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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이집트인의 삶, 일상생활

이집트문명은 기원전 3천년 경 나일강 하구에서 시작되었다. 이집트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적도 부근 빅토리아호수와 에디오피에서 우기에 내린 비가 흘러 내려오면 나일강은 범람하여 주변 토지를 비옥하게 하였다. 홍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천문학, 수학, 토목기술 등을 발달시켰으며 상형문자는 이집트인들이 살았던 모습과 역사, 정신세계 등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1. 늪지대 풍경, 기자(Giza), 제 5~6왕조 기원전 약 2500 ~2170년, 석회석 안료>

나일강 주변의 늪지대는 이집트인들에게 중요한 식량원이었다. 이 부조처럼 무덤 돌에 그려진 늪지대는 이집트의 비옥함을 상징하며, 사후세계에서도 풍족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준다. 작품에는 파피루스로 만든 작은 배 안에서 다양한 종의 물고기를 잡고 있는 남성들이 묘사되었다. 왼쪽 아랫부분으 새끼를 낳고 있는 하마는 다산(多産)을 상징한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세계문화관의 이집트 관련 유물들은 미국 브루클린박물관의 협조로 2022년 봄까지 전시되었다. 고대 이집트 신화, 사후사계 등 그들의 정신세계와 관련된 유물들 중심으로 간략한 이해를 돕는 충실한 전시가 되었다.

<이집트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이집트 나일강, 아스완 부근, 2008년>

자연환경
이집트는 아프리카 북동쪽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리비아, 남쪽으로 수단, 동쪽으로 이스라엘, 그리고 북쪽으로 지중해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이웃하는 아프리카, 서아시아, 남유럽의 고대 국가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고 주변 지역과 교류하며 이집트 문명은 더욱 활짝 꽃을 피웠다. 이집트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 때문에 나일강을 따라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크게 하지집트와 상이집트로 나뉘는데, 하이집트는 북쪽의 나일강 하류 일대로 지금의 카이로가 있는 삼각주 지역이고 상이집트는 그 남쪽의 나일강 상류 주변이다. 이집트인들이 일찍이 그들의 나라를 ‘타위(Tawy, 두 개의 땅)’라 불었을 만큼 이 두 지역은 중요한 공간이었다. 나일강의 동서 양 옆으로 넓은 사막이 있다. 이 거대한 사막은 외부로부터 나라를 보호하는 장벽 역할을 했다. 수도 카이로의 연평균 강수량이 2~5 mm이고 몇년간 비가 전혀 내리지 않을 때도 있어 이집트인들에게 나일강은 귀중한 젖줄이다. 나일강의 지류는 적도 인근의 빅토리아 호수와 에티오피아의 높은 산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우기 때 이 지역에 비가 내리면 7~8월에는 항상 강이 범람하였다. 홍수는 이집트인에게 주기적으로 비옥한 토양을 선물하였고, 이는 찬란한 문명을 일구는 바탕이 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죽은이의 사후세계를 위해 껴묻거리로 묻은 많은 유물들을 통해 당시 이집트인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의 장신구는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면서 초자연적인 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부적과 같은 기능도 같이 가지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이집트에서 먼저 시작해서 주변지역에 영향을 미친 부분도 있다.

<2. 동물이 그려진 꽃병, 아루라드 야햐(Aulad Yahya), 선왕조 시대, 나카다 3기 기원전 약 3300 ~ 3100년, 토기에 채색>

이 항아리에는 악어 또는 이집트몽구스로 추정되는 세마리의 동물과 뱀이 그려져 있다. 악어는 나일강에서 발견되는 가장 위험한 동물 중 하나이고 뱀 역시 사막에 사는 위험한 동물이다. 이 위험한 두 동물을 하나의 병에 그려 넣은 것은 이들을 주술로 위험을 통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막은 언제나 위험한 장소였던 반면, 강은 커다란 위험을 품고 있는 동시에 생명을 살리는 물의 근원으로 여겨졌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3. 주걱모양 인형, 중왕국 기원전 약 2008 ~ 1630년, 나무에 채색>

한때 이런 주걱모양 인형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고만 여겨졌다. 여성의 신체를 추상적인 형태로 단순화하였고 앞면에는 헤링본 패턴(V자형)의 드레스를 그린 것이 많았다. 하지만 뒷면에 임신한 여성들의 수호자인 하마 형상의 타웨레트(Taweret)가 그려져 있고 앞면에 삼각형 모양의 음부가 표현되어 다산과 순산을 기원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5. 우유 용기, 사와마(Sawama), 신왕국 제18왕조 초기, 기원전 약 1539 ~ 1478년, 토기에 채색>

