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에 있는 불전인 영산전(보물)이다. 조선후기 효종 때(1651년) 각순대사가 마곡사를 중건할 때 다시 지은 불전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내부에는 천불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으로도 불린다. 마곡사 남원(남쪽영역)에서 주불전 역할을 하고 있다. 영산전에 모셔진 칠불좌상은 조선후기 단응과 열아홉명의 조각승의 제작한 작품으로 동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공주 마곡사 영산전(보물), 2023년>
<공주 마곡사 영산전(보물), 2011년>
마곡사 영산전(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불전건물이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기둥위에만 있는 주심포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후기 건축물이지만 조선초기 건축 양식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정면에서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북동쪽에서 본 모습>
건물 앞에 걸린 현판은 세조가 마곡사를 방문했을 때 쓴 글씨라고 한다.
<영산전 현판>
<창호와 문살>
<기둥과 주춧돌>
내부에는 칠불좌상과 천불상이 모셔져 있다. 칠불좌상은 수조각상 단응이 1681년 2월부터 6월까지 열아홉 명의 조각승을 이끌고 제작한 불상이다. 일곱 부처 중 석가모니로 불리는 이 목조여래좌상은 오른손을 무릎에 댄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크기도 다른 여섯구의 불상보다 10센티미터 정도 더 크다.
<영산전 내부>
<내부 천장>
<영산전 칠불좌상과 천불상>
<단응이 수조각승으로 참여한 첫 불상, 마곡사 영산전 목조석가여래좌상, 단응 등 20명, 조선 1681년, 공주 마곡사>
수조각상 단응이 1681년 2월부터 6월까지 열아홉 명의 조각승을 이끌고 제작한 <마곡사 영산전 목조칠불좌상> 일곱구 중 하나입니다. 칠불좌상은 지난 세상에 나타난 일곱 부처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일곱 부처 중 석가모니로 불리는 이 목조여래좌상은 오른손을 무릎에 댄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크기도 다른 여섯구의 불상보다 10센티미터 정도 더 큽니다. 이 불상들은 단응이 수조각승으로 활약하며 조성한 첫 작품입니다. 단응은 주로 경상북도 북부와 그 인근에서 활동했다고 알려졌으나, 이 칠불상의 기록이 소개됨에 따라 충청남도 지역 불사에도 참여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참여한 탁밀과 학륜 등 조각승 여섯 명은 3년 뒤 1684년 단응이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을 만들 떄도 동참했습니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목조대좌 역시 중요한 작품입니다. 대좌는 높이가 낮은 ‘亞’자 모양의 삼단 수미좌(須彌座) 위에 다시 연꽃 모양 대좌를 얹었습니다. 대좌의 형태와 세부 문양은 1684년 단응이 만든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과 흡사하여 단응과 그를 따르던 조각승들이 만든 대좌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마곡사(麻谷寺)는 수덕사와 함께 충남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중기 무인정권 시절 불교결사운동을 이끈 만든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중건되었다. 수행을 중시하는 사찰로 가람의 배치에 형식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층석탑(보물호), 영산전(보물), 대웅보전(보물), 대광보전(보물) 등의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공주 마곡사 남원(남쪽 영역)>
공주 마곡사 영산전, 보물
이 건물은 마곡사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다시 세웠다. 편액은 조선 세조가 이곳에 왔을 때 쓴 것이라고 전한다. 영산은 영취의 준말로 석가모니가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가릠을 베풀던 곳을 말하는데 현재 내부에는 7분의 여래불상과 1,000분의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어 천불전이라고도불린다. (안내문, 공주 마곡사, 2023년)
<출처>
- 안내문, 공주 마곡사, 2023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