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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일본 근대 미술품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덕수궁 석조전을 근대 미술 전시관으로 사용하였다. 이를 위해 당시에는 현대 미술품에 해당하는 다수의 작품을 수집하였다. 이후 덕수궁미술관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통합되면서 작품들도 같이 소장하게 되었다. 동시대 일본의 미술경향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창가, 미나미 군조, 1934년, 캔버스에 유채>

노란색 원피를 입은 여성이 창가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다. 19세기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은 레스토랑, 카페, 극장, 발레리나, 보트놀이 등 근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주로 그렸다. 이 작품처럼 중산층 여성의 소일거리를 하며 한가로운 여가를 보내는 장면 역시 인상파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주제이다. 일본에서는 일종의 근대적 현모양처의 재현으로 많이 그렸다. 작가인 미나미 군조는 근대 일본 서양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명으로, 인상파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유화와 수채화를 그렸다. 1902년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오카다사부로스케에게 서양화를 배우고 1907년 영국으로 유학하여 폴 존슨에게 그림을 배우써다. 1910년 일본으로 귀국해 백마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1913년 이시이 하쿠테이 등과 함께 일본 수채화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1932년부터 1943년까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가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을 양성했다. 군조는 1925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 광원비약, 나이토 신, 1932년 경, 나무>

고대의 인물이 사냥을 떠나는 기마상이다. 둥근 능선이 겹친 산의 모습을 한 받침대 위로 대지를 박차고 달려 나가는 말은 두 앞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기세 좋게 장애물을 뛰어 넘고 있다. 말 위의 남자는 상반신을 말 머리에 닿을 만큼 깊이 숙이고 고삐를 세게 쥐어 엄청난 말의 속도를 견디며 앞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장신구와 마구는 화려하게 채색했다. 작가인 나이코 신은 도쿄미술학교 조각과 출신으로, 일본 목조계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평안노모, 히라쿠시 댄추, 1936년, 나무>

도쿄 지요다구에 지금도 남아 있는 서예 용품 가게 ‘헤이안도’의 주인 오카다 규지로가 어머니의 13주기를 기리며 히라쿠시 덴추에게 부탁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을 출품했을 때 이왕가미술관에서 구입 의사를 밝히자 덴추는 이 작품은 제작을 맡기 오카다에게 주고 똑같은 모양으로 하나를 더 만들어 미술관에 보냈다. 덴추는 목조에 석고 원형과 컴퍼스를 쓰는 기법으로 같은 작품을 여러 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3. 기예천, 다카무리 고운, 1920년대 후반 이후, 나무>

일본 근대조각의 거장 다카무라 고운이 만년에 제작한 불교조각 <기예천>이다. 기예천은 모든 기예를 관장하고 복을 가져오는 불교의 천부 중 하나로, 이와 관련된 밀교 수법에서 화려한 장식을 몸에 걸치고 오른손으로는 치맛자락을, 왼손에는 천화를 들고 등장한다. 고운의 기예천은 오른손으로 치맛자락을 쥐는 대신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왼손에는 꽃이 가득 담긴 그릇을 받쳐 들어 천화의 존재를 강조했다. 작은 크기이지만 형태는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노련한 기술로 완성한 세부 표현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상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4. 훈염, 고토 세이지, 1941년, 나무>

가지런히 무릎을 꿇고 가는 몸체를 세워 턱을 위라 향하고 두 눈은 살짝 감았다. 하늘을 향한 얼굴 위로 나부끼는 날개옷 표현이 경쾌하다. 양손은 향로를 받쳐 들었다. ‘훈염’이란 본래 ‘향가가 스며들다’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변하여 ‘좋은 감화를 받아’라는 뜻이 되었다. 만든 이인 고토 세이치는 쇼와 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왼쪽에 전시 중인 <기예천>의 작아인 다카무라 고운에게 목조를 배웠다. ‘훈염’은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인 <마야부인과 천인상>의 천인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 수반 <봄의 물>, 미야시로 겐조, 1941년, 유리/금속(철)>

