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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합스부르크가의 비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22년 겨울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합스부르크가(독일어: Haus Habsburg)는 유럽 왕실 가문들 중 가장 영향력이 있던 가문 중 하나로 중세 이후 거의 60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통치했으며 유럽 대부분의 왕실과 연결되어 있다. 이전 전시에서는 빈미술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걸작 96점을 소개되었는데 루벤스를 비롯하여 합스부르크가의 후원을 받았던 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합스부르크가는 10세기 스위스 슈바벤 지방의 백작 가문에서 점차 독일 남부지방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큰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13세기 루돌프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되면서 오스트리아지역으로 진출한다. 16세기초 막시밀리안 1세는 결혼으로 영토로 확장하여 독일 뿐만 아니라 이베리아반도 등으로 진출하였다. 전성기 합스부르크왕가는 오스트왕, 독일왕, 신성로마제국황제, 에스파냐 왕, 포르투갈 와으이 왕가로 유럽 최대읭 왕실가문으로 부상했다. 1804년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칭했으며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했단.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는 완전히 몰락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막시밀리안 1세, 베른하르트 슈트리겔(1460~1528) 원작을 모사, 1508년 이전, 나무에 유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강력한 제후 세력과 맞서야 했고 실질적인 통치력은 약했다. 1508년 황제가 된 막시밀리안 1세는 군주의 권위와 명성을 드러내기 위해 초상화를 선전 수단으로 활용했다. 황제는 갑옷을 입고 오른손에는 황제의 홀을, 왼손으로는 검 손잡이를 쥐고 ‘명예의 천’이라 부르는 화려한 붉은색 천을 배경으로 서 있다. 이러한 양식의 초상화는 오늘날에도 다양하게 변화되어 전해지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설계자 막시밀리안 1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역시 다른 군주처럼 자신의 공국만을 다스리는 특별하지 않은 군주였습니다. 그러나 150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막시밀리안 1세는 나름의 비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결혼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동맹을 맺어 제후들이 무시할 수 없는 황제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막시밀리안 1세는 마리와 결혼하여 부르쿤트공국을 얻었고 아들과 딸을 스페인 왕실의 공주, 왕자와 결혼시켜 동유럽 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막시밀리안 1세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진정한 설계자였던 셈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마상시합>

마상시합의 종류
마상 시합은 11세기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형식을 갖춘 것은 막시밀리안 1세 때였습니다. 마상시합은 본래 훈련의 일종으로 시작되었으나, 개인의 용맹함과 무예를 드러내고 역동적인 경기를 관람자에 보여줄 수 있어 크게 유행했습니다. 마상 시합에는 크게 네 종류가 있습니다.
1. 날카로운 창으로 하는 마상시합: 날카로운 창으로 상대의 방패나 머리를 공격해 떨어트리면 점수를 얻는 시합
2. 보호대를 씌운 창으로 하는 평화 시합: 창끝으로 뭉툭한 보호대를 씌우고 공격해 상대를 말 아래로 떨어뜨리면 점수를 얻는 시합
3. 지상 결투: 말을 타지 않고 지상에서 검으로 결투해 승패를 가리는 시합
4. 자유 마상 시합” 창으로 하는 시합과 지상 결투를 결합한 형태의 시합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켄타우로스 에우리티온을 죽이는 헤라클레스, 안토니오 수시니(1558~1624), 1600년경, 청동>


<뒷면>

에우리티온은 올레노스의 왕 텍사메노스의 딸과 결혼하고자 왕을 위협하지만 헤라클레스와 결투를 벌여 결국 죽는다. 조각은 헤라클레스가 에우리티온을 죽이는 순간을 묘사한 것으로 수시니가 그의 스승이었던 메디치 가문의 궁정 조각가 잠볼로냐(1529~1608)의 작품을 복제한 것이다. 눈에 눈동자와 홍채를 새긴 것은 수시니 작품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헤라클레스, 16세기 후반, 대리석>


<뒷면>

고대 영웅 헤라클레스는 그의 상징인 사자 가죽이 걸린 기둥에 기대서서 생각에 잠겨 있다. 오른손을 무심히 등 뒤에 대고 마치 영웅으로 보낸 지난날을 회상하듯 생각에 잠겨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헤라클레스를 근육질표현한 고대 그리스 조각과 달리, 날씬한 골격의 모습으로 그려낸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카를 5세(1500~1558)는 영웅으로서 헤라클레스를 자신의 모습으로 즐겨 사용했다고 하여, 조각상의 얼굴이 황제를 연상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마티아스, 뤼카스 판 필게보르흐(1535년경 경 ~ 1597), 1583년경, 캔버스에 유화>

마티아스(1557~1619)가 린츠에 머물던 시절에 그의 궁정 화가였던 뤼카스 판 팔켄보르흐가 그린 것이다. 그는 루돌프 2세의 동생이다. 정치적 야먕이 컸던 마티아스는 헝가리 신교 진영 세력을 규합해 1608년에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1612년 신성로마제국황제로 추대됐다. 황제가 된 이후에는 오히려 신교 진영을 탄압하는 정책을 펴 30년 전쟁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합스부르크 전성기 영역>

