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파주향교, 파주목에 설치했던 중등교육기관

옛 파주목(坡州牧) 읍치(邑治)였던 파주시 파주읍 파주리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인 파주향교(坡州鄕校)이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조선초 1398년(태조7)에 세워진 향교로 다른 곳에 있던 것을 1870년에 현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강학공간인 강당을 앞쪽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뒤쪽에 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비롯하여 강당인 명륜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를 두고 있다.

<파주향교>

<홍살문>

파주읍치에서 향교로 들어오는 길에 군부대가 있어 산을 돌아서 들어올 수 있다.

<외삼문>

<강학공간>

명륜당을 중심으로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들어서 있다.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3품 목사가 고을수령이었던 파주목의 규모에 걸맞게 전체 공간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

<명륜당>

앞면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고을 규모에 비해 건물이 상당히 작은 편이다. 향교의 교육기능이 없어지고 제사기능만 남았던 구한말에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단촐하게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사를 준비하거나 유림들이 회의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재>

<서재>

<내삼문>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대성전 형태를 하고 있다. 잘 다듬은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위에 건물을 올려 놓았다. 동.서무는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향교 관리인이 거처하는 살림집>

파주는 임진강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지역이다. 한양과 개성, 평양, 의주, 중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 위치하고 있으며, 교통의 중심인 임진나루가 있었던 곳을 사람의 왕래가 많았던 지역이다. 조선초 파주에는 도호부(都護府)가 설치되었고, 군사상 중요성으로 인해 세조대 이후에는 이곳에 파주목(坡州牧)겸 방어사를 두었다. 지금은 파주향교가 있는 파주읍은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지 않는 까닭에 금촌이나 문산에 비해 도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파주목 관아가 있던 지역은 파주초등학교로 바뀌었고, 관아의 흔적으로 파주향교만이 군부대 뒷편 언덕에 남아 있다. 오늘날 파주시는 옛 파주목, 적성현, 교하현이 합쳐져서 경기도에서도 면적이 가장 넓은 고장이다.

<향교를 들어오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파주향교(坡州鄕校),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파주리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파주향교는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다. 건물 배치는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을 앞에 두고, 제사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을 뒤로 배치한 전학후묘 형식을 이루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단아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꾸민 익공 양식이다. 기둥 사이에는 위쪽의 무게를 받기 위해 각 칸에 2개씩 꽃받침<화반(花盤)>을 설치하였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