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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 등운산 고운사

불교중앙박물관에서는 2022년 가을 ‘등운사 고운사’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고운사(高雲寺)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며 최치원이 자신의 자(字)를 따서 고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통일신라말 도선이 크게 중창했다고 한다. 그후의 사찰 내력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으며 조선중기 이후에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전국 31본산의 하나로 경북지역을 대표하는 5개 사찰 중 하나였다. 소장 유물로는 ‘석조여래좌상(보물)’, 가운루, 삼층석탑, 연수전 등이 있다. 전시에는 사찰의 내력을 보여주는 주요 자료들과 함께 고운사에서 머물면서 큰 역할을 했던 고승들의 영정과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등운산 고운사’ 특별전>

<고운사 편액 조선말 ~ 근대, 의성 고운사>

<대웅전 편액, 조선후기, 의성 고운사>

<고금당 편액, 대한제국 1902년, 의성 고운사>


<우화루 편액, 조선 1809년, 의성 고운사>

<고운사 중수기 현판, 조선 1887년, 의성 고운사>

<모니극락양전불상개금기, 조선 1858년, 의성 고운사>, <고운사 중창기 현판, 조선 1902년 추정, 의성 고운사>

<계원필경, 조선 1834년,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계원필경>은 신라 말기 고운사의 중창자인 최치원이 지은 문집으로 총 20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부터 14건까지는 879년 10월 이후 885년 3월 이전까지의 기록이다. 당나라 말기 황소와 천능을 비롯한 중국 각 지역의 반란을 비판한 <토황소격문>이 포함된 글들이 실려 있다. 또한 15권부터 20권까지는 여러 시문 중 불교와 관련한 글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유학자였지만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최치원의 불교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호계첩 목판, 일제강점기 1919년, 의성 고운사>


<고운사 사적비 탁본, 의성 고운사>

<석가불좌상, 조선 전기, 의성 고운사>

고운사 나한전에 봉안된 불상이다. 고운사 나한전은 원래 모니전(牟尼殿)이였으나 1990년대 현재의 대웅보전이 건립되며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 참잠한 상호나, 무릎이 낮고 상체가 긴 상의 비례 등으로 보아 조선 전기인 15~16세기 사이에 조성된 상으로 보인다. 석조불좌상과 삼층석탑을 제외하고 17세기 이전의 성보를 찾아보기 힘든 고운사에서 나한전의 석가불좌상은 조선 전기 사찰의 연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사찰령 개정에 따른 고운사 재산대장>에는 높이 3자(약 90cm)로 1482년의 제작시기가 남아 있는 석가불좌상 1구 기록되어 있어, 현존하는 나한전 상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목조아미타불좌상, 조선 1695년, 의성 고운사>

고운사 극락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삼존불 좌상의 주존이다. 신유한의 고운사사적비(1729)에는 1695년(숙종21)에 아미타불상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각승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상의 형식적 특징, 팔각 대좌 내부 천인상의 표 현으로 보아 탁밀 스님의 영향을 받은 불상으로 추정된다. 소영 신경 스님이 고운사에 주석하던 시기의 상이기 때문에 조각승의선정 및 불사 전반에 깊이 관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우순풍조만민함락 원패, 조선후기, 의성 고운사>

이 패는 방형의 패좌에 3엽의 연꽃을 조각하였고, 패두와 패신은 단청으로 채색하였다. 크기가 작고 장엄과 구조면에서 간략화되며, 하나의 나무로 패두와 패신을 제작하고 패좌로 결합하는 형태는 조선 후기 특징을 잘 보여준다. 덧칠된 패액의 붉은 바탕 아래로 ‘세자저하수만세’의 명문이 보이는 부분이 있어 본래의 용도를 확인할 수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왕비전하수제년 전패, 조선 후기, 의성 고운사>

불전 내 불단 위에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빌기 위한 삼전패 중 하나이다. 패두는 왕실을 상징하는 용과 그름무늬를 깊게 새기고 금색.청색.적생 등 화려한 단청으로 마감하였다. 패신은 꽃무늬와 잎사귀문양을 새겼으며, 중앙에는 ‘왕비전하수제년’ 문구를 넣은 후 금칠로 마무리하였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조선 1670년, 의성 고운사>

