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처음에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당대 후기부터 자연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실제 중송대 초기에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하는 수준높은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북송 후기에는 화면을 단순화하여 느낌을 묘사하는 중국회화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명대 초기에는 송대 회화의 전통을 따르는 절파(浙派)가 궁정과 민간에서 활약했고, 중기 이후에는 원대의 문인화를 계승한 오파(吳派)가 소주(蘇州)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청대 초기 문인화의 전통 계승하는 화가들도 있었으며 반청의식을 가진 승려화가들은 개성적인 화법을 창조했다. 청대 중기 이후에는 주요 활동 지역별로 화파를 형성하면서 활발히 활동한다. 또한 서양화법이 소개되어 전통적인 중국화 재료에 서양화의 투시법, 명암법을 구사하는 동서 융합의 화풍이 출현하기도 한다.
동기창은 중국 명대의 화가로 자는 현재, 호는 사백, 향광거사이다. 그는 관리로서의 명성도 높았지만 시문에 능하며 서예와 그림에 뛰어났다. 화론에도 정통하여 중국 역대 회화를 남종화와 북종화로 구분하고, 문인화 중심의 남종화를 종통으로 삼는 ‘남북종론(南北宗論)’을 주장하여 후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기교에 치중하는 직업화가의 화풍을 비판하고 남종화의 시조인 왕유를 비롯하여 동원, 황공망 등의 수묵산수화법을 기초로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다. 또한 서화 감정에도 일가견이 있어 많은 작품을 감식하고 소장하기도 했다. 이 그림은 모두 8면으로 이루어진 산수 화첩으로 다양한 필법과 풍부한 먹색을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문징명은 중국 명대의 서화가로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 어려서부터 왕희지, 구양순, 조맹부, 소식, 황정견 등과 같은 대가들의 서체를 스스로 습득하면서 문인화가로 갖추어야 할 소양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용필법의 기초를 다졌다. 이 작품은 소동파로 널리 알려진 북송시대 문학가 소식의 후적벽부를 문징명이 행초서체로 쓴 것이다. 소식의 적벽부는 중국의 화단과 서단에서 가장 애호된 문학작품으로 소식이 황주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현실을 잊고 자연을 만끽한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문징명의 나이 89세 때에 쓴 것으로 그의 고매한 성품과 함께 문인의 서권기 넘치는 필체가 잘 드러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석도의 본명은 주약극, 법명은 원제이며, 석도 이외에도 고과화상, 대척자 등의 여러 호를 사용하였다. 명나라 황실의 후예로 명나라가 망한 후 승려가 되어 여러 지방을 떠돌아 다녔다. 석도는 청대 초기 팔대산인, 곤잔, 홍인과 함께 네명의 승려화가, 즉 사승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석도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필치로 개성이 두드러진 인물, 산수, 화훼를 그렸다. 황산 등을 유람하며 실경을 다양하게 묘사하기도 했는데, 과감한 구도, 주름진 산의 표 현, 구불구불한 선묘, 강한 흑백대조 등이 석도 산수화의 특징이다. 또한 독창적인 화론을 내세워 회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는데, <고과화상어록>에서는 ‘일획론’을 주장하였다. 이 작품은 석도의 독특한 필치로 산, 나무, 바위 등을 묘사하여 개성 있는 그의 필법을 잘 보여주는 산수 화첩으로 모두 10면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마원어는 청대화가로 자는 부희, 호는 서하, 천우산인이다. 윤곽선을 그리지 않는 몰골기법의 화훼화로 명성을 얻은 운수평에게 직접 그림을 배웠으며, 사생을 잘했다. 그의 작품은 수묵화가 대부분이지만 아름다운 채색을 한 그림도 있어 많은 화가들이 모방했다. 이 작품은 종이의 질을 잘 활용하여 먹과 채색의 갈필 효과를 잘 나타내었는데, 부드러운 담채를 사용하여 몰골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각 화면마다 소재가 다양하고 감각적인 화풍을 잘 구사되어 있으며, 매화, 제비, 백모란, 꾀꼬리, 실과 괴석화조, 청죽, 국화, 새, 수국이 그려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제백석은 20세기 중국의 저명한 화가로 시문, 서화, 전각에 모두 능통하였다. 본명은 순지였으나, 나중에 황으로 바꾸었다. 