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불교는 6세기 중반 백제를 통해 받아들여졌다. 처음에는 대승불교를 통해 율령국가를 세웠으며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많은 사찰이 세워졌다. 헤이안시대에는 당나라 유학을 통해 전해진 밀교인 진언종과 천태종이 크게 유행하면서 일본적인 불교가 자리잡았으며 가마쿠라 시대에는 정토종과 선종이 널리 퍼졌다. 시대를 이끌었던 지배계층의 지원을 받은 일본 불교는 일본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밀교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만다라’라고 하는데, 이 중 태장계 만다라와 금강계 만다라를 합쳐 ‘양계만다라’라고 한다. 양계만다라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대일여래는 보통 여래상과 달리 머리를 묶고 장신구를 걸친 보살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손 모양은 태장계 대일여래는 배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있지만, 금강계 대일여래는 왼손 검지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다. 금강계 대일여래는 우리나라에서 통일신라 후기부터 널리 유행한 비로자나불과 손모양이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비로자나불은 일본의 대일여래와 달리 나발의 머리에 법의를 입은 모습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밀교의 발달
밀교(密敎)는 7세기무렵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의 한 갈래로, 토착 종교의 영향을 받아 은밀하고 주술적 성격이 강한 수행법을 발전시켰다. 8세기 동아시아에 전해진 밀교는 경전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을 바탕으로 신앙 체계를 갖추었다. 일본의 밀교는 헤이안 시대 홍법대사 구카이(空海, 774~835)가 당니라에서 밀교를 공부하고 돌아와 처음 소개했다. 일본의 밀교는 구카이가 처음 시작한 진언밀교(眞言密敎)와 전교대사(傳敎大師) 사이초(最澄, 766~822)가 처음 내세운 천태밀교(天台密敎)로 나뉘며, 두 밀교 신앙을 중심으로 조형 활동이 펼쳐졌다. 헤이안 시대에는 양계만다라의 중심인 대이리여래를 비롯해서 오대명왕(五大明王), 십이천(十二天) 등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불상이 많이 만들어졌다. 밀교에서 중심이 되는 부처인 대일여래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자체를 상징한다. 이 대일여래와 여러 세계를 기하학적으로 나타낸 양계만다라(兩界曼茶羅)는 우주의 진리,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적으로 그려내 밀교의식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 불상은 양손의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맞대어 오른손은 가슴 앞까지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린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손 모양을 ‘내영인(來迎印)’이라고 하는데, 아미타여래가 중생을 맞이할 때 갖추는 손모양이다. 헤이안 시대에는 아미타여래상이 두 손가락을 구부린 채 맞댄 ‘미타정인(彌陀定印)’의 손 모양을 하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에는 새로 들어온 남송 불화의 영향을 받아 내영인을 한 채 서 있는 모습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불상 왼쪽 발아래에 먹으로 “안아미타(安阿彌陀)”라고 쓰여 있어 눈길을 끈다. ‘아아미타불’은 가카쿠라 시대 대표 불사인 가이케이(~1227)의 법명이다. 이를 서명으로 사용하여 제작한 3척(약 90cm)의 내영인 아마타여래입상이 있어, 이와 같을 불상을 ‘안아미 양식’이라 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두 손가락을 구부린 채 맞댄 ‘미타정인’의 손 모양을 하고 않아 있는 아미타여래상이다. 옷 주름이 얕으며 얼굴 표정이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에서 뵤도인 호오도에 있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좌상은 목재 몇 개를 나누어 조각한 다음 조립하는 ‘요세기즈쿠리(寄木造)’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요세기즈쿠리 기법은 여러 사람이 일을 나누어 많은 불상을 쉽고 빠르게 만들수 있는 방법으로 조초가 완성했다고 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정토종의 유행