금속 망치로 두들겨 표면을 장식한 다섯줄의 철 고리를 같은 간격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같은 철판으로 만든 연잎과 개구리 세 마리를 배치하였다. 철 고리를 틀로 하여 안쪽에는 아름다운 보라색 유리를 대었다. 유리의 색이 군데군데 뭉친 부분과 금속의 거친 표면 장식이 ㅎ훌륭한 조화를 이루며 마치 연못의 수면 위로 반짝이는 잔물결을 연상시킨다. 그 위로 연잎 사이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개구리들이 잔잔한 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인 미야시로 겐조는 금속판을 두드려 입체적으로 만드는 공예를 전문적으로 하는 금속공예가였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꽃을 담는 그릇, 이와타 도시치, 20세기 초, 유리>

성형한 유리 표면에 연마제를 바르고 회전 숫돌로 홈을 파내거나 곡면을 깎아내어 만드는 ‘크트글라스’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몸체와 긴 다리 사이에 끼워 넣은 동그란 원형 유리는 커트글라스 기법으로 별 모양을 새겨 넣고, 다리에는 마름모 문양을 연속하여 새긴 뒤에 금가루를 매워 장식했다. 다리와 받침 사이에도 금을 바른 뒤에 커트글라스 기법으로 국화 문양을 새겨 넣어 호화롭게 만들었다. 작가인 이와타 도시치는 일본 유리 공예의 선구자 중 한사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3. 꽃단지, 가노 쇼코쿠, 1935년, 채색도자>

항아리 모양의 꽃병으로 전면에 암녹색의 유약을 바른 뒤 홈을 따라 녹색의 유약을 흘러내리게하여 고대 청동기의 바라색을 연상시키는 추상적인 무늬를 만들어냈다. 작가인 가노 쇼코쿠는 에도시대부터 도예로 유명한 가문의 제자로 들어가 도자 제작 기술을 배우고, 교토도자기시험소에서 화학 안료를 사용하여 색을 입히는 기술을 습득했다. 이 <꽃 단지>는 1936년 문전 감사전에 출품된 것을 이왕가에서 매입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4. 꽃병, 이와타 도시치, 1935년, 유리, 금속(은)>

화초 문양의 은선을 세공하여 바구니의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녹인 유리를 불어 넣어 제작한 꽃병이다. 바깥쪽은 선명한 노란색, 안쪽은 하얀색이고 주둥이에는 은 장식을 둘렀다. 유리보다는 은의 유려한 세공과 교묘한 조합이 매우 뛰어나다. 본래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금 기법을 배운 유리공예가였던 작가의 기술 경력이 잘 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5. 닭 모양 주둥이 꽃병, 가와무리 세이잔, 1938년, 채색도자>

12각형으로 각이 진 기형의 목이 긴 꽃병으로 구연부는 닭의 머리로 형상화되었다. 구연부 곡선은 닭의 몸을 형상화하고 닭의 꼬리로 표현된 손잡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문양이 없이 투명하고 담백한 색채의 백자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목 부분에는 에도 시대부터 발달한 후키즈미 기법을 대담하게 용용해 분사기로 청화 안료를 뿌려 은은하게 색과 문양이 퍼져나가는 효과를 주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일본 근대 미술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일본 근대 미술품은 1933년부터 1943년까지 이왕가 미술관에서 수집한 것으로 일본화 93점, 서양화 37점, 판화 4점, 조각 20점, 공예 44점 등 모두 198점이다. 1933년 조선 총독부가 덕수궁 석조전을 수리하여 근대 미술 작품 전용 전시관으로 만들면서 작품 수집이 시작되었다. 해방 바로 전인 1945년까지 해마다 꾸준히 작품을 사들였는데, 수집품 현황은 <덕수궁 일본 근대 미술품 대장>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왕가미술관은 당시에는 ‘현대미술품’이었던 근대 미술품들을 주로 전시나 소개, 추천을 통해 사들였으며 일부는 작가에게서 기증받기도 했다. 작품을 관리하던 이왕가미술관은 덕수궁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유지되다가 1969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통합되었으며, 그 결과 일본 근대 미술 수집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