<지장보살>

신유한의 고운사중수기(1729)에는 1670년(현종11)에 명부전과 존상들이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장보살상이 두 손을 낮게 두고 있는 점, 정방형의 얼굴에 기다란 귀와 매부리코로 대표되는 상호 표현 등에서 단응 스님의 특징을 보여 조각승을 추정해 볼 수 있다.이 시기는 소영 신경 스님이 고운사에 주석하며 불사를 관장하던 시기로 명부존상의 조성과 신경 스님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시왕상의 착의나 의습선 표현이 화려하며, 의복과 의자 내부에 다양한 인물상이 표현되어 있어 독특하다. 최근 이운 과정에서 지장보살좌상 대좌 하단 좌복의 명문에 1725년(영조1) 지장보살을 중수한 기록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미타불회도, 조선 1701년, 삼베에 채색, 의성 고운사>

<아미타불>

고운사 극락전 아미타불회도로 소영 신경 스님이 증명하고 혜명 스님과 도문 스님이 조성하였다. 이 그림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비롯한 6위의 보살이 시립해 있고, 두광 주변에는 2위의 타방불,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포함한 19대 제자, 북방다문천왕와 서방광목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고운사의 아미타불회도를 조성한 혜명스님과 도문스님은 17세말부터 18세기 초까지 경상북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소용돌이 형태의 금니문양과 오색화문의 표현은 같은 시기에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해웅, 상린, 의균 스님의 특징으로 화풍의 굘 역시 살펴볼 수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사십이수관음보살도, 조선 1828년, 비단에 채색, 의성 고운사>

천수천안관음보살은 모든 병과 악업, 중죄를 없애주고 안락과 수명, 부귀를 주는 관음으로 널리 신앙된다. 경전에서는 ‘서수천안’의 형상에 대해 규정하지 않았으나 42개의손으로 표현되며 각 손마다 한 개의 눈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슴 앞의 손으 ㄴ수인을 결하고 있고, 18쌍의 손은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각각 지물을 들고 있다. 보살의 양쪽 허리 부근에는 촉지인과 설법인을 취한 화불이 표현되었다. 이 그림을 그린 퇴운 신겸 스님은 경상북도 문경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불산화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활동하였다. 활동 후반기에는 고운사에 주석하며 고운사의 불화 전반을 조성하였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쌍수암 영산회상도, 조선 1887년, 비단에 색, 의성 고운사>

쌍수암 영산회상도는 기존 영산회상도와는 다르게 난간을 두른 넓은 육각형의 단 안에 사각형의 대좌를 놓고 석가모니불과 보살, 십육나한을 비롯한 여러 존상들을 배치하였다. 난간 아래에는 연꽃이 활짝 핀 연못을 표현하였다. 화면 전체적으로 적색과 군청색 계통의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였다. 화기이 기록을 통해 하은 응상 스님을 비롯하여 한규, 범임, 서휘, 소현, 봉화 스님이 함께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사불산화파의 일원으로 활동한 응상 스님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불영패, 조선 1696년, 의성 고운사>

불영패는 둥근 놋쇄거울과 불꽃무늬 장식, 대좌의 요소를 갖춘 경대의전형적인 형식을 하고 있으나, 명문에 ‘불영패(佛影牌)’라는 명칭이 있어 부처님의 모습이 어린 패, 즉 불성이 비치는 명경로 볼 수 있다. 이 패의 명문을 통해 업경대와 다른 명경대가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패의 바닥면에는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조각승 탁밀 스님과 보웅 스님이 조성에 참여한 기록이 있어, 불교 의식구와 공양구 제작에도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고운사의 역사와 성보
의성 등운산 고운사(孤雲寺)는 사찰을 관통하는 계곡이 여러 전각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681년 창건된 이후 오랜 기간 법등을 이어 가면서 계곡을 따라 지금의 권역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계곡은 현재 일부 복개하였으나, 가운루 아래로 계곡의 모습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고운사의 석조불좌상과 삼층석탑은 사찰의 창건 시기와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17세기부터는 고운사의 확장되는 사세를 살펴볼 수 있다. 1670년 명부전 건립, 1695년 극락전 아미타불좌상, 1701년 아미타불회도 등 고운사를 대표하는 성보들이 이 시기에 조성되었다. 고운사는 1835년 큰 화재를 입고 여러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이를 중수하기 위한 스님들의 노력이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16교구 본사로 영남 북주 지역의 사찰을 이끌고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각항등록, 조선 1802년, 의성 고운사>

<각항등록>은 1802년 고운사와 고운사의 말사가 조선 왕실과 관아에 다양한 물품을 진상한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책의 본문에는 본사인 고운사를 시작으로 수정사, 운람사, 지보사, 주월사 등의 사찰에서 다양한 물품을 관납한 것을 차례로 기록했다. 책의 내용을 통해 19세기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고운사가 여러 사찰을 관할한 사실과 조선 후기 사원 경제에서 사찰의 다양한 역할에 대해 파악할 수 있어 의미가큰 자료이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어회계안, 조선 1895년 추정, 의성 고운사>

