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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죽산향교, 죽산도호부에서 설치했던 중등교육기관

옛 죽산도후 읍치였던 안성시 죽산면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인 죽산향교(竹山鄕校)이다. 조선초인 태종 13년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하며, 여러차례 중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를 뒤체 둔 전학휴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죽산도호부는 종3품 부사가 고을 수령이 큰 고을이었기때문에 원래는 현재보다 큰 규모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현재의 위치로 옮길때 그 규모가 작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후기 교육기능이 약화되고, 제향기능이 중심이 된 향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도 대성전의 규모는 큰데 비해서 강학공간인 명륜당은 작은 규모를 하고 있으며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서재는 남아 있지 않다.

<죽산향교>

<홍살문>

죽산도호부(竹山都護府)는 경기도 안성시 동쪽 죽산면을 중심으로 3개면, 용인시 동남쪽 2개면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삼국시대에는 개차산군으로 불렸다가, 통일신라시대에는 개산군, 음죽현, 고려시대에는 죽주, 조선시대에는 죽산현이 설치되었다가 중종대인 1895년이후에는 종3품 부사가 고을 수령인 죽산도호부가 설치되었다. 이 지역은 차령산맥 이북의 교통의 요지로 남쪽으로 청주,목천,진천 등과 연결되며, 동쪽으로는 충주지방, 북쪽으로는 용인과 연결된다.사방으로 길이 뚫려있고, 농지는 비교적 넓은 편이다. 안성에는 군(郡)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이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향교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

<외삼문>

원래 있던 것은 남아 있지 않고, 1989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강학공간>

강학공간 마당은 넓은 편이지만 건물의 규모가 작고 동.서재가 없는 것으로 볼 때 교육기능이 거의 없어진 조선후기에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강당인 명륜당>

<제향공간>

강당규모는 왜소한데 비해서 대성전 건물규모가 크고 동.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고을 규모에 걸맞게 크고 웅장하다.

<서무>

건물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판문을 하고 있는 다른 향교의 동.서무와는 달리 문살이 있는 문을 달았다.

 

죽산향교(竹山鄕校),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향교는 고려와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양민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이 주요 교육내용이었다. 또한 향교에서는 교육 뿐만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선현에게 제사하였다. 고을 크기에 따라서 향교의 정원을 조정하였는데 대체로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였따. 그리고 토지를 지급하고 그에 따른 세금 수입으로 향교 운영비를 충당하게 하였다. 죽산향교의 이건 상량문 등에 의하면 죽산향교는 태종 13년(1413)에 건립되었고 이후에 여러번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72년에 담장이 신축되었고 1989년에 외삼문이 복원되었다. 향교의 아래쪽 터에 명륜당과 고직사가 있고 위쪽 터에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갖추었으며, 명륜당이 주축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점이 특이다. 특히 높다란 기단과 건물 몸체, 추녀를 들어올린 지붕 형태가 적절히 조화되었다. 건립당시에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갖우어진 큰 규모의 향교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해 온 후에 기능이 축소되어 죽산향교의 규모가 작아진 듯 하다. <출처:안성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