더 멀리, 합스부르크가의 비상
10세기 스위스 북부 지역의 백작 가문이었던 합스부르크가문은 1273년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동쪽 영역’이라 불리던 오스트리아 지역으로 진출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는 것은 로마 황제의 권력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더 멀리’라는 좌우명을 가진 가문답게 합스부르크 사람들은 오스트리아에 정착한 후 점점 세력을 넓힙니다. 마침내 16세기에는 프랑스와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붑의 지역과 아메리카와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룹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수집하여 소장했던 갑옷들은 16세기 이후에 마상창시합에 사용되었던 갑옷들이다. 실제 전투의 목적도 아니고 장식을 위한 것도 아닌 왕족과 귀족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막시밀리안 1세의 갑옷, 로렌츠 헬륨슈미트(1450~1515), 1492년경, 강철, 황동에 도금, 가죽>

<상체 부분>


<왼쪽>


<오른쪽>

1508년에 신성로마제국 호아제가 되는 막시밀리안 1세(1459~1519)가 1490년대 초 합스부르크 가문의 세습 영지를 지배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주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으로 전하는 갑옷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갑옷 제작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릎보호대 양쪽에는 돋을새김이 장식되어 있다. 로렌츠 헬름슈미트는 막시밀리안 1세의 황실 갑옷 장인이었는데 로렌츠 가문은 16세기 중반까지 합스부르크 황제들을 위해 갑옷을 제작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사브르, 1560년경, 코듀로이 직물, 철, 금, 은, 아말감 도금, 나무>

<손잡이 장식>

사브르란 날이 휘어진 긴 칼이다. 전투용이 아니라 축제 행렬에서 의장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런 형태의 칼은 르네상스 초기에 나타난 것이지만, 16세기 무렵까지만 해도 고대의 무기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이 사브르는 페르디난트 1세(1503~1564)의 아들이자 루돌프 2세와 마티아스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루돌프 2세의 ‘리본 장식’ 갑옷, 안톤 펜펜하우저(1525년경 ~ 1603), 1571년경, 연철,금,황동,직물,가죽>

<상체 부분>


<왼쪽>


<오른쪽>

갑옷 전체를 장식하는 금색 리본과 잎 무늬가 인상적이다. 리본장식을 의미하는 ‘플레히트반트’라는 갑옷 이름은 이 장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마상 창 시합용 갑옷은 중세부터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강철 치마가 없는 구조로 제작되어 지상 결투에 적합하도록 했다. 막시밀리안 2세가 1570년 열린 동생 카를 2세 대공과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의 혼인식 기념 축제에 참여하는 아들 루돌프 2세를 위해 이 갑옷을 주문한 것으로 추측한다. 가슴 부위에 돌출된 것은 창이나 깃발을 거치하는 용도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세로 홈 장식 갑옷, 빌헬름 폰 포름스 1세(1501~1537), 1525~30년경, 연철, 가죽>

<상체>


<왼쪽>


<오른쪽>

갑옷 표면의 세로 홈은 당시 의복의 주름 상식을 모방한 것이다. 홈 장식은 빛을 반사해 표 현을 빛나게 하는 효과를 내고 갑옷의 강도를 높여 보호 기능을 강화했다. 얼굴 표정을 연상하게 하는 투구는 마상 창 시합과 함께 열린 가면극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갑옷은 뷔르템베르크의 울리히 공작(1487~1550)이 실제 사용했던 것으로, 그의 손자가 프르디나트 2세 대공에게 선물한 것이다.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은 티롤의 암브라스 성에 ‘영웅들의 무기고’를 지어 무기와 갑옷을 수집하고 전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 외르크 조이젠호퍼(1528~1580), 1547년, 연철, 아말감 도금, 황동, 가죽, 천>

<상체>


<왼쪽>


<오른쪽>

현존하는 르네상스식 갑옷 세트 중 가장 큰 것으로, 총 90개의 부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 오스트리아의 상징인 독수리가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어 <독수리 갑옷>으로도 불린다. 이 갑옷은 페르디난트 1세가 아들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을 위해 황실 갑옷 제조공 외르크 조이젠호퍼에게 주문해 제작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갑옷은 패션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갑옷은 남성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비싼 물건 중 하나였습니다. 전투 때 몸을 보호하는 기능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갑옷이 빛을 발한 대표적인 행사는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시기에 유행한 마상시합 이었습니다. 마상 시합의 형식에 따라 특화된 갑옷이 필요해 주로 부품을 조립식으로 제작했습니다. 부품 수가 많을수록 비싸고 기능이 다양한 갑옷으로 여겨졌습니다. 단순히 전투를 위한 목적만이 아닌 시대의 패션으로서 유행에 따라 갑옷의 형태도 달라진,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표 수집품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2023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중세로부터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왕가는 어디일까요? 합스부르크는 1273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된 루돌프 1세를 시작으로 역사의 중심으로 진출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뒤 황제에서 물러난 카를 1세에 이르기까지 600여 년간 유럽의 정치, 경제, 예술의 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합스부르크는 서양 미술을 대표하는 걸출한 예술가들의 후원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가문의 후원은 합스부르크 사람들이 가진 예술 사랑과 예술품 수집에 담은 남다른 철학 덕분입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합스부르크가 수집하여 빈미술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걸작 96점을 소개합니다. 특히 1892년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를 기념하여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준 선물도 130연 년 만에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19세기 말 조선과 오스트리아가 나눈 마음의 증표입니다. 600년 매혹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2. ‘합스부르크가’, 위키백과, 2023년
  3. ‘판금갑’,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