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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앗슈르 제국의 예술

앗슈르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존재했던 제국으로 보통 아시리아 또는 앗시리아라고 불린다. 청동기시대(기원전 2450년)부터 철기시대(기원전 609년)까지 티그리스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었다. 메소포타비아 지역에서 침략자 또는 정복자와 같은 군사적인 성격과 이미지가 강했던 제국이다. 앗슈르는 정복한 영토와 민족에 다양해 이집트, 아타톨리아, 시리아, 서이란의 문화를 흡수하여 기존 바빌로니아 문화와는 다른 독특한 미술 유산를 남기고 있다. 특히 조각은 앗슈릐 미술을 대표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단독적인 조각상은 많지 않지만 건축물을 장식하는 다양한 부조상들이 남아 있다. 사실적인 표현과 색채, 조각수법 등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유물로 베를린 페르가몬박물관에 복원되어 있는 ‘이쉬타르문’과 ‘행렬의 길’이 있다.

<낫칼, 기원전 약 1307~1275년, 중기 앗슈르 시대, 메소포타미아 북부 출토, 청동>
<명문이 새겨진 부분>

중기 앗슈르 왕 아다드-니라리 1세(기원전 1307~1275년 재위)의 명문이 칼날 양면에 있는 청동제 낫칼이다. 메소포나미아 예술에서 곡선 형태의 칼은 권위를 상징했기 때문에 신이나 왕이 칼을 든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칼은 실제 전투용이 아니라 아다드-니라리 왕이 의례 때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앗슈르의 왕 엔린-니라리의 아들인 앗슈르의 왕 아릭덴일리의 아들, 우주의 왕 아다드-니라리의 궁전”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앗슈르나찌르아폴리 2세의 명문을 새긴 쐐기문자 석판, 기원전 약 883~859년, 신-앗슈르 시대, 님루드 출토, 설화석고>

앗슈르나찌르아폴리 2세 때의 석판으로 왕의 여러 칭호와 군사적 위업을 적고, 님루드에 새로 지은 북서 궁전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동일한 명문이 궁전의 알현실과 방의 입구를 표시하는 부재 등 님루드에서 여러 건 확인되어 ‘표준 명문’이라 불린다. 앗슈르나찌르아폴리 2세는 전쟁을 치르면서 엄청난 공물과 전리품을 거둬들여 앗슈르를 크게 부유하게 만들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맹견 상(Mastiff), 기원전 1000년대 중반, 카슈 시대, 이라크 남부 출토, 구운 점토에 채색>

개는 메소포타미아 예술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점토로 빚어 구운 이 맹견 상은 내부가 비어 있고 표면에 칠했던 안료가 일부 남아 있다. 카슈 왕조의 장인들은 점토를 다루는데 능했는데 근육질의 몸통과 얼굴의 주름, 실을 꼰 형태의 목줄에서도 그 기술을 엿볼 수 있다. 머리 위의 구명은 부대를 상징하는 깃발을 꽂는 용도로 썼을 가능성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조공 행렬에 선 외국인 마부, 기원전 약 721~705년, 신-앗슈르 시대, 코르사바드 출토, 설화 석고>

말 두 필을 고삐로 끄는 마부를 묘사한 부조이다. 마구의 정교함이 돋보이는데, 굴레에 앗슈르식 장미 장식이 있고 이마 장식에서 숱이 내려오며 머리 위에는 근사한 문장(紋章)이 보인다. 마부는 차림새와 머리 모양으로 보아 앗슈르인이 아닌 외국인이다. 이 부조는 앗슈르에 조공을 바치는 외국 사절단의 모습을 담은 큰 조각의 일부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강가를 따라 말을 끄는 기병, 기원전 약 7 04~681년, 신-앗슈르 시대, 니네베 출토, 설화 석고>