자는 위청이며, 호는 백석이다. 가난한 목공 출신이었던 그는 서위, 팔대산인, 석도, 오창석 등의 화법을 계승하면서도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활달한 필치에 강한 채색을 통하여 자신만의 개성있는 화풍을 이루었다. 사생을 중시하여 여행을 많이 하고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였다. 특히 화조하에서 중국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 했는데 그림의 소재, 내용, 형식 등에서 보수적인 화가들의 그림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 그림은 활달하고 능숙한 필치로 표현한 붉은 꽃과 정교하게 묘사한 곤충의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 간결하고 세련된 구도에 선명하면서도 화려한 색채의 표현으로 화면전체에 생기가 넘친다. 관기에 ‘갑술춘이월’이라 적혀 있어 1934년 봄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제백석은 인물, 산수, 화조, 초충 등의 모든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주괁거인 표현을 중시한 사의화조화가 가장 대표적이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초상화를 비롯하여 화조와 초충의 공필화(대상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그리는 기법)를 그렸다. 그 후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자연의 여러 모습과 생물들의 특성을 관찰하여 수묵과 채색으로 사의화조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의 화조화에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새우는 제백석이 가장 즐겨 그리던 소재이다. 이 그림음 새우의 무리를 수묵으로 자유분방한 필치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수묵의 농담효과를 이용해 새우몸체의 투명감을 표현해 그의 비범한 필묵법을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마원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남송의 화원에서 활약한 화가로 그의 집안은 증조부로부터 5대에 걸쳐서 7명의 화원의 화가를 배출한 유명한 화가 집안이다. 마원은 이러한 가문의 대를 이어 그림을 업으로 삼으며, 가풍을 배우면서도 당시 새로운 화풍으로 각광받은 이당의 화풍을 계승하여, 웅장하면서도 기묘하고, 간략하면서도 세련된 자신만의 독창적인 마원화풍으로 발전시켰다. 화면의 구성은 복잡한 자연을 가장 아름다운 각도에서 포착하여 단순하고 시적인 구도로 구성하였으며 여백을 많이 살렸다. 이 그림은 사게산수도 중 겨울을 그린 작품으로 동자를 거느린 고사(高士)가 눈 속에 핀 매화를 찾아 심산유곡으로 나선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 왼쪽 하단에 ‘마원’의 서명이 있으나 친필로 보기는 어려우며 원대내 명초에 마원의 화풍을 따른 직업화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남영은 명대 화가로 자는 전숙, 호는 접수, 석두타 등이다. 그는 저장성 항저우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문인과 교유하고, 스스로 시문도 쓰며 문인화한 직업화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1640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눈 내리는 깊은 걔곡의 다리를 건너는 선비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화면 가득 들어선 웅장한 산세, 자레 나누어진 바위의 모습, 명쾌한 윤곽, 그리고 눈꽃을 표현한 흰색 등 채색의 산뜻한 조화는 남영의 독자적인 화법이라 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여기는 저장성 닝포(寧波) 출신으로 자는 정진이며 호는 낙우, 낙어이다. 명대 대표적인 궁정 화가이며 금의위지휘라는 관직에까지 오르며 활약하였다. 이 그림은 구륵전채(鉤勒塡彩, 윤곽선을 그리고 채색을 하는 화법) 기법으로 그려졌는데, 설경을 배경으로 한 쌍의 꿩과 대나마, 매화, 동백이 표현되어 있다. 굵은 매화나무 가지에는 산비둘기로 보이는 새 이외에도 작은 새가 여러 마리 앉아 있다. 꿩은 당나라 이래 화조화의 중요한 줒였는데 명대에 이르러 길상적인 의미가 더욱 부각되어 많이 그려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임량은 명대화가로 광동 출신이며 자는 이선이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알려지면서 궁정의 화조화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변문진, 여기와 함께 명대 궁정 화조화의 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화가이다. 