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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아스테카] 다섯번째 태양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22년 봄 “아스테카(Aztecs),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이라는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아스테카 문명은 1521년 스페인에게 멸망될 때까지 멕시코에서 존재했다. 그들을 역사와 문화는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인신공양이라는 잔혹성과 스페인의 정복 이야기로 알려진 부분이 많다. 전시는 멕시코와 유럽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중요한 유물들로 구성되었다. 전시를 통해 멕시코에 살았던 아스테카인의 예술, 지식, 경제와 통치체제 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은 중앙아메리카에 세거워진 거대 피라미드 건축물들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신대륙 발견 이전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인구는 10만 정도였다. 그 역사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은데 기원후 500년까지 번성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대 아스테카 사람들은 이 도시를 ‘신의 탄생지’로 특별하게 여겼다,

<1. 가면, 테오티우아칸, 200~600년, 돌, 독일 슈트르가르트 린덴박물관>
<1. 가면, 테오티우아칸, 200~600년, 돌, 독일 슈트르가르트 린덴박물관>

콜럼버스 이전 시기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국가 중 하나였던 테오티우아칸은 아스테카 신화에서 태양과 달이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테오티우아칸에서는 이런 가면을 대량으로 생산했는데, 후대의 아스테카 사람들은 이것을 발굴하여 봉헌물 상자에 담아 자신들의 신에게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
현대의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벨리즈, 엘살바드로를 아우르는 메소아메리카 지역은 기원전 1500년경 태동한 올메카 문명을 시작으로 긴 문화적 전통을 자랑합니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문화와 국가들이 번성하고 또 사라졌으며, 이 가운데 아스테카는 원주민이 세운 최후의 국가였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자신보다 앞서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번영하였던 국가인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를 특별하게 여겼습니다. 북쪽에서 내려온 아스테카는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의 문화를 모방하고, 자신들과 연결하여 이 지역의 통치를 정당화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테오티우아칸을 ‘신들이 사는 도시’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스테카 사람들은 신성한 물품을 찾고자 이 도시를 발굴하였고, 그렇게 찾은 보물을 신을 위한 제의 때 바쳤습니다.

스페인에 정복되기 전 아스테카인들은 역사와 종교 등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많은 문서들을 남겼지만 현재는 스무권 정도만 남아 있다. 이후 귀족층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들도 남아 있다.

<1. 주시-너틀 고문서, 복제품, 198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스페인 식민지 이전에 제작한 원주민 고문서입니다. 이러한 고문서에 역사와 종교에 관한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에는 수천권이 존재했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식민지 이전 시대 고문서는 전부 합쳐 스무권이 채 안됩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과 선교들은 토착 지식을 말살하기 위해 대다수의 고문서를 파괴했습니다. 이 고문서는 아스테카의 남쪽에 위치했던 미스테카 종족 가운데 한 도시국가의 왕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고문서의 이름은 소장자와 연구자의 이름에서 가져왔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돈 후안 치치메카테쿠틀리 고문서, 툴라스칼라, 1560년경, 면 위에 채색,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스페인에 정복된 이후, 각 지역의 원주민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이들은 커다란 면직물에 자신들의 계보를 적은 문서를 만들어 토지의 소유권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스페인 식민지 이전 시대의 전통에 따라 그림문자로 작성하였고, 그 옆에는 알파벳으로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 고문서는 틀라스칼라 지역의 한 수장이었던 돈 후안 치치메카테쿠틀리가 작성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의 정보, 고문서
오늘날 아스테카에 대한 지식은 원주민 그림 문서, 식민지 시대(1521~1821년) 유럽인의 기록, 고고학 발굴, 그리고 현대 원주민의 전통문화 등 다양한 경로로 수집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식민지 시대 유럽인의 기록을 사실적인 목격담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은 아스테카의 폭력성을 부풀리고, 잔혹한 제의에 집착한 사람들이라는 과장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아스테카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묘사하여 유럽의 식민 지배와 새로운 종교의 강요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이전 아스테카 사람들이 기록한 그림 문서는 그들의  생활상과 신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아주 소수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행이 이러한 원주민 고문서와 식민지 시대 기록은 현대 고고학 발굴 성과를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멕시코 아스테카인들을 비롯하여 원주민들이 사용한 역법체계를 멕시카력(calendarios mexicas)라 부른다. 멕시카력은 365일 1주인 태양력 시우포우알리(xiuhpōhualli)와 260일이 1주기인 제의력 토날포우알리(tōnalpōhualli)로 구성된다. 두 달력은 52년에 만나며 이를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태양력은 농업을 위한 용도로, 제의력은 의례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날짜를 새긴 갈대 다발 시우몰필리, 아스테카, 1450~1521년,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아스테카에서 사용한 두 종류의 달력, 즉 태양력과 제의력은 52년에 한 번씩 날짜가 겹쳐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 중요한 날에는 52개의 갈대로 만든 다발을 불태우는 ‘새로운 불’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돌로 만든 갈대 다발 시우몰필리(xiuhmopilli)를 신께 봉헌물로 바치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달력시스템>

