는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을 그렸던 김응환이다. 김하종은 장소가에 어울리는 시점과 구도를 고민하여 화면마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실경을 그렸다. 먼 곳을 옅게 채색하는 대기원근법으로 원근감을 나타냈고, 수묵에 청록색을 더함으로써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화첩에 포함된 설악산 그림은 19세기 유일한 설악산 실경산수화로서 그 의미가 크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김홍도 필 병진년 화첩 (金弘道 筆 丙辰年 畵帖, 보물)은 김홍도가 그린 산수화와 풍속화 등을 모은 화첩이다. 총 20면으로 구성된 이 화첩은 종이에 먹을 그린 후 엷게 색칠하였다. 그 중 사인암을 그린 그림은 김홍도가 51세 때 그린 것으로 그의 화풍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영랑호(永郞湖)>

<도담삼봉(島潭三峯)>

<사인암(舍人巖)>

<옥순봉(玉荀峯)>

충청지역 명승 그림(玉荀峯, 舍人巖, 島潭三峯,永郞湖圖), 김홍도, 조선 1796년, 종이에 엷은 색, 개인 소장, 보물
김홍도가 그린 <병진년화첩>에는 실경산수화 네 점이 포함되어 있다. 옥순봉과 사인암,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에 해당한다. 김홍도는 1791 ~ 1795년에 연풍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인근의 단양 실경을 사생하였다. <옥순봉도>는 배를 타고 가까이 다가가서 올려다본 절벽의 웅장함을 강조했다. <도담상봉도>는 원경의 봉우리를 매우 옅게 채색한 대기원근법이 돋보인다. 사선으로 공가느이 후퇴를 강조하고 화면에 동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수법은 서양화의 선원근법을 응용한 것이다. 김홍도는 경물 사이를 여백으로 남기고 능수능란하게 먹과 담채를 선염하여 화면에 시적 감흥을 불어넣었다. 사실성과 서정성을 함께 성취한 김홍도 만년의 걸작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구룡폭(九龍瀑圖), 엄치욱,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구룡폭은 외금강에 위치한 폭포로, 많은 화가들이 그린 소재였다. 엄치욱의 그림은 마치 스냅사진처럼 폭포 상단부터 중단까지만 화면에 담았다. 각지고 날카로운 윤곽선과 물기 있는 먹을 아래로 내려 긋는 기법을 구사하며 화강암 절벽 면을 강조하였다. 엄치욱은 조선 말기의 화가로, 현존하는 작품들은 대부분김홍도 화풍을 충실히 따랐다. <구룡폭도>는 김홍도의 작품에 비해 암벽의 양감이나 세부 묘사에 대한 관심이 덜하지만 과감한 필치의 반복과 검은 묵면이 두드러진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수옥정(漱玉亭)>


<낙화담(落花潭)>

수옥정과 낙화담(漱玉亭.落花潭圖), 이인문, 조선 18세기 후반 ~ 19세기 전반,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충북 괴산의 수옥 폭포와 경남 합천 홍류동(紅流洞) 계곡의 명소인 낙화담을 그렸다. 이 두 곳은 유람과 기행문학의 성행에 따라 18세기 이후 새롭게 찾아낸 명승이다. 화가는 실경을 사행하여 사실적인 화면을 구성하였지만 남중화풍으로 그렸기 때문에 이 그림은 다소 이상화된 산수화처럼 느껴진다. 이인문은 정조 떄의 화원으로 김홍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산수화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서성우렵(西城羽獵)>


<한정품국(閒亭品菊)>

수원 화성에서의 사냥과 국화감상(西城羽獵.閒亭品菊圖), 김홍도, 조선 1796년, 비단에 엷은 색, 서울대박물관
수원 화성 건설을 기념하여 화성의 가을 경치를 그린 <추팔경도(秋八景圖)>의 일부로 알려진 그림이다. <서성우렵도>는 서장대와 화서문 밖 들판에서 벌어진 사냥이 주제이다. 경물을 부감시로 나타내고 대기원근법으로 멀리 광대한 공간감을 보여준다. <한정품국도>는 행궁 후원의 정자인 미로한정(未老閒亭)에서 국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을 묘사하였다. 화면의 아래위는 여백으로 남겨 막힘없는 공간감을 연출하였다. 공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지만 서정이 넘치며, 구도와 필치에서 김홍도의 원숙한 기량을 느낄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