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전의면 다방리에 있는 사찰인 비암사(碑岩寺)이다. 1960년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에 계유년에 국왕 및 대신, 칠세부모를 위하여 절을 짓고 아미타상과 관음.대세지보살상을 비롯한 불비상을 조성했다고 적혀 있어 삼국통일 직후 백제유민들이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 도선(道詵)이 중창했으며 그 이후에도 크게 번창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명맥을 유지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지도인 <여지도>에도 비암사(碑岩寺)가 표시되어 있다. 발견된 3점의 불비상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으며 경내에는 극락보전(보전), 삼층석탑,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비암사는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마당을 조성한 후 건물들을 배치하였다. 삼층석탑과 극락보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요사채와 함께 주불전이 있는 영역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서쪽편에 축대를 높게 쌓고 극락보전과 명부전을 배치하였다. 산 정상부 아래에 위치하고 있지만 비교적 마당이 넓은 편이다. 축대를 쌓은 사찰 입구에는 수령 10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어 사찰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삼층석탑은 1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고려시대 석탑이다.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새긴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는 등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통일신라 때 백제유민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3점의 불비상이 발견되었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은 4각의 긴 돌 각면에 불상과 글씨를 새겨 놓고 이다. 정면에는 아미타삼존상을 조각했다. 본존물은 부처가 설법할 때 손모양을 강조하고 있어 삼국시대 전통을 따르고 있다. 협시보살상은 얼굴에 심하게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으나 머리에 둥근 광배가 남아 있다. 주위에 나한상, 인왕상, 작은부처, 비천상 등이 새겨져 있다.
옆면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표현하고 있으며, 뒷면에는 앉아 있는 작은 부처의 모습을 조각했으며 불상 사이에 사람의 이름과 관직을 새겨 넣었다. 이 불비상을 조성하게 된 경위가 새겨져 있는데 계유년에 국왕 및 대신, 칠세부모를 위하여 절을 짓고 아미타상과 관음.대세지보살상을 비롯한 불비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보물) 정면에 새긴 불상은 왼발을 내리고 오른발을 왼쪽 다리에 올린 반가상을 표현하고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목걸이와 구슬장식을 하고 있는 보살상을 표현하고 있는데 뒷면에 보탑을 크게 새긴 것으로 볼 때 미륵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기축명아미타불비상(보물)은 앞면에 본존불인 아미타여래가 앉아 있고, 주변에 여러 자세의 불상들이 나열되어 있다. 본존불 좌우에는 보살상이 있고 나한상, 인왕상, 야차상 등이 새겨져 있다.
극락보전(보물)은 조선후기 17세기에 지어진 불전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일반적인 불전 건물과는 달리 옆면 2칸을 하고 있어 임진왜란 이후 형식적으로 간략화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는데 옆면을 1칸 줄였기때문에 내부는 협소한 편이다. 앞면 창호는 문설주 기둥이 있는 조선중기 이전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조선후기 불전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대웅보전은 1996년에 새로 지어진 불전으로 주불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옆에는 명부전이 있으며, 뒷편에는 산신각이, 앞마당에는 큰 요사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극락보전이 있는 마당과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마당을 넓게 쓰고 있다.
<출처>
- 안내문, 세종 비암사, 2023년
- “비암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 “비암사”,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세종시, 2023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