정토(淨土)는 부처와 앞으로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청정한 세계를 뜻한다. 중생이 사는 현실세계인 예토(穢土)와는 반대되는 곳이다. 불교에서 정토는 이 세상의 동서남북 네 방향과 사유(四維, 동남, 남서, 서북, 북동) 그리고 상하(上下)의 열 곳에 있으며, 각 정토에는 서로 다른 부처가 살고 있다. 그 가운데 아미타여래가 중심이 되는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7세기 후반부터 일본에는 아미타여래에게 서방 극락정토에서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비는 신앙이 있었다. 이는 돌아가신 부모님 등 죽은 이의 왕생을 기원하는 신앙이었다. 이후 헤이안 시대에 와서는 이 세상의 고난에서 구원받고 다음 세상에서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신앙으로 발전한다. 헤이안 시대 후기에는 정토교 사상이 귀족 사회에 깊이 파고 들어 화려한 정토교 미술을 꽃피웠다. 후지와라노 요리미치(992~1074)가 1052년에 세운 뵤도인(平等院)은 아미타 정토를 현세아 나타내어 화려함의 최고 경지를 보여 준다. 특지 조초(?~1057)가 만든 호오도(鳳凰堂)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일본 불상 양식의 기준이 되어 오랜 기간 동안 계승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정토종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귀족뿐 아니라 무사계급이나 서민들 사이에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아미타당(阿彌陀堂)의 건립이나 아미타여래상의 조성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 남신상과 여신상은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 신상의 얕고 단순한 옷 주름 표현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얼굴 표정과 사실적인 조각 표현 등 가마쿠라 신상만의 특징을 보여 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체를 나무 하나로 조각하는 ‘이치보쿠즈쿠리(一木造)’기법으로 만들어졌으며, 속은 파내지 않았다. 머리 부분에는 검게 칠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몸에도 여러 곳에 칠 자국이 있다. 칠이 벗겨진 부분은 나뭇결이 드러나 있다. 남신상은 높은 관을 쓰고 조복을 입고 있다. 가슴 앞 두 손을 덮은 옷자락 위쪽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홀(笏)을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신상은 정갈하게 앞가르마를 한 머리가 흘러내려 두 어깨를 덮었고, 남신상과 같이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모아 소맷자락 속에 넣은 단정한 모습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신불습합
일본에는 6세기 후반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고유의 민간 신앙인 ‘신도(神道)’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고대 일본인은 조상은 물론 동식물, 강, 바다, 대지, 천둥, 바람 등 세상의 모든 것에 신령한 힘이 있다고 믿으며 숭배했다. 온갖 신에 둘러싸여 살던 일본인은 이국적인 모습의 부처와 보살을 외국에서 들어온 또 다른 신으로 받아들였다. 불교의 수많은 부처와 신도가 믿는 많은 신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면서 부처는 신도의 신으로, 신도의 신은 부처로 표현되었다. 이처럼 불교가 신도와 합해진 신앙 형태를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고 한다. 신불습합은 헤이안 시대에 들어와 일본의 신과 부처를 직접 관련짓는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로 발전했다. 부처는 본원적인 존재(本地)이며, 신도의 신들은 중생을 구하러 이 세상에 나타난 부처의 화신(垂迹)이라 하여 일본 고유의 신들을 불교 체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로 인해 절에는 불법의 순호신으로 신도의 신들이 모셔졌고 신사에는 불상을 따라 만든 신상이 들어섰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일본 고유의 신은 형상을 만들지 않다가 8세기부터 불사의 영향을 받아 신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9세기 후반부터는 불상의 영향에서 벗어나 신상만을 표현하는 방법이 시도되었다. 신상은 불상과 달리 정해진 모양이 없었으므로 당시 귀족의 모습을 나타냈으며, 표정도 불사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 많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일본에서는 헤이안 전기에 해당하는 9세기부터 목조불이 불상의 중심이 됩니다. 헤이안 시대에 나무가 불상 재료로 쓰인 이유를 두고 여러 논의가 있습니다. 그중 불상을 많이 만들게 되면서 구리나 칠 그리고 인도.동남아시아에서만 자라는 전단나무 같은 기존의 값비싼 재료를 대체하려고 일본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나무를 사용했다는 말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오래된 나무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영목신앙(靈木信仰)’이 있었기에, 신령스러운 나무에 부처 모습을 새겨 드러낸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헤이안 전기에는 비자나무, 후기에는 노송나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치보쿠즈쿠리’ 기법은 불상의 머리 부분과 몸체를 나무 하나로 만드는 기법으로, 통목조라고도 합니다. 겉면을 갈라지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전체 무게를 줄이려고 머리나 몸의 뒷면을 파내기도 했습니다. ‘요세기즈쿠리’ 기법은 나무 여러 개를 맞춰 불상을 만드는 기법으로 접목조라고도 합니다. 헤이안 후기를 대표하는 조각가 조초(定朝, ?~1057)가 완성한 이후 일본 불교조각품을 만드는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습니다. 이 기법은 당시 갑자기 늘어난 불상 수요에 맞추려고 나온 불상 제작 방식입니다. 공방에서 여러 사람이 분업할 수 있어 많은 불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5미터가 넘는 큰 불상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일본 불교 조각의 세계