달력
아스테카 사람들은 여러 달력을 사용했습니다. 260일로 이루어진 제의용 달력 토날포우알리는 제의와 점술에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여러 원주민 공동체는 여전히 이 달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양력 시우포우알리는 365일로 이루어졌습니다. 두 달력은 52년마다 같은 날에 시작됩니다. 바로 이날, 아스테카에서는 ‘새로운 불씨’ 제의를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도시의 모든 불을 끄고 신성한 산에서 새로운 불씨를 지핀 후, 모든 곳으로 전달했습니다. 이것은 지난 세대의 종말을 의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3부싯돌’ 해 ’12도마뱀’ 날 장식판><’13재규어’ 날 장식판>

‘3부싯돌’ 해 ’12도마뱀’ 날 장식판, 아스테카, 1450~1521년,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3부싯돌’과 ’12도마뱀’이라는 아스테카 달력 기호를 돋을새김 한 석판입니다. 석판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부싯돌과 왼쪽의 점 세개는 ‘3부싯돌’의 해를 나타냅니다. 오른쪽의 작은 형상은 ’12도마뱀’ 날을 나타낸 것입니다. 둘을 합치면 ‘3부싯돌’ 해 ’12도마뱀’ 날이 됩니다. 이 석판은 본래 건축물을 장식하였던 것이어서 건축물과 관련 있는 기념일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3재규어’ 날 장식판, 아스테카, 1450 ~ 1521년, 돌, 안료,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루카스 피셔 컬렉션
석판은 260일로 이루어진 아스테카의 제의용 달력 토날포우알리(tonalpohualli)의 날짜 중 하나인 ’13재규어’ 날을 돋을새김 했습니다. 완공일 등 건축물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중요한 날을 기념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부싯돌’ 날과 ’13갈대’ 날을 새긴 인물><태양의 신 토나티우><등이 굽은 신 나나우아친>

‘1부싯돌’ 날과 ’13갈대’ 날을 새긴 인물, 테오티우아칸, 제작 250~75년경, 재가공 1450~1521년, 사문석, 독일 함부르크 로테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인물상은 아스테카 이전인 기원후 250~750년에 테우티우아칸에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에 새긴 ‘1부싯돌’과 ’13갈대’라는 날짜는 아스테카의 달력 표기법입니다. 아스테카에서 ’12갈대’는 태양의 탄생을 의미하며, ‘1부싯돌’은 수호신인 우이칠로포츠틀리의 탄생일입니다. ‘신들의 도시’라고 불린 테오티우아칸에서 만든 인물상에 아스테카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념일을 새겨 넣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태양의 신 토나티우, 아스테카, 1450~1521년, 응회암, 안료,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태양의 신 토나티우가 등에 태양 원반을 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테오티우아칸에서 불길 속에 몸을 던진 나나 우아친은 태양의 신 토나티우가 되었습니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나타내듯 토나티우의 몸을 본래 붉은색 안료로 칠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등이 굽은 신 나나우아친, 아스테카, 1500년경, 화산암,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네번째 태양이 빛을 잃은 뒤 등이 굽은 나나우아친 신은 ‘다선번째 태양이 되기 위해 주저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태양의 신 토나티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다섯번째 태양
아스테카 사람들은 세상이 총 다섯 번의 탄생과 네 번의 파괴를 거듭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각 세상에는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아스테카와 우리는 다섯 번째 세상, 즉 ‘움직임의 태양’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태양은 ‘신들의 도시’로 알려진 테오티우아칸에서 탄생했습니다. 신들은 부유한 테쿠시스테카틀 신과 가난한 나나우아친 신에게 불에 뛰어들어 새로운 태양이 되라고 했습니다. 거대한 불이 타올랐고, 성실한 나나우아친은 주저없이 불 속에 몸을 던져 태양의 신 토나티우가 되었습니다. 뒤늦게 뛰어든 테쿠시스테카틀도 해가 되었지만 신이 던진 토끼에 맞은 후 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태양과 달은 여전히 하늘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모든 신들이 피를 내어 자기를 희생한 후에야 비로소 태양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아스테카 사람들은 태양을 탄생생시키고 움직이게 한 신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태양, 즉 세상이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피와 심장을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그날 밤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께서 꿈에 나타나 말씀하였다. “돌 위에 쓰러진 적의 심장에서 자라난 멋진 선인장 위에 아름다운 독수리가 앉아 있는 곳을 찾으라. 그곳을 테노츠티틀란이라 하라” – 디에고 두란, <누에바에스파냐 원주민의 역사> 1581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태양의 돌(Piedra del Sol)은 멕시코 아스테카를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직경 3.6m, 무게 25,000kg의 거대한 조각품이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후 멕시코시대 중앙광장에 묻혔다가 1790년 대성당을 수리하는 과정에 발견되었다.  1502년에서 1521년 사이에 조각된 것으로 당시 통치자의 업적을 기념하는 기념비이다. 조각된 내용은 아즈테카인들의 우주 탄생 신화의 중요한 구성요소들을 표현하고 있다.