범패, 범음, 범무 등 불교 의식 작법을 어산(魚山)이라 칭한다. 어회계는 어장 스님들의 모임으로, <어회계안>은 모임원의 명단을 적어놓은 것이다. 서문에 어산은 공덕을 비롯하여 흥기를 기원하는 발원이 담겨 있으며, 좌목을 두어 스님들의 이름을 적었다. 여러 해에 걸쳐 기록된 듯 첫 좌목에 기입된 스님의 이름 아래에는 열반을 뜻하는 ‘적’이나 탈퇴를 뜻하는 ‘퇴’가 적혀 있으며, 새로 가입한 경우에는 가입한 해와 가입한 스님들의 이름을 적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추원록, 조선 1888년, 의성 고운사>

<추원록>은 재(齋)나 불공 시에 명복을 빌기 위한 영기들의 명단을 적은 것으로 고운사 운수암에서 사용된 것이다. ‘영각 좌목’이라는 제를 보아 영각(影閣_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사명 유정 스님부터 함흥 치능 스님까지 추원을 비는 선사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뒷부분에는 명복을 비는 소를 적어 의례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수월 영민 스님
수월 영민(1817~1893) 스님은 함홍 치능 스님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고운사의 고승이다. 영민 스님은 편양 언기 스님의 4세손인 기성 쾌선 스님의 법맥을 이은 스님이다. 스님의 비명에는 수행자로서의 모습이 주로 확인되는데, 남암에서 결사를 조직하여 수행하고, 10년간 면벽수행을 진행하여 생전에 몸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이적이 기록되어 있다. 고운사의 산내 암자인 쌍수암에 주석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근현대 고승인 용성(1864~1940) 스님에게 지도한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수월대사영찬 현판, 대한제국 1898년, 의성 고운사>

영찬은 진영에 기록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수월대사영찬의 경우 별도로 현판을 제작하여 진영화 함께 봉안하였다. 영찬에는 64과의 사리가 출현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리학자 방산거사 허훈이 글을 지었으며, 수월당영민대사비 음기에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 현판의 뒷면에 1898년 4월에 새겼다는 묵서가 남아 있어 영민 스님이 입적하신 후에 현판이 제작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수월당대선사영민진영, 근대, 비단에 채색, 의성 고운사>

수월 영민 스님의 진영이다. 수월 영민스님은 깨달음의 상징적 결정체인 사리가 생전에 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스님은 1833년 17세에 의성 고운사로 출가하였다. 10년 동안 면벽 수도를 수행했고,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며 스승들을 찾아 정진하였다. 끝없는 수행으로 약 64과의 사리가 출현했으며 1893년 세납 71세, 법랍 61세로 입적하였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화엄경도, 조선후기, 의성 고운사>

화엄경도는 80권본 <대방광불화엄경>의 내용을 간략하게 도해한 그림이다. 화면의 중하단부에는 일곱 개의 원 내부에 <화엄경>을 설한 일곱 곳과 37품의 품제, 설주보살이 명기되어 화엄경과 관련된 불화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의 외곽부에는 호법신중이, 내부에는 불보살의 명호가 확인되는데, 이는 <화엄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화엄성중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고운사 소장 화엄경도는 예천 용문사의 화장찰해도(1869)와 같이 19세기 영남 북부지역에 유행했던 화엄 신앙을 반영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함홍당대선사치능진영, 조선후기, 비단에 색, 의성 고운사>

진영에 묘사된 함홍 치능 스님은 먹색 장삼과 홍가사를 수하고 화면 왼편을 바라보며 돗자리 위에 단정히 앉아 있다. 왼손은 주장자를 쥐고 염주를 건 오른손은 여러 경전을 쌓은 경상 위에 올려두었다. 펼쳐진 경전은 <화엄경>, <보현행원품>이다. 영제 바로 옆에는 찬(讚)도 남아 있다. 치능 스님이 직접 지은 찬으로, 찬에는 ‘불자를 든 모습이 7할 쯤 비슷하다.’라고 하였으나 진영 속 스님은 주장자를 쥐고 있어 상이하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차사 창건주의상조사진영, 일제강점기 1915년, 비단에 채색, 의성 고운사>