힘차고 자유분방한 수묵화 조화에 뛰어나 사의를 중시하는 문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특히 독수리와 매를 비롯한 맹금류를 잘 그렸다. 이 그림은 추운 겨울에 눈이 쌓인 가지에 앉은 두 마리의 매를 묘사하였다. 화면 중앙에 두 마리의 매가 마주 앉아 있고 왼쪽 위로는 두 마리 새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있다. 그의 거칠고 빠른 필치는 마치 서예의 초서를 쓰는 듯 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오위는 후베이성 우창(武昌) 사람으로 자는 사영, 호는 소선이다. 문인집안 출신이었으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이 몰락하자 직업화가의 길을 택하였다. 궁정에 들어가 활동하였으나 성품이 괴팍하여 결국 조정의 속박을 견디지 못하고 궁정을 떠난 방랑하였다.. 오위는 대진에 뒤를 이은 절파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빠르고 거친 필법의 산수인물화를 잘 그렸다. 이 그림은 소략한 배경에 빠르고 거침없는 필법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두 인물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왕기는 명대의 화가로 장쑤성 쑤저우(蘇州)사람이며, 자는 이약이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영향을 받아 산수, 인물, 수석 등을 잘 그렸다. 화법에 구애되지 않고 고아하고 간결한 필치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 그림은 문인의 정원에서 한 인물이 의자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고 다른 한 인물은 연주를 듣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상단 맨 오른쪽에 왕기가 1624년 12월 1일에 그렸음을 밝히고 있다. 화면 맨 아래 오른쪽과 왼쪽의 부분에는 각각 사송주(18세기 사람), 왕계천(1907년생)의 감장인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왕봉원은 명대의 서화가로 난징 출신이며 자는 자신 호는 길산이다.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고 서예로 이름이 높았다. ‘한강독조(寒江獨釣)’의 주제는 당대 유종원의 시로도 유명하다. 눈 덮인 추운 겨울에 강에서 홀로 낚시하는 장면은 매우 시적인 정취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은거하는 군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홀로 낚시하는 인물을 생동감 있게 배치하였으며, 강가에 자란 대나무와 매화는 은거하는 군자의 고고한 품성을 나타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장굉은 장쑤성 쑤저우 출신으로 자는 군도이며, 호는 학간이라 하였다. 그는 심주의 화법을 배워 먹색이 차분하면서 변화가 다양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장굉의 산수화 특색은 실경 묘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각지의 명승을 유람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점이다. 1648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깊은 산속의 시냇물에 나무를 걸치고 편한 자세로 앉아 더위를 식히며 사색에 잠긴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시냇물에 발을 씻는 ‘탁족(濯足)’은 세속을 초탈하여 자연에서 유유자적하는 선비를 상징하는 모습으로서 문인들이 매우 애오한 주제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명.청 회화
명.청대에는 송.원대의 전통회화를 계승하면서 다양한 화파와 화법이 새롭게 등장한다. 명대초기에는 송대 회화의 전통을 따르는 절파(浙派)가 궁정과 민간에서 활약했고, 중기 이후에는 원대의 문인화를 계승한 오파(吳派)가 소주(蘇州)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청대 초기에는 ‘사왕四王’이라고 불리는 왕시민, 왕감, 왕원기, 왕휘가 문인화의 정통을 잇는 반면에 반청의식을 지닌 네 명의 승려화가 팔대산인, 석도, 곤잔, 홍인 등은 개성적인 화법을 창조했다. 청대 중기 이후에는 주요 활동 지역의 이름을 딴 양주팔괴, 안휘파, 금릉팔가, 상해화파, 영남화파 등이 화파별 화가들이 활발히 활동한다. 또한 서양화법이 소개되어 전통적인 중국화 재료에 서양화의 투시법, 명암법을 구사하는 동서 융합의 화풍이 출현하기도 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