<태양의 돌, 2019년 3D 프린트 복제>

가운데 신을 둘러싸고 있는 네개이 사각형은 이전 시대 ‘4개의 태양 또는 시대를 나타낸다. 아크테카인들은 멕시코 중앙고원의 권력을 장악한 후 다섯번째 태양을 도입했다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1번째 고리는 태양력과 제의력의 주요 구성요소들을 표현하고 있다.

<조명이 비친 모습>
<조명이 비친 모습>

태양의 돌은 1790년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목테수마 2세 때 만든 것으로 보이며, 무게는 25,000kg에 달합니다. 지금은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여기에 전시된 태양의 돌은 실믈을 3D프린터로 정교하게 재현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아스테카 사람들은 두 명의 창조신과 그들이 만든 수백 명의 신들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신들의 희생으로 태양과 세상이 탄생하고 올바르게 작동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인간 역시 이러한 신들 덕분에 존재하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신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세상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신성한 제의와 성스러운 제물을 바쳤습니다. 아스테카의 정치, 경제, 종교 등 모든 사회 시스템은 바로 이러한 아스테카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태양의 돌은 아스테카의의 신비롭고 복잡한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아스테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그 무게는 25,000kg에 달합니다. 영상을 통해 아스테카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들의 신비로운 신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멕시코 아스테카 문명 지역>

멕시코 중앙고원의 강자, 아스테카

  • 지역: 멕시코 중앙고원/멕시코, 과테말라 일부
  • 시기: 11세기 ~ 1521년
  • 전성기” 1325년 ~ 1519년
  • 중심지: 테노츠티틀란(현재 멕시코 시티)
  • 언어: 나우아틀어
  • 문자: 그림문자

메소아메리카는 오늘날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벨리즈, 엘살바도르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후 1500년까지 수많은 국가와 문화가 등장했습니다. 이 중 멕시코 중앙고원에 자리하였던 아스테카는 메소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이자 최후의 원주민 국가입니다. 북쪽에서 내려온 이주민 세력인 아스테카는 14세기 초에 테스코코 호수의 테노츠티틀란 섬에 정착한 후 테슼코코 틀라코판과 함께 삼각동맴을 맺고 중앙고원의 중심국가로 성장합니다. 이들은 활발한 정복전쟁과 공물시스템으로 멕시코 중부를 차지했으며, 북쪽으로 미국 남부, 남쪽으로는 과테말라까지 경제적 교류를 했습니다. 아스테카는 마야와 같이 거대한 피라미드 신전을 축조했으며, 이곳에서 희생제의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적 의례가 행해졌습니다. 아스테카는 본래 ‘아스틀란 출신 사람들’이란 뜻으로 아스틀란은 그들의 신화적 고향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메시카’로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현재의 국명 ‘멕시코’와 수도 ‘멕시코시티’로 이어지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의 유산
아스테카는 500년 전에 멸망했지만 그 문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쉽니다. 현대 멕시코 문화는 아스테카로 대표되는 토착문화와 스페인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토착 종교들과 기독교, 전통 의학과 현대 의학, 토착 언어와 스페인어가 함께 공존하며, 독특한 양상으로 융합하여 멕시코 특유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멕시코라는 국가명도 아스테카 사람들이 스스로를 불렀던 ‘메시카’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테노츠티틀란의 상징인 독수리와 선인장은 오늘날 멕시코 국기에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약 150만 명의 사람들이 아스테카 언어인 나우아틀러을 사용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회의 부족으로 인해 공동체를 떠난 이들도 많지만, 세계화의 변화 속에서 여전히 그들의 언어와 전통문화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500여 년의 식민과 차별의 역사에도, 멕시코의 토착문화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2022년
  2. ‘아즈텍 문명’, 위키백과, 2023년
  3. ‘Aztec sun stone’, wikipedia,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