표면에 여성의 허리, 팔, 가슴 모양의 점토를 붙여 장식한 항아리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치료약과 처방전을 적어 놓은 <에버스 의학 파피루스>에는 “아픈 사람은 이 모유를 크림이 뜰 때까지 병에 담아 보관했다가 아픈 부위에 바르면 좋다.”고 적혀 있다. 이 우유 용기는 이와 같은 ‘마법의 액체’를 담는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5. 목걸이, 메칼리(Mechali), 신왕조시대 나카다 1기 기원전 약 3850 ~ 3500년, 석영 홍옥수 마노 동석 사문석>

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는 매우 오래된 무덤에서 발견된다. 이 목걸이는 232개의 구슬과 펜던트로 만들었다. 가장 큰 펜던트는 불투명한 황갈색 석영이고, 그 외에 옥수로 만든 펜던트 여섯 개와 마노로 만든 펜던트 한 개가 달려 있다. 여기에 오렌지 빛깔의 불투명한 큰 석영 고리와 동그란 모양의 갈색 동석 구슬을 덧붙였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6. 스카라브가 달린 팔찌, 아비도스(Abydos), 중왕국 제12왕조 기원전 약 1938 ~ 1875년, 자수정 장석>

이 보호 팔찌는 원형 또는 계란형의 자수정 구슬을 꿰어 만들었고, 끝으로 갈수록 점점 구슬 크기가 작아진다. 중앙에는 녹색 장석으로 만든 풍뎅이 모양의 스카라브가 달렸는데, 이것은 태양신을 상징한다. 반대쪽 끝에는 색이 연한 알 모양의 자수정이 달려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7. 베스와 타웨레트가 달린 목걸이, 신왕국 제18왕조 기원전 1539~1292년, 금 파이앙스 홍옥수>

이집트인들은 베스와 타웨레트의 이미지가 달린 이런 목걸이가 임신한 여성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다. 난쟁이 사자 모양의 베스는 아이들의 수호신이고 임신한 하마 모양인 타웨레트는 출산하는 여성들의 수호신이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8. 신의 흉상이 달린 반지, 사카라(Saqqara), 프롤레마이오스 시대 후기 ~ 로마시대 기원전 100 ~ 기원후 100년, 금>
<9. 귀걸이, 신왕국 제18왕조 기원전 약 1539~1292년, 금>
<10. 헤어 링, 신왕국 제18~20왕조, 기원전 약 1539 ~ 1075년, 설화석고(방해석)>
<11. 카우리 모양의 금반지, 제2중간기 힉소스시대 제13~17왕조 기원전 약1630 ~ 1539년, 유약을 칠한 동석과 금>

이집트인들은 여성의 성기와 비슷하게 생긴 카우리 조개에 다산을 부르는 주술적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부유한 이집트인들은 카우리 조개 모양의 부적이 달린 금반지를 자주 착용했다. 이 부적의 밑면에 표현된 꼬인 고리모양 패턴은 힉소스 시대 스카라브에서 자주 발견된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2. 조세르 왕의 병, 사카라(Saqqara) 조세르 계단식 피라마드 복합체 ‘남쪽 무덤’ L실, 고왕국 초기 제3왕조, 기원전 약 1575 ~2635년>

사카라에 있는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드 안에서 출토된 수천 개의 석제 용기 중 하나이다. 이 시기의 돌 용기는 대부분 방해석의 일종인 이집트산 성화석고를 조각하여 만든 것이다. 바깥면은 끌모양의 도구와 석제 절구공이로 다듬었고 안쪽 면은 쪼아서 만들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3. 계단형 항아리, 엘 마마리아(El Ma’amiya), 선왕조시대 나카다 1기 기원전 약 3850~3500년, 토기><14. 접시, 에드푸(Edfu), 초기왕조 시대 제1왕조 기원전 약 3100~ 2800년, 석회암>

몸통은 매끄러운 붉은색이고 입부분이 검정색인 이 항아리는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토기 형태 중 하나다. 나일강이 범람할 때 강둑 근처에 퇴적되는 진흙으로 만들었다. 도공들은 점토를 자갈로 문지르면 구웠을 때 붉은 색이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테두리의 검정색 부분은 굽기 전에 검댕을 묻힌 것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5. 큰칼, 엘아다이마에서 출토(el-Adaima), 선왕조시대 나카다 2기 후기 ~ 3기 기원전 약 3400~3200년, 처트(Chert)>
<16. 재칼 손잡이 숟가락, 사카라(Saqqara), 신왕국 제18왕조 기원전 약1539 ~ 1292년 나무>

고대 이집트인들이 햇빛과 건조함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연고를 바를 때 사용하던 숟가락으로 추정된다. 이 순가락의 손잡이는 재칼모양이다. 보통 이런 물건의 동물 표현에서 재칼의 머리는 위에서 내려다 볼 때의 형상이 반면 앞다리와 몸통, 꼬리는 옆모습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7. 콜을 바르는 도구, 중왕궁 제12~13왕조 기원전 약 1980~1630년, 적철석 금 파이앙스>