의상 스님은 당나라에서 화엄종을 연구한 뒤 귀국하여 국내에 10여개의 화엄종 사찰을 건립하고 화엄 사상의 보급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이러한 의상 스님은 681년 등운산 골짜기에 고운사를 창건하였다 전한다. 그림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의상 스님은 먹색 장삼을 입고 왼손에는 붉은색의 주장자를 들고 있다. 스님은 파란 바탕을 배경으로 화문석 위에 가부좌의 자세이며, 가는 필치로 날카로우며 강직한 얼굴이 묘사되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송운당사명대사진영, 조선 1768년, 비단에 채색 안동 봉정사>

사명 유정 스님의 진영이다. 유정 스님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승인 휴정 스님에 이어 승병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정 스님과 그의 제자들은 금강산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상도에서 활동하였는데, 이때 고운사를 식량비축을 비롯해 부상병의 치료가 이루어지는 승병들의 기지 역할로 이용했다고 전한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대방광불화엄경소초>

소영 신경 스님
소영 신경(미상~1706) 스님은 환적 의천 스님의 법맥을 이었으며, 문도인 단응, 탁밀 스님 등과 함께 다양한 불사를 진행하였다. 이 스님들은 예천 용문사의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684)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성보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고운사에 남아 있는 성보 중 명부전의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1670), 극락전의 목조아미타불좌상과 대세지보살상(1695), 아미타불회도(1701)는 신경 스님과 문도들의 영향을 받아 조성되었다. 또한 선종소영대사비가 고운사 승탑원에 남아 있어 신경스님이 고운사에 주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경 스님은 불사의 후원자로서 대곡사, 운람사, 광흥사 등 주변 사찰의 성보를 새롭게 조성하거나 중수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경북오본산고금기요, 일제강점기 1937년,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경북오본산고금기요>는 1937년 경북불교협회에서 발행한 책으로, 경상북도 5개 본산인 의성 고운사, 영천 은해사, 대구 동화사, 문경 김룡사, 경주 기림사의 주요 사건을 수록하였다. 각 사찰의 연포.문서.본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개 본산의 창건과 중수, 각 사찰에서 입적한 고승들이 비문, 탑.불화.불상의 조성을 시간순으로 기록하였다. 특히 고운사 목에는 사찰의 창건부터 조선후기까지의 역사 자료를 집성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고운사의 연혁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된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청천집 권5, 조선 1770년,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후기의 문인인 청천 신유한(1681~1752)의 문집이다. <청천집>에는 1729년 고운사의 역사를 최초로 정리한 고운사사적비의 비명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에는 851년 의상대사가 고운사를 창건한 내용으로 시작하여, 고려 초 운주화상과 천우조사의 중수, 1668년 가허루의 중수, 1670년 명부전 건립, 1695년 극락전 보수 등의 내용이 있어 고운사의 내력을 파악할 수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대곡사 소조십육나한상, 조선 1694년, 의성 대곡사>

대곡사 나한전에 봉안된 나한상과 범천상이다. 대곡사 나한전에는 본래 석가모니불과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의 삼존과 십육나한이 배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955년 이후 전각이 해체되었다가 1990년에 다시 복원하면서 나한전의 존상배치에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대곡사 나한전의 존상 배치와 제작 시기르 추정한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연구에 의하면 나한전의 존상들은 1964년에 소영 신경 스님의 증명으로 탁밀스님을 비롯하여 10여명의 조각승에 의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운람사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유물, 의성 운람사>

<뒷편>

운람사 보광전 목조아미타불좌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복장유물로, 초조본 <불설가섭부불반열반경>(11세기)과 더불어 총 27종 165점의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중수기는 총 3매가 이어져 있는데, 각각 1602년.1704년.1741년에 불상을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의 중수 가운데 1704년에 거행된 불사에는 증명법사 신경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데, 이는 소영 신경 스님 법명의 다른 한자 표기이다. 신경 스님이 고운사를 중심으로 많은 사찰에서 활동하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한글서간, 조선 1692년, 안동 광흥사>

신민 스님이 응화원, 밀화원, 웅화원에게 쓴 편지이다. 응화원, 밀화원, 웅화원은 시왕상 발원문에 등장하는 단응, 탁밀, 보웅 스님으로 추정되는데 각 명칭은 친근한 의미로 부르는 호칭이다. 서간인 편지글은 사찰을 혼란스럽게 한 죄인에 대해 죄를 묻고 이를 추궁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광흥사 시왕상 발원문, 조선 1692년, 안동 광흥사>

