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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전사청과 수복청,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성균관(成均館)은 중앙정부에서 운영했던 문묘(文廟)답게 사당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이 대성전 서쪽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이는 향교나 서원에서 볼 수 없는 공간배치이다. 성균관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전사청(典祀廳), 수복청(守僕廳), 제기고(祭器庫)가 있다. 전사청은 1년에 2번 제사를 올리는 석전대제(釋奠大祭)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수복청은 대성전을 관리하는 노비들이 숙식하는 공간이고, 제기고는 제사에 필요한 제기들을 보관하는 창고이다. 전사청이나 수복청같은 시설들은 일반 향교나 서원에서도 있지만, 대체로 유생들이 숙식을 제공 역할과 겸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사청>

전사청(典祀廳)은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종묘나 문묘, 기타 전각이 있는 곳에 제례 때 전사관(典祀官)이 집무하면서 제사 준비를 하는 공간을 말한다. 문묘 전사청은 석전 때에 희생(犧牲)을 준비하던 곳으로서 성종 3년(1472)에 대사성(大司成) 이극기(李克基) 등의 요청에 의하여 대성전 서쪽에 동향, 6간(間) 규모로 건립되었다. 희생은 제사에 잡아올리는 산짐승 일컫는 말로 아마도 희생을 준비할 공간으로 창고와 비슷한 형태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전사청에 딸린 작은 건물>

<대성전 마당에서 전사청과 수복청으로 들어가는 작은 출입문>

<수복청과 제기고>

전사청 남쪽편으로는 대성전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노비들이 숙식하는 공간인 수복청과 제기를 보관하는 창고인 제기고가 있다. 수복청은 비록 노비들이 머무는 공간이지만 대성전 관리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아서 그런지 중앙부서 관아와 비슷한 규모와 형태를 하고 있다.

<수복청>

수복청은 문묘(文廟)를 관리하던 남자 종(從)들이 거처하던 곳으로서 대성전의 서쪽 담장 밖에 남향, 4간(間)규모로 건립되었다. 태조 7년(1398)에 대성전과 동시에 건립되었으나, 선조 25년(1592)에 왜란(倭亂)으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34년(1601)에 중건되었다. 건물에는 대학당(戴學堂)이라는 현판 걸려 있다. 건물 규모는 크지는 않은나 규모가 있고 단정해 보이는 건물이다.

<건물 한쪽편 작은 부엌>

<뒷마당>

2칸은 아궁이 시설이 있는 온돌방이고 2칸은 마루방인것으로 보인다.

<수복청 맞은편에 있는 제기고(祭器庫)>

각종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를 보관하던 곳으로 태조 7년(1398)에 대성전과 동시에 건립되었으며, 대성전 서쪽에 북향, 6간규모의 창고 건물이다.

<제기고 문짝>

제기고 문짝 기둥에는 용도별로 구분하기 위해 글씨를 적어 걸어놓고 있다.


<수복청 마당에 심어진 수령이 수백년된 것으로 보이는 향나무>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유생들이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기숙사인 동.서재에 숙식하면서 공부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 기능은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공간으로서 ‘공자를 모신 사당’이라는 의미를 갖는 문묘(文廟)가 원래의 이름이다. 성균관은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이 앞쪽에 있고,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학공간이 뒷쪽에 위치한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바깥쪽에서 본 수복청과 제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