일본의 불교미술은 6세기 이후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초기에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불상을 만들었으나, 헤이안시대에 해당하는 9세기부터는 일본의 독자적인 불교문화가 나타납니다.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한 밀교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한 정토교(淨土敎)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일본 고유의 신앙과 불교가 합해진 신불습합(神佛習合) 또한 한국과 중국에서는 없는 일본의 독특한 불교문화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의 불교신앙인 밀교, 정토교, 신불습합을 대표하는 5점의 조각품을 선보입니다. 전시품은 모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이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에서 불상은 주로 국가사업이나 귀족, 무사 가문의 후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완성된 불상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위안과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불상에 담긴 염원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습니다. 어려운 상화에서도 국경을 넘어 우리를 찾아온 부처와 만나, 그 염원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 이사나천(伊舍那天, 동북), 이마에 제3의 눈이 있고 몸이 녹색이며 해골을 연결한 목걸이와 피가 담긴 그릇을 들고 있다. 힌두교 주신 시바(Shiva)에 해당한다. 2. 바사문천(毘沙門天, 북방), 투구를 쓰고, 여래가 현현(顯現)한 탑과 삼지창을 들고 있다. 인도 신화 속 북방의 수호신 쿠베라(Kuvera)에 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3. 풍천(風天, 서북방), 머리,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다. 인도 신화 속 바람의 신 바유(Vayu)에 해당한다. 4. 수천(水天, 서방), 뱀과 용이 꿈틀대는 관을 쓰고 청색의 몸을 가지고 있다. 인도 신화속 물의 신 바루나(Varuna)에 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갑옷과 검을 갖추어 무장한 모습이다. 인도 신화의 악마 락샤사(Raksasa)에 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인간의 머리를 얹은 지방이를 들고 있다. 힌두교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야마(Yama)에 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눈이 셋, 팔이 넷인 고행선인(苦行仙人)의 모습으로 전신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 인도 신화 속 불의 신 아그니(Agni)에 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마에 제3의 눈이 있고 꽃 모양 거울인 팔엽경을 들었다. 인도 신화 속 전쟁의 신 인드라(Indra)에 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왼손에 꽃이 든 그릇을 들고 있다. 힌두교 대지의 여신 부미(Bhumi)에 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4면(四面) 4비(四臂)이며 각 손에 연꽃과 정병, 삼지창과 불자를 쥐고 있다. 힌두교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uma)에 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달을 의미하는 흰 원을 가지고 있다. 인도 신화 속 달의 신 찬드라(Candra)에 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태양을 의미하는 붉은 원을 가지고 있다. 인도 신화 속 태양의 신 수리야(Surya)에 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십이천(十二天), 가마쿠라 시대, 13세기 말 ~ 14세기 초, 액사/비단에 채색
하얀 물보라가 흩날리는 물 위로 솟아오른 바위에 털실로 짠 자리를 마련하여 십이천을 모신 열두 폭 그림이다. 십이천은 여덟 방위와 하늘, 땅 그리고 낮과 밤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신이다. 이 불화는 원래 관정(灌頂) 의식에 사용하려고 만든 병풍이다. 밀교에서 관정이란 스승이 제자의 머리에 물을 붓고 여러 계율과 자격을 이어 나가게 하는 의식이다. 지금은 액자로 되어 있지만, 근대 이전까지 일본 교토 소렌인(靑蓮院)에 족자로 전해졌다. 족자를 보관하던 나무 상자에는 덴쇼 20년(1592)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고, 그중 이사나천(동북쪽 하늘), 화천(동남쪽 하늘), 비사문천(북쪽 하늘), 풍천(서북쪽 하늘), 수천(서쪽 하늘)의 뒷면에는 에이로쿠 8년(1565)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색을 짙게 칠했을 뿐만 아니라 붓 선이 명확하고 사물을 분명하게 묘사하여 가마쿠라 시대 후기 불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늦어도 13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밀교
