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2세(독일어: Rudolf II., 1552~ 1612년)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 헝가리 왕국의 왕이다.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로 어머니는 스페인 왕인 카를 5세의 딸이다. 외가인 스페인에서 자랐다.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서 무능함을 드러냈으며, 개신교 탄압을 주도하는 등 정치적으로 인심을 잃어 말년에는 프라의 궁정에 유폐되었다. 그는 예술과 건축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당대의 뛰어난 예숲품을 수집하고 뛰어난 궁정화가를 고용하여 작품을 남겼다. 그가 수집한 공예품들은 그의 뛰어난 예술가적 안목을 잘 보여준다.
<누금 장식 바구니, 16세기 후반, 금>
작은 크기의 바구니는 꽃과 잎 무늬의 가는 금줄과 작은 금 알갱이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누금 세공으로 섬세하게 작업한 이와 같은 금세공 작품은 장식용으로 수집되어 17세기 유럽에서 수요가 많았다. 루돌프 2세 황제는 이 작품을 가장 특별한 예술품만을 모은 소장품집에 포함시켰다. 17세기 당시 이러한 예술품은 대부분 인도 서부의 고아를 중심으로 생산되어 리스본을 통해 유럽에 들어온 것으로 여겨졌고, 루돌프 2세의 소장품집에도 인도의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루돌프 2세와 ‘예술의 방’
루돌프 2세는 예술에 탁원한 안목을 가진 황제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스페인 왕궁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예술을 탐독하며 성장했습니다. 1576년 황제가 된 후 수도를 프라하로 이전하여 많은 예술가와 장인들을 불러들였고, 프라하를 보헤미아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폭넓고 깊은 예술적 안목을 바탕으로 회화부터 진기한 공예품, 학문적 성과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품을 수집해 ‘예술의 방’에 전시했습니다. 루돌프 2세의 수집품은 현재 빈미술사박물관 공예관을 만드는 데 기초가 되었습니다. 예술 후원자이자 수집가로서 그가 남긴 문화유산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루돌프 2세, 마르티노 로타(1520년경 ~ 1583), 1576~80년경, 캔버스에 유화>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였던 마르티노 로타가 황제 즉위를 기념해 제작한 초상화로 추정된다. 루돌프2세 치세에 구교와 신교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또 13년 이상 지속된 오스만튀르크 전쟁에서는 별 다른 소득을 얻지 못해 무능한 황제라는 인식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수집한 공예품은 빈미술사 박물관 공예관의 모태가 될 정도로 그의 예술가적 감식안은 높게 평가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누워 있는 비너스와 큐피드, 조반니 암브로조 미세로니 추정(1551~1616), 1600~10년, 옥수>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인 옥수(玉髓) 한 덩어리를 인체 표현과 움직임을 정교하게 살려 만든 작은 조각상이다. 두 인물에 맞게 재료의 자연적인 색채를 그대로 살린 조각가의 방식도 놀랄만하다. 조반니 암브로조는 1600년부터 밀라노에 미세로니 가문 공방을 이끌었던 인물로, 당시 재료의 질감을 잘 살려 실력이 뛰어난 석공으로 평가받았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마노그릇, 오타비호 미세로니(1567~1624), 1615~24년, 이끼 마노, 은 도금>
그릇 바깥 면을 두르는 소용돌이 띠무늬와 겅교하고 얇게 깎은 가장자리는 오타비오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 그릇의 금속 장식은 ‘HC’라는 머리글자를 쓴 제작자가 한 것으로 작품의 받침대에 서명이 남아 있다. 이 제작자의 특징은 그릇과 받침대를 연결하는 도금 은제 장식에 투각 장식이 된 긴 암술대 모양의 장식을 더하는 것이다. 밀라노 출신 석공 오타비오 미세로니는 루돌프 황제의 초청을 받아 프라하에 공방을 차려 작업했고, 프라하가 유럽 석조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데 일조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조가비 모양 그릇, 오타비호 미세로니(1567~1624), 1615~24년, 연옥, 은 도금>
조가비 모양의 그릇을 장식하는 아칸서스 나뭇잎과 소용돌이 띠는 미세로니 가문의 공방에서 즐겨 사용했던 무늬 양식이다. 오타비오는 깎기 어려운 단단한 연옥을 사용했지만 마치 점토를 반죽한 것처럼 부드러운 형태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그릇 위에는 바다의 신 넵투누스(포세이돈)가 있는데, 은에 도금한 이 금속상은 오타비오가 사망한 후 추가된 것으로 추정한다. 루돌프 2세가 서거한 후 이 작품은 미완성 상태로 미세로니의 공방에 남겨졌다가 빈으로 옮겨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연수정 꽃병, 디오니시오 미세로니(1607? ~ 1661), 1651년, 연수정, 은, 도금>
하나의 큰 연수정 덩어리로 병의 몸통을 만들고 여기에 나뭇잎 무늬 입구와 손잡이, 받침대 금속 장식을 붙여 완성했다. 몸통에는 소용돌이와 괴수 얼굴을 닮은 무늬가 교차하고 옆면의 손잡이 가장자리 부분에는 과일바구니 무늬가 있다. 빛의 굴절과 반사, 투명도를 이용해 연수정의 특성을 살려 제작됐다. 루돌프 2세의 황실 석공 디오니시오 미세로니의 후기 작업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으로, 그는 오타비오 미세로니의 아들로서 가업을 이어 프라하 궁정에서 일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조가비 모양 그릇, 17세기 전반, 산호 석회암, 은, 도금>
