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산 계곡에 위치한 도봉서원(道峰書院)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서원으로 조선중기 사림을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조광조와 조선후기를 서인세력을 대표하는 송시열을 모신 서원이다. 서원이 자리잡은 이곳은 도봉산 기암괴석과 계곡의 맑은물, 큰 바위 등은 예로부터 명승지로 유명했다고 하며, 중종때 사림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정암 조광조가 자주 들렀다고 한다. 서원은 선조대(1573년)에 조광조 선생을 모시기 위해 창건되었는데 이때 선조로부터 도봉(道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조선시대 한양과 가까운 명승지에 자리잡은 서원으로 교육기능이 중시되었던 다른 서원과는 달리 한양을 기반으로 서인세력들이 학문과 정치적 견해 등을 교류하던 사교의 공간이었다. 창건당시부터 율곡 이이가 도봉서원의 기문을 짓고, 한양을 기반으로 한 서인계 사림과 관리들의 후원을 받았으며, 한양출신 백사 이항복 등 저명한 유학자들이 시문을 남긴 유서깊은 서원이다.
<서울 도봉서원>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봉산 계곡 등산로에 위치한 도봉서원. 한양을 기반으로 한 서인세력들이 많이 찾았던 서원이다. 지역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기능이 중시되었던 지방의 서원과는 달리 도봉산 계곡의 맑은 물과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고위직을 역임하고 있는 인사들이 정치적, 학문적 교류를 하는 장소였다. 옛서원은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사당만 복원되어 있다.
<홍살문>
강당을 비롯한 강학공간 건물들은 복원되지 않고 공터만 남아 있다.
<그림으로 그린 도봉산의 옛모습>
뒷편에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고, 여러 동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앞편에 강당과 누각이 있고, 강당 뒷편에 동.서재를 두고 있는 약간 색다른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서원 옆쪽에는 방이 꽤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데 서원관리인들이 숙식하는 고직사는 아닌 듯 하고, 아마도 도봉산 계곡을 찾아온 한양의 고위 인사들이 묵었던 방이 아닐까 생각된다. 계곡을 바라보고 있는 강다과 누각, 계곡 바위에 있는 정자 등 계곡의 풍경을 즐기기위한 공간을 많이 만들어 놓고 있는 도봉서원의 건물배치로 보았을 때 사실 한양에 거주하는 고위관리나 학자들이 휴식과 여흥을 즐기는 공간의 성격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도봉서원>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헐린 것을 1972년에 복원하였다. 현재는 위패를 모신 사당만 있고, 강학공간인 강당과 동.서재는 복원되지 않았다. 도봉서원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건물외 도봉산 계곡의 바위에 여러 문인들이 각석으로 글을 남겨 놓고 있는데 우암송시열의 친필로 남긴 글과 김수향, 권상하, 이재 등 이 곳을 다녀간 많은 문인들의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현재의 도봉서원의 모습은 등산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도봉산 등산로 계곡 한편에 조그만 사당만 외로이 남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내삼문>
<사당>
<도봉서원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고목>
<서원담장 한쪽편에 세워 놓은 지게>
도봉산으로 음식등을 나르는 지게로 보이는데, 짐을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의 고단함이 묻어나 보인다.
<고산앙지>
계곡건너로 보이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1700년 7월에 곡운 김수증이 쓴 글씨이다. 고산앙지란 시경에 나오는 것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라는 뜻이다. 김수증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겼던 것으로 추측된다
<‘침류대’ 표지석>
서원 앞 계곡 바위에 세운 정자인 침류대가 있던 자리를 안내하는 표지석이다. 침류대는 조선 인종때 시인 유희경이 계곡바위에 지은 누각이 있던 자리이다. 우암 송시열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들이 이 곳 경치를 적은 시를 남겨놓고 있다고 한다.
도봉서원(道峰書院)과 각석군(刻石群), 서울 도봉구 도봉동
도봉서원은 조선 전·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조광조와 송시열을 배향(配享: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냄)한 사액서원(賜額書院:조선시대 국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으로 백사 이항복 등 저명한 시인 묵객들이 시문을 남긴 오늘날 서울 지역 내 가장 대표적인 서원이다. 비록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유적의 대부분이 멸실되었으나 서울 지역 내 다른 서원과 달리 사당의 기단과 옛 사료상의 도봉서원 유적으로 소개된 각석군(刻石群)이 서원 터 앞 계곡에 대부분 원형대로 남아 있어 유적의 경계를 비교적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유적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각종 문헌이나 시에서 오랫동안 경치가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히던 경승지(景勝地)에도 해당하므로 보존가치가 크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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