광흥사 시왕상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이다. 발원문은 총 2점이 발견되었는데, 시주질에서만 약간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같다. 강희 31년(1692) 7월에 광흥사 시왕을 조성하였음을 밝히고 여러 물건의 목록, 시주한 시주자들과 상을 조성한 스님들을 밝혔다. 소영 신경스님을 증명으로 하여 단응, 탁밀 덕륜, 보웅 스님 등이 시왕상을 조성하였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광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조선 1692년, 안동 광흥사>

광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 명부 존상들은 발원문이 남아 있어, 1692년 7월 그믐날에 안동 학가산 광흥사에서 증명법사 소영 신경 스님과 단용, 탁밀 스님 등 15명의 스님들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운사 명부 존상과 비교하면 세부적인 표현에서 고운사 상의 특징들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머리의 크기가 작아지고, 하체 부분이 세장하게 표현되어 신체 비례가 확연하게 변화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함홍 치능 스님
함홍 치능(1805~1878) 스님은 환성 지안 스님과 포월 초민 스님의 법맥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세기 고운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치능 스님은 산내암자인 운수암에 주석하였는데, 고운사에 강원을 열었으며 강백으로 이름이 높았다. 고운사에 남아 있는 화엄경도나 <대방광불화엄경소초> 등은 스님이 개설하였던 강원과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함홍당집, 조선 1897년,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함홍당집>은 함홍 치능 스님의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문집에 수록된 <행장>에 따르면, 스님은 안동에서 태어나 13세에 고운사에 주석하던 숙부이자 환성 지안 스님의 8세손인 송암 의탄 스님에게 출가하였다. 스님은 출가 이후에도 유학자에게 경사자집을 수학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듯 문집에는 사대부와도 두루 교유하며 주고받은 서정적인 내용의 시가 다수 남아 있는데, 유불(儒佛)에 통달하였던 스님의 넓은 견문을 짐작할 수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시판, 조선후기, 의성 고운사>, <선사함홍하상헌토기 현판, 조선 1880년, 의성 고운사>

시판, 조선후기, 의성 고운사
치능 스님이 지은 시를 현판에 새겼다. 역대 고승의 진영을 모시기 위해 고운사의 영각을 새로 지었는데 이떄의 소회를 밝힌 시이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근차판상운 시판, 조선후기, 의성 고운사
치능 스님이 우회루 현판의 운을 따라 지은 시이다. 우회루의 이름에서 착안한 듯 이에서는 도교와 관련된 제재도 있어 눈길을 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선사함홍하상헌토기 현판, 조선 1880년, 의성 고운사>

<운우삼영각상량문, 1868년, 의성 고운사>

함홍 치능 스님은 고운사으 산내 암자인 운수암과도 인연이 깊었다. <함홍당집>의 <행장>에 따르면 1835년에 소실했던 운수암을 몸소 재건하며 사찰으 기강을 엄숙히 세웠다고 전한다. 또한 만년을 보낸 만성이라 편액한 전각은 운암 옆이었다고 하였는데, 운암은 운수암으로 추정된다. 운수암영각상량문은 세로로 긴 한 장의 종이에 진한 먹으로 상량을 축원하는 글과 본암질 등을 가지런하게 적어 내렸다. 1868년 3월에 28일에 영각의 기둥을 세우고 4월 2일에 상량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치능 스님이 편찬한 사실도 잘 남아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고운사 운수암 등촉, 조선후기, 의성 고운사>

서문에는 부처님 앞에 등 또는 초를 밝히는 공덕을 설명하고 갑진 12월 환허 지한 스님이 서문을 지은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 밖에 성암 우민, 만승 의홍 스님 등 역대 큰스님에게 헌재한 사실과 더불어 두천, 경묵 스님과 재가자인 권영주의 이름이 함께 남아있다. 등촉 공양의 공덕은 물론, 고운사의 법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고운사의 고승
고운사는 여러 스님들이 주석하시며 오랜 기간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창건주인 의상대사를 비롯한 스님들의 기록은 남아있는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그 중에서도 고운사의 사격이 확립되는 17세기 이후의 스님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소영 신경 스님은 고운사의 불사를 주관하며 여러 전각을 중수하고 존상을 봉안하였으며, 주변 지역 사찰까지 다양한 불사를 주관하였다. 함흥 치능 스님은 19세기 고운사를 대표하는 강백이자 문장가로 스님께 배움을 청하는 이가 끊이지 않았다. 수월 영민 스님은 수행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생전에 몸에서 난 사리가 나온 이적이 알려져 있다. (안내문, 불교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 2022년
  2. ‘고운사 (孤雲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3. ‘고운사’,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