산호 석회암은 16세기 과학에 관심이 있는 인문학자와 귀족이 매우 귀하게 여기는 수집품 중 하나였다. 이 그릇을 제작한 석공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사용하던 산호석회암을 선택해서 마치 자연스럽게 주름이 진 것처럼 보이도록 제작했다. 석회암의 생김새에서 “별 무늬 돌”이라고 부리기도 했는데, 루돌프 2세도 이 ‘별무늬 돌”을 7점 소장했다고 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십자가 모양 해시계, 1619년, 구리 합금에 도금>
해시계는 근대 초기까지 시간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이었다. 기계식 시계처럼 오작동할 염려가 없었기때문이다. 이 해시계는 여러 방법으로 시각을 알려주는 다면십자 구조로 제작되었다. 해시계에 집약된 다양한 방법의 시간 측정법은 제작자의 수학, 기하학, 과학 그리고 예술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대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루돌프 2세 황제가 선호한 예술품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요새 다리와 물레방아가 있는 풍경, 조반니 카스트루치 추정(1598~1615년 추정), 17세기 전반, 마노, 벽옥>
멀리 산맥이 있고 가운데에는 우뚝 솟은 탑이 있는 성과 다리가 보인다. 보석류 석판을 형태에 맞게 깎아서 조립한 것으로 ‘보석 모자이크’라고 부른다. 조반니 카스트루치는 1610년 루돌프 2세 황제의 황실 석공이었다. 아버지 코지모카스트루치는 피렌체 출신 장인으로 프라하로 이주해 ‘보석 모자이크’를 전문으로 하는 공방을 설립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이야기가 있는 접시, 16세기 전반, 은에 금도금>
16세기 포르투갈에서 유행했던 형식의 접시로, 세 개의 동심원 안을 부조로 꾸몄다. 가장 바깥쪽에는 아시리아에게 포위당한 유대 도시 베툴리아의 이야기를 표현했다. 구약성서에서 신앙이 깊으며 남편을 잃은 여인 유디트는 자신의 고향을 지키려고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환심을 산 뒤 목을 잘라 도시를 구한다. 가장 안쪽 원에는 재판 받는 벌거벗은 남자, 광야, 세례와 천사, 옷을 받는 수도승이 묘사되어 있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루돌프 2세는 ‘예술의 방’에서 외국 사절을 맞이하는 등, ‘예술의 방’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를 원했다. 이 방은 당시 ‘세계의 극장’으로 불릴 정도로 회화, 공예품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입수한 화석과 암석, 각종 자연물을 소재로 그린 삽화와 같은 진기한 수집품도 전시되었다. 루돌프 2세의 ‘예술의 방’은 자연과 예술이 한데 모인 소우주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루돌프 2세는 특유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프라하의 왕성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끝없는 지식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일생동안 수많은 분야의 학문을 탐독했다. 그의 말년은 고독했지만, 우주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고자 했던 그의 열정은 과연 보상을 받았을까. 그 답은 진기한 수집품으로 가득한 빈미술사박물관 공예관의 ‘루돌프 2세의 방’에 있을지도 모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요제프 하인츠 1세(Joseph Heintz the Elder, 1564~1609년)은 스위스의 화가, 제도가 및 건축가이다. 한스 폰 하엔 (Hans von Aachen)의 제자ㅣ로 보헤미아에 정착했으며 루돌프 2세이 궁정화가로 2년간 활동했다. 그의 작품에는 종교적 이미지, 초상화, 에로틱한 신화의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주피터와 칼리스토, 요제프 하인츠 1세, 1603년 이후, 동판에 유화>
주피터는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로 변장하여, 다이아나를 따르며 순결서약을 한 님프 킬리스토를 속이고 있다. 주피터의 등 뒤로 보이는 분홍색 천은 그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흔적이다. 주피터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킬리스토는 주피터의 포옹을 거부하고 있다. 요제프 하인츠 1세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였다. 길어진 신체 비례는 일반적인 매너리즘 화풍의 특징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Bartholomäus Spranger, 1946~ 1611년)은 플랑드르 출신으로 북방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막시밀리안 2세에 의해 궁정화가가 되면 루돌프 2세를 따라 프라하로 옮겨 활동했다. 작품에서는 신화를 주제로 채택하면서도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의 우아함과 요염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머큐리의 경고를 받는 비너스와 마스,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 1686~87년경, 캔버스에 유화>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주로 남편인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가 아닌 다른 남성과 함께 그려지곤 한다. 