니네베에 있는 신악하에리바 왕의 ‘대적할 자가 없는 궁전’을 꾸몄던 부조로 말을 끄는 앗슈르 기병을 묘사하였다. 이 장면은 전쟁에 나간 앗슈르인의 모습을 새겨 방 전체를 장식했던 대형 조각의 일부다. 기병은 원뿔형 투구, 단검, 가죽 또는 금속 미늘을 붙인 갑옷, 창, 활과 화살통 등 앗슈르 군인의 전형적이 차림새를 하고 있다. 앗슈르 시대 후기의 궁전 부조는 이렇게 풍경 요소를 빼곡히 채워 군사 일정을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앗슈르 왕세자, 기원전 약 704~681년, 신-앗슈르 시대, 니네베 출토, 설화 석고>

니네베에 있는 신악하에리바 왕의 ‘대적할 자가 없는 궁전’을 꾸몄던 부조로 긴 수염과 의복, 장신구로 미루어 지위가 높았던 인물을 표현했다. 등까지 길게 늘어진 천이 달린 머리장식은 그가 앗슈르의 왕세자라는 사실을 상징한다. 표면이 마모되어 정교한 세부 표현은 대부분 사라졌는데, 특히 왕세자의 얼굴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강을 건너라고 지시하는 앗슈르군인, 기원전 약 668~627년, 신-앗슈르 시대, 니네베 출토, 설화 석고>

창을 든 앗슈르 병사가 갈대로 만든 배의 선미에 서서 엘람인 포로에게 늪을 통과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여성 포로 들은 슬픈 듯 두 손을 들고 있다. 물에는 적의 시체가 떠 있다. 이란 남서부의 엘람 왕국은 앗슈르바니아폴리 왕이 여러 차례 싸웠던 나라다. 고대 서아시에서는 상을 만드는 것에 초자연적인 힘이 있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군은 늘 승리하는 모습으로, 적군은 무력하게 패하는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제국의 시대
기원전 1000년 전후는 한때 우세했던 정치 세력들이 멸망해 메소포타미아, 지중해 동부와 이집트에 이렇다 할 세력이 없는 기간이었다. 이 권력 공백기 뒤에 신-앗슈르 제국(기원전 약911 ~ 612년)과 신-바빌리 제국(기원전 약 626~539년)이 나타났다. 신-앗슈르 제국의 미술은 님루드, 코르사바드, 니네베 등 제국의 수도에 세워진 궁전을 장식한 대성 석판 부조를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부조에는 왕의 군사 원정 장면, 정복당한 민족이 추방되는 모습, 앗슈르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광경이 묘사되었다. 앗슈르 제국이 모으고 생산한 금은제 그릇, 상아가 상감 세공된 가구, 장신구 등의 사치품 역시 제국이 부조를 통해 드러내고 싶어한 강성함, 우월함을 보여준다. 신-바빌리 제국은 우수한 건축으로 이름을 떨쳤다. 신-바빌리 왕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성스러운 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신들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 바빌리를 재건했다. 양질의 벽돌로 만든 건축으로 명성이 높았던 이 시기의 바빌리인들은 벽돌 제작과 건축 기술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 면에 색을 넣은 벽돌들을 조합해 만든 다색의 부조 조각은 거대한 크기로 바빌리의 벽을 장식했다. 사자와 무슈후슈 용으로 장식한 이쉬타르 문이 가장 유명하다. 이 시기 바빌리는 고대 세계에서 불가사의로 불릴 만큼 경이롭고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사자 벽돌 패널, 기원전 약 604~562년, 신-바빌리 시대, 바빌리 출토, 구운 점토에 유약>
<얼굴 부분>

이쉬타르 여신을 상징하는 사자가 표현된 벽돌 벽의 일부이다. 청금석처럼 반짝이는 파란색 배경에 사자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표면에는 유약을 발랐다. 이 같은 사자상 120구가 나부쿠두리우쭈르 2세가 세운 이쉬타르 문에서 ‘신년 축제의 집’ 비트 아키루까지 이어지는 행렬길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쉬타르 문의 정면도 아다드 신과 마르둑 신을 상징하는 575구의 황수와 무슈후슈 용으로 꾸며져 있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사자 벽돌 패널, 기원전 약 604~562년, 신-바빌리 시대, 바빌리 출토, 구운 점토에 유약>

