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 읍내 김포동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인 김포향교이다. 원래는 김포시청이 있는 김포 장릉 부근에 있었는데,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추존왕 원종)의 무덤이 장릉을 조성하면서 걸포동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건물들은 그 내력이 적혀 있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구한말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들은 1980년대에 원래의 건물을 크게 수리하였다.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앞쪽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뒷쪽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향교의 교육기능이 없어지고 제사기능만 남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향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김포향교>
김포향교는 김포읍내에서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김포초등학교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있고, 골목이 좁아서 그런지 홍살문은 남아 있지 않다.
<강학공간 마당>
마당은 그리 넓지 않은편이며, 마당에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를 갖추고 있다.
<명륜당>
<뒤에서 본 모습>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김포가 겨울이 추운편이라 대청마루에 문짝을 크게 달지 않고 있다. 향교의 교육기능이 쇠퇴한 조선후기에 처음 지어진 건물로 실제로는 제사를 준비하고 유림들이 회의를 하는 공간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형태 등으로 볼 때 잘 지은 건물은 아니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향교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동.서재를 갖추고 있다. 교육기능은 없어졌지만 원래 향교의 형태를 제대로 갖출려고 했다.
<맞은편 서재>
<제향공간>
<대성전>
대성전은 앞면 3칸 규모로 다른 향교 대성전과는 달리 맞배지붕이 아닌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1980년대 크게 중수한 것이라 한다.
<대성전 앞 동무>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동무와 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서무>
현재의 김포시는 김포공항 서쪽편에서 강화도까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김포현과 통진현이 합쳐진 곳이다. 김포현은 현재 김포시청을 중심으로 지역으로 남쪽으로는 부평부, 북쪽으로는 통진현, 서쪽으로는 서해안, 동쪽으로는 양천현과 경계를 이룬다. 옛 김포현의 흔적인 관아 건물들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관청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김포향교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대성전 앞에 있는 고목>
<향교를 관리하는 사람이 거처하는 살림집>
김포향교, 경기도 김포시 김포동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양민 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이 주요 교육내용이었다. 또한 향교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선현에게 제사하였다. 고을의 크기에 따라서 향교의 정원을 조정하였는데 대체로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토지를 지급하고 그에 따른 세금 수입으로 향교 운영비를 충당하게 하였다. 이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세워졌다고 전하나 확실치 않다. 원래 김포고등학교가 있는 산기슭에 있었으나 장릉이 만들어지는 관계로 김포시 걸포동으로 이전되었다가 다시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1988년 대성전 및 담장을 보수하였고 1989년에는 명륜당을 해체.보수하였다. 대부분 향교와 같은 배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출처:김포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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