이 그림에서는 전쟁의 신 마스와 등장한다. 날개 달린 모자를 쓴 머큐리는 훈계하듯 손가락을 들어 올려 간통하지 말라는 경고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이다. 매너리즘의 특징인 길어진 신체 비례와 모호한 자세 등이 나타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한스 폰 아헨(독일어: Hans von Aachen, 1552 – 1615년))은 독일 화가로 북부 매너리즘의 대표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왕실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 성공했으며, 종교, 신화와 우화 주제를 더 그렸다. 그의 에로틱한 신화적 장면은 그의 후원자였던 루돌프 2세가 즐겼으며 이로 인해 유명해졌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전쟁 선포, 한스 폰 아헨, 1603~04년경, 종이 또는 양피지에 유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배경으로 두 무리의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다. 붉은 옷을 입은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는 언월도를 들고 있다. 반대편에는 신성로마제국을 대표하는 사신이 헝가리 전통 의복을 입고 쇠고랑을 차고 있다. 뒤에는 사자 가죽을 두르고 곤봉을 든 헤라클레스가 서 있다. 이 작품은 루돌프 2세 황제 재위기에 있었던 합스부르크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룰란트 사베리(네덜란드어: Roeland(t) Maertensz Saverij, 1576 ~ 1639년)는 플랑드르 출신의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화가이다. 그는 프라하에서 루돌프 2세와 마티어스의 궁정화가 되었으며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티롤 지방을 여행했다. 주로 신화와 성경을 이용해 다양한 동원해 풍경화를 그렸다. 매너리즘이 유행하면서 그의 작품은 유명해 졌으며 유럽과 미국의 여러 박물관에 그르이 작품이 남아 있다.
<벌목꾼이 있는 산 풍경, 룰란트 샤베리, 1606~07년, 동판에 유화>
나무가 자라는 바위와 벌목꾼 등 사실적으로 묘사한 요소들을 조합하여 연출했다. 룰란트 사베리는 얀 브뤼헐 1세와 동시대 화가로 풍경화 꽃 정물화에 뛰어났다. 그는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로 일하면서 황제의 명으로 티롤 지역의 자연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화가의 시선으로 세밀한 부분을 예리하게 포착한 산 풍경은 그가 티롤을 여행하며 받은 인상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루돌프 2세이 궁정화가들
스페인 왕실에서 유년기를 보낸 루돌프 2세는 정치, 종교보다 예술, 과학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황제가 된 후에도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많은 화가를 프라하 황실로 불러들였습니다. 엄격한 가톨릭 교리 아래에서 성장한 루돌프 2세에게 인체의 비율을 비틀어 표현하는 매너리즘의 화법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 속 사랑을 나누는 장면 같은 에로틱한 주제의 그림을 선호했습니다. 루돌프 2세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 요제프 하인츠 1세 한스 폰 아헨 등을 궁정 화가로 삼았습니다. 꽃 정물화와 풍경화로 유명했던 룰란트 사베리 역시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였습니다. 그는 황제의 명으로 티롤 지역을 방문해 다양한 풍경을 관찰했고 그를 토대로 뛰어난 풍경화를 남겼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황제의 취향을 담다, 프라하의 ‘예술의 방’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구교와 신교의 대립 속에서 합스부르크는 구교의 수호자로서 반종교개혁 입장을 고수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 2세는 종교에 대해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고, 그를 신뢰하지 못한 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는 결국 구교를 신봉하겠다는 각서를 받고서야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 루돌프 2세는 스페인의 왕이자 오촌인 펠리페 2세에게 엄격한 후계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우울한 기질이었던 루돌프 2세는 정치적으로는 무능력했지만 예술품 수집가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는 프라하로 수도를 옮긴 후 수많은 예술가들을 불러들여 후원했고, 이렇게 수집한 예술품들을 그의 ‘예술의 방’에 전시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 ‘루돌프 2세(신성로마제국)’, 위키백과, 2023년
- ‘한스 폰 하헨’, 위키백과, 2023
- ‘룰란트 사베리’, 위키백과, 2023년
- ‘Joseph Heintz the Elder’, Wikipedia, 2023년
- ‘Bartholomäus Spranger’, Wikipedia,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