이쉬타르 여신을 상징하는 사자가 표현된 벽돌벽의 일부이다. 청금석처럼 반짝이는 파란색 배경에 사자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표면에는 유약을 발랐다. 이 같은 사자상 120구가 나부쿠두리우쭈르 2세가 세운 이쉬타르 문에서 ‘신년 축제의 집’ 비트 아키투까지 이어지는 행렬길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쉬타르 문의 정면도 아다드 신과 미르둑 신을 상징하는 675구의 황소와 용으로 꾸며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아다드-슈마-우쯔르 왕의 명문을 새긴 벽돌, 기원전 약 1216~ 1187년 재위, 카슈시대, 납푸르 출토, 구운 점토>
<벽돌, 기원전 9세기, 신-앗슈르 시대, 님루드 출토, 구운 점토에 유약>

연두색이 섞인 파랑, 노랑, 검정, 흰색으로 끈을 꼰 모양의 무늬를 그린 벽돌이다. 석재가 귀했던 앗슈르인들은 궁전 벽을 장식할 때 이처럼 유약을 바른 벽돌을 많이 썼다. 벽돌은 간단한 장식이 그려진 것부터 인물이나 서사적 장면이 들어간 것까지 다양했다. 현재까지 전하는 앗슈르 벽돌은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바른 것이 대부분이지만, 앗슈르악하잇디나 왕의 통치기부터 벽돌에 장식  부조를 가미하기 시작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벽돌, 기원전 9세기, 신-앗슈르 시대, 님루드 출토, 구운 점토에 유약>
<벽돌, 기원전 9세기, 신-앗슈르 시대, 님루드 출토, 구운 점토에 유약>

벽돌과 벽돌 제작
다소 수수한 외양이긴 해도 벽돌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였고 벽돌을 만드는 방식은 메소포타미아의 세계관과도 관련이 있다. 가장 단순한 벽돌은 충적토와 진흙을 섞은 뒤 겨나 동물의 배설물을 더해 단단하게 말린 것이다. 창세 신화에서 인간의 창조에 사용된 재료가 충적토였기에 고대 사람들은 벽돌 제작을 창조 그 자체로 여기기도 했다. 틀에 찍어 대량으로 생산한 벽돌로 지은 건물들이 거대한 도시의 건물 단지를 형성했고, 때로는 벽돌 표면에 정교한 부조를 더하거나 빛나는 유약을 발라 장식하기도 했다. 바빌리는 벽돌 건축물로 손꼽히는 도시였다. 대표적인 예가 기원전 6세기에 나부쿠두리우쭈르 2세가 세운 ‘이쉬타르 문’과 ‘행렬의 길’이다. 이들은 현재 베를린은 페르가몬박물관에 일부 복원되어 있다. 바빌리의 상징이 된 이 건조물은 순천 년을 이어 내려온 고도이 벽돌 제작 전통 위에 건설되었으며 고대 서아시아 전역에서 형태나 함량이 비슷한 벽돌이 발견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앗슈르제국의 예술
기원전 9세기 초, 서아시아와 지중해 동부 해안에 정치.사회적 혼란기가 끝나고 앗슈르제국이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차지했다. 앗슈르나찌르아폴리 2세(기원전 883~859년 재위)의 통치 아래 앗슈르제국은 중기 앗슈르 시대(기원전 약 1400~1000년) 때의 영토 대부분을 되찾았다. 앗슈르나찌르아폴리 2세는 앗슈르제국의 수도를 기존의 앗슈르에서 님루드로 옮기고 신전과 기념비적인 새궁전을 짓는 대규모 건설 사업을 진행했다. 앗슈르나찌르아폴리 2세를 상징하는 건물인 님루드 궁전은 앗슈르 정치 이념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궁전의 내부는 앗슈르나찌르아폴리 2세와 그의 군대, 신하, 시종들이 의례, 전쟁, 사냥에 참여하는 장면을 부조로 조각한 커다란 석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앗슈르나찌르아폴리 2세가 신으로부터 받은 축복과 앗슈르의 영토 확장을 과시하려는 목적이었다. 기원전 7세기 앗슈르 제국의 권세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의 영토는 이란 서부의 자그로스 일대부터 지중해, 이집트까지 확장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메소포타미아 미술’,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