밀교(密敎)는 7세기 무렵에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의 한 갈래이다. 술법과 주술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밀교에서는 성스러운 장소를 정해 향과 나무를 태우면서 주문을 외우고 기도하는 방식으로 수행했다. 또한 얼굴과 팔이 여럿인 힌두교 신들의 특징을 이어받은 여러 모양의 불상들을 만들었다. 십일면관음이나 여의륜관음과 같은 색다른 불상들, 분노에 찬 무서운 표정의 부동명왕이나 애염명왕 등은 밀교 특유의 조각상들이다. 일본에서는 806년 고보대사(弘法大師) 구카이(空海, 774~835)가 당나라의 청룡사(靑龍寺)에서 밀교를 수학하고 귀국하면서 본격적으로 밀교가 소개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헤이안 시대를 대표하는 대장경 ‘진고지경’가운데 한 권으로, 일본 교토 다가오에 있는 절 진고지(神護寺)에 전해 내려온다. 불교에서 신도가 지켜야 할 규범을 담은 <십송률> 가운데 ‘제사송’을 썼다. 짙은 남색으로 물들인 종이에 은색으로 경계선을 긋고 금색으로 불경의 문구를 썼다. 표지에는 보상꽃과 당초 덩굴이 어우러진 무늬를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영취산을 배경으로 석가모니가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림 아래 한 줄을 비운 뒤에 계율의 제목을 쓰고 그 밑에 ‘神護寺’라는 네모난 도장을 찍었다. 도바덴노(1103~1156)의 뜻에 따라 만들어져, 고시라키와인 시대에 진고지에 기부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사경
불교 경전을 옮겨 쓰는 것을 ‘사경(寫經)’이라고 한다. 6세기에 불교가 일본에 전해진 이후 나라 시대에는 국가의 안녕을 위해 정부가 사경소를 세우고 경전을 베껴 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경생을 뽑아 사경사업을 크게 펼쳤다. 헤이안 시대에는 궁정 귀족과 지방 호족이 사경사업을 크게 후원했는데, 특히 귀족들의 미의식을 반영하여 화려하게 장식한 책이 만들어졌다. <구노지경(久能寺經)>, <지쿠부시마경(竹生島經)>, <주손지경(中尊寺經)>, <진고지경(神護寺經)> 등이 대표적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둥근 청동 판에 두꺼운 부조로 구리 불상을 붙이과 위쪽 양옆에는 사자 모양 금속 고리를 매달 수 있게 만든 관음보살상이다. 중앙에는 연꽃 모양 자리에 앉은 불상이 있고 머리 뒤에는 덩굴무늬의 둥근 빛 모양 조각이 있다. 불상 좌우에는 꽃병을 대칭으로 배치했으며, 불상의 머리 위에는 양산을 설치했던 흔적이 있다. 둥근 청동 판은 일본 고유 신앙에서 신이 머무는 장소인 거울을 의미한다. 이러한 청동 판에 관음보살 조각을 붙인 이 작품은 일본 고유신앙과 외래 종교인 불교가 융합한 신앙인 신불습합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이러한 작품은 사찰이나 신사 내부에 걸려 숭배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신불습합
일본 토착 신앙에서는 신령을 상징하는 거울을 만드는 것 이외에는 신의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6세기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일본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에서는 조각상을 만들고 신사를 세우는 새로운 바람이 일어났다. 일본의 신들은 불교에 귀의하는 형식을 빌려 부처나 보살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일본 고유의 신앙과 불교가 융합하는 것을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고 한다. 신불습합은 부처가 일본의 중생을 구원하고자 일본 토착 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믿는 본지수적(本地垂迹) 사상으로 발전했다. 불교는 신불습합과 본지수적 사상으로 일본 고유 신들을 불교 체계로 편입시켜 독자적인 종교관을 만들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불교의 수용과 전개
일본 문화는 6세기 중반에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발전했다. 불교는 역법, 천문, 지리, 의학, 새로운 농업생산 지식과 함께 일본에 전해졌으며 건축, 조각, 회화, 장식과 같은 예술 분야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 받아들인 불교는 중국에서 발달한 대승불교, 밀교(密敎), 선종(禪宗)이었다. 7~8세기 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에는 대승불교의 권위를 이용해 율령국가(법률로 다스리는 국가)를 세웠다. 불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전국에 절을 세우고 국가사업으로 도다이지(東大寺) 대불을 만들었다. 헤이안 시대(794~1192)에는 귀족계층의 지지를 받은 진언종(眞言宗)과 천태종(天台宗)이 유행하며 밀교 미술이 발달했다. 진언종과 천태종은 모두 주술적이고 복을 비는 성격이 강했으며 귀족들은 현세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불교를 믿었다. 가마쿠라 시대(1192~1333)에는 ‘신불교(新佛敎)라고 불린 정토종(淨土宗)과 선종이 널리 퍼졌다. 교토 오산의 승려들은 초상화와 수묵화가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무로마치 막부의 보호를 받으며 그들의 정치 조언자로 활동했다. 이처럼 일본 불교는 대륙의 불교문화를 받아 들이고 발전시켜 시대 요구에 맞추며 이어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