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주택가에 남아 있는 최순우 옛집이다. 이 가옥은 서울지방 전통한옥은 아니고 1930년대 서울에서 크게 유행한 도시형 한옥이다. 건물은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바깥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본채는 사랑방이 앞면 4칸의 본채와 대청마루와 방이 있는 3칸짜리 날개채로 되어 있고, 바깥채는 대문과 문간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강점기 도시형 한옥을 대표하는 의미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2002년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성금으로 매입하여 운영관리하고 있다.
<서울 성북동 주택가 골목길이 남아 있는 최순우 옛집>
이 집은 서울지역에 있었던 전통 한옥은 아니고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일제강점기에 도시 주거 환경에 맞게 지어진 도시형한옥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는 전통한옥처럼 보이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고 대량으로 공급되었던 오늘날 아파트와 비슷한 개념의 주택이다.
<대문과 문간채>
바깥쪽 골목길 방향을 하고 있는 문간방 창문이 일제강점기 이후 상당기간 유지되었던 서울 도심 골목길 풍경이었다.
<안마당>
대문을 들어서면 잘꾸면진 중정 마당과 본채가 보인다. 본채는 ‘ㄱ’자형으로 ‘ㄴ’자형 문간채와 함께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앞면 5칸, 옆면 1칸이 건물로, 가운데 3칸은 거실역할을 하고 양쪽에 1개씩 방을 두고 있다.
<본채 마당>
<뒷편에서 본 모습>
<거실 역할을 했던 3칸짜리 온돌방>
<서재 역할을 했던 사랑방>
최순우 선생의 사랑방
조선시대 서재용문방가구의 특색은 꾸밈새없는 의장과 성실한 구조에 그 대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식없는 단순한 의장과 견실한 구조미는 그대적인 공예미와도 상통되는 아름다움으로서 개개의 조선시대 목공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적장한 비례와 간결한 직선 구성미는 유례가 없을 만큼 새롭다. 이러한 구조나 의장들은 모두그 기물의 용도에 가장 충실한 것을 대본 삼아서 가장 자연스럽게(비작위적인 아름다움) 표현되어 있으며 구석진 공정이나 보이지 않는 세부구조에 날개채에 2칸짜리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사랑방은 옆면이 1칸인데 비해 날개채는 옆면 2칸으로 넓게 쓰고 있다. 이르기까지 모두 세심한 성실이 나타나 있다. 더구나 적재적소주의로 충실하게 선택된 목공재료와 그 처리공정의 신실성은 모든 조선시대 목공가구의 근대적 조형미를 뒷받침 해주는 가장 좋은 구실을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문방가구들에 나타나는 이러한 특질들을 모두 아울러서 관찰해 보면 아마 조선시대의 문방용 가구류는 전체 한국 미술 속에서도 이례라고 할 수 있는 정연한 질서미의 하나라고 부르고 싶다. – 최순우, <조선시대 목공예> 중 – <출처:서울시청>
<뒷마당에서 본 모습>
이 가옥은 중정 마당 방향과 뒷마당 방향으로 문을 내어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 안쪽에는 유리문이 바깥쪽에는 한지를 바른 전통한옥의 문을 사용하고 있다
<뒷마당>
툇마루에 걸터 앉아 뒷마당을 감상할 수 있다.
<날개채>
날개채에 2칸짜리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사랑방은 옆면이 1칸인데 비해 날개채는 옆면 2칸으로 넓게 쓰고 있다.
<대문 양쪽의 문간방>
혜곡 최순우(1916~1984)는 개성출신으로 미술사학자이자 박물관 전문가로 한국 도자기와 목공에, 회화사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개성시립박물관에 입사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하는 등 평생을 박물관에 재직하면서 박물관 발전에 힘썼다. 이 집은 그가 1976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던 집으로 정원이 잘 꾸며진 마당이 한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문간방 한쪽편 사무실>
최순우 옛집, 서울 성북구 성북동
이 집은 혜곡 최순우(1916~1984)가 197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본명은 희순이며, 개성에서 출생하였다. 미술사학자이자 박물관전문인으로 한국의도자기와 전통 목공예, 회화사 분야에서 한국 미의 재발견에 힘쓰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우현 고유섭 선생과 만남을 계기로 1943년 개성부립박물관에 입사하여 1974년부터 1984년까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박물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해외특별순회전을 기획하여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널리 알리는 데 공헌하였다. 이 집의 평면형태는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 보고 있는 튼 ‘ㅁ’자형 구조이다. 기둥머리에는 소로와 부연 등으로 외관을 장식하여 1930년대에 서울지역에서 유행한 도시형 한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명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산실이기도 하다. 친필현판, 직접 모은 수장품, 마당의 나무와 석물들은 그의 안목과 생활의 멋을 잘 보여주며, 당시 문화계의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인근 지역의 재개발 추세로 한때 허물어질 위기에 처하였으나 2002년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 성금으로 매입하여 2004년부터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다. <출처: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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