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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궐도안(보물), 경희궁을 그린 그림

서울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궐도안(보물)>이다. 경희궁의 건축과 주변의 자연경관을 한눈에 실감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렸다. <동궐도(국보)>와는 달리 채색되지 않은 먹만을 사용해서 표현한 밑그림이다. 기록이나 낙관이 없어서 화가와 제작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 그려진 것을 추청하고 있다. 경희궁 전각 대부분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다. 옛 경희경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궐도안,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먹, 고려대학교박물관, 보물>

경희궁은 임진왜란 창덕궁이 공식적인 궁궐인 법궁(法宮)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국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이궁(離宮)으로 자리잡으면서 서궐(西闕)로 불렸다. 법궁으로 세워진 경복궁과는 달리 경희궁은 인왕산 자락 아래 경사진 지형에 맞추어 전각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였다. 정전인 숭전전이 인왕산 자락 아래 서쪽편에 치우쳐 있고, 정문인 흥화문은 종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세워져 있었다. 궐내각사와 동궁전 흥화문 주변에 있었으며, 그 안쪽으로 국왕과 가족들이 거처하는 편전과 내전들이 들어서 있었다. 숭정전 서쪽 인왕산 자락에는 국왕이 도심 풍경을 감상하면서 쉴 수 있도록 영취정과 춘화정 같은 정자들과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정전인 인 숭전전과 내전이 있는 영역>

법궁과는 달리 정전위주의 공간배치가 아닌 왕실가족들이 거처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궐내각사의 규모 또한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궁궐 규모는 동궐보다 작지만, 인왕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지대가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도성 안팎의 경치를 조망하기에 좋은 장점이 있었다. 특히, 숙종과 영조, 정조는 서궐에 머물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동쪽편>

경희궁은 국왕이 임시로 거처할 이궁(離宮)으로 세워졌기때문에 주변지형이나 환경에 적절히 맞추어 전각들을 배치하였다. 법궁과는 달리 국왕 일상적으로 머무는 편전과 내전, 왕실가족이 거처하는 전각 위주로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정전인 숭정전이 서쪽편에 치우쳐 있다.

<서쪽편>

지금의 경희궁 전경을 그린 초본입니다. 12장의 종이를 이어 붙여서 경희궁의 여러 전각과 주변 언덕의 자연 경관을 담았습니다. 경희궁은 1620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경덕궁’이라 불렀고, 별칭으로 ‘서궐(西闕)’이라고 했습니다. 1693년에 쇠락한 건물들을 전반적으로 수리하였고, 1829년에 큰 불이 나자 이듬해부터 2년에 걸쳐 주요 전각들을 새로 지었습니다. 두 차례의 공사 내용이 <경덕궁수리소의궤>와 <서궐영건도감의구>로 남아 있습니다. <서궐도안>은 숙종 때의 공사와 순조 때의 공사 사이 기간에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궁궐 전체 규모와 구체적인 전각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희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위의 두 의궤와 이 <서궐도안>을 통해서 경희궁의 원래 모습을 추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2. ‘보물 서궐도안’,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