콜(Kohl)은 남녀 모두 아이라이너로 사용했던 화장품 종류이다. 이 막대기는 콜을 찍어 바르는 도구이다. 아이라인을 칠하면 눈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큰 눈을 연출할 수 이었다. 또 햇빛을 흡수하여 눈부심을 줄여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선글라스와 같은 역할도 했다 콜은 납의 일종인 방연석을 가루로 내어 동물지방과 섞어 만들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8. 페피2세의 병, 고왕국 제6왕조 페피2세 치하 기원전 약 2288~2224/2194년, 설화석고>

왕실에서 사용한 이 뚜껑이 있는 병은 페피2세에게 헌정된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식물 기름과 동물 지방을 사용해 피부 보습제와 클렌저를 만들었고, 머리 모양을 잡기 위해 머리에 바르기도 했다. 이집트 문자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름, 연고를 일컫는 단어가 최소 일곱 개 이상 있다. 그러나 이 병에 어떤 것이 담겨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일상생활
고고학자들인 이집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을 바탕으로 이집트인의 일상생활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먼저 출산 과정에서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 조각상과 부적이 사용되었다. 탄생은 미지의 세상에서 현실 세계로 넘어 오는 위험한 순간이므로 이와 같은 상징물로써 어머니와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려 했던 것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 아름다움을 위해, 그리고 작렬하는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려고 화장품을 발랐다. 화장품 종류는 피부를 부드럽고 탄력있게 만드는 연고와 눈으로 시설을 집중시키고 태양 빛을 흡수하는 아이라이너 콜(Kohl)이 대표적이다. 거울은 화장을 하는 데 빠져서는 안될 필수품이었다. 장신구는 여성의 머리, 목, 팔목, 손가락 등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여성과 남성 모두 장신구와 부적을 사용했다. 신체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을 갖는다고 믿었다. 청동과 돌로 만든 도구와 무기는 무덤에 부장되기도 했고 일상생활에서도 사용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집트의 시대 구분>

역사
이집트 역사는 11개의 시기로 구분하는데 강력한 중앙정부가 존재했던 ‘왕국시대’와 왕의 힘이 약해지는 ‘중간기’가 번갈아 나타난다. 기원전 3천 년경 나르메르왕이 상.하이집트를 통일하면서 초기왕조 시대(기원전 300 ~ 2675년경)가 시작된다. 문자와 달력도 이 시기 즈음에 발명되었다. 고왕국 시대(기원전 2675~2170년)는 피라미드 시대라고 불릴 만큼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중왕국 시대(기원전 2008~1630년경)는 석회암이나 화강암을 이용한 석상 등 인상적인 예술 작품이 탄생한 시기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중앙정부는 무너지면서 제2중간기가 도래한다. 신왕국시대(기원전 1539~1075년경)에는 람세스라 불린 강력한 왕들이 등장해 주변 지역을 정복하였다. 투탕카멘왕의 무덤도 이때 만들어졌다. 제3중간기가 되면서 외래 민족이 권력을 잡았고, 이후 리비아, 누비아, 페르시아가 번갈아 이집트 지역을 다스렸다.(후기왕조 시대, 기원전 664~332년).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정복과 함께 프톨레마이오스 시대가 시작되었고, 이때 이집트와 그리스 문화가 융합되었다. 기원전 30년, 클레오파트라 7세와 안토니우스가 이끈 이집트 해군이 로마의 옥타비아누승 의해 악티움 해전에서 패하면서 이집트는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집트,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이집트,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천년경 나일강 하구에서 시작되었다. 나일강은 매년 범람하여 이집트 사람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선물하였고, 홍수를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천문학과 수학, 달력이 생겨났다. 또 상형문자를 이용한 기록 문화가 발달하여 이집트 역사는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한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이 썩지 않도록 미라로 만들었다. 탄생에서 죽음 뒤 세상까지 신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믿어 여러 신을 숭배하기도 했다. 이집트 문명 초기인 고왕국 시기(기원전 2675 ~ 2170년경)을 거쳐 신왕국시대(기원전 1539 ~1075년경)가 되면 람세스 2세를 비롯한 강력한 파라오들이 등장하여 영토를 넓히고 주변 국가와 활발히 교역하였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대왕(기원전 356~323년)의 정복으로 이집트 문화는 그리스 문화와 융합하였다. 세계문화관 ‘이집트실’은 국내 최초의 이집트 문화재 상설전시실이다. 이 전시실은 세계적인 이집트 문화재 소장 기관인 미국의 브루클린박물관과 공동 기획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3년부터 브루클린박물관 한국전시실을 지원해 왔으며, 이집트실 개관은 두 박물관의 오랜 협력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집트 상설전시실은 2022년 3월 1일까지 운영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세계문화관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선보이기 위해 기존 ‘아시아관’을 ‘세계문화관’으로 개편하였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 문화를 되돌아보고, 각국의 문화를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될 것 입니다. 세계문화관에서는 아시아 각 지역의 문화와 함께 동서양의 주요 문명을 1~2년 단위로 소개합니다. 모쪼록 관람객 여러분의 경험과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