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의정부로 들어가는 국도 부근에 위치한 노강서원(鷺江書院)이다. 수락산 계곡에 위치한 노강서원은 숙종때 문신 박태보를 기리는 서원이다. 원래 서울 노량진에 있었는데 한국전쟁시 불타버린것을 지금의 자리에 복원하였다. 한양과 가까운 곳에 있어 서원의 규모는 상당히 작지만 숙종때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건물들은 60년대에 복원한 것으로 위패를 모시는 사당과 유생들 기숙사인 동.서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이하게 강당을 두고 있지 않다. 전반적으로 학문을 논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 중심의 서원은 아니고 위패를 모시는 제사 위주의 서원이라 할 수 있다. 건물 규모는 크지 않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서원으로 아마도 원래의 위치가 서울 노량진에 있었기때문에 건물을 크게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정부 노강서원>
<노강서원 외삼문 현판>
<서원 내부>
노강서원은 사당과 동.서재가 한울타리에 있으며, 강학공간인 강당 건물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한양과 가까운 노량진에 있었던 서원으로 교육기능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외삼문>
<유생들이 머문는 기숙사인 동재>
실제로는 제사를 준비를 하는 재실용도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서재>
박태보(朴泰輔)는 실학자 박세당의 아들로 숙종대에 이조좌랑, 호남 암행어서 등을 역임했다. 그는 서인(西人)세력에 속했던 인물로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인현왕후의 폐위에 반대하다 귀향가던 중 고문후유증으로 노량진에서 죽었다. 그가 죽은뒤 숙종은 그를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그가 죽었던 노량진에는 노강서원이 세워졌다. 노강서원이 옮겨진 의정부 장암동은 그의 아버지 박세당이 말년에 지은 고택이 아직 남아 있는 등 그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사당>
<박세당 고택>
의정부 장암동 수락산계곡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서계 박세당이 말년에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던 고택. 안채, 사랑채, 안사랑, 행랑채 등을 갖춘 대저택이었으나 지금은 사랑채만 남아 있다.
노강서원(鷺江書院),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숙종 21년(1695)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27년(1701)에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노강(鷺江)’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원래는 서울 노량진에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고 1968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경내 건물로는 사당, 동재·서재, 고직사 등과 출입문이 있으며 교육장소로 사용되는 강당은 따로 두지 않았다. 사당은 박태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으며, 각 칸에는 4짝으로 이루어진 문을 달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 양식을 사용하였는데 가운데 칸에 용머리를 첨가하였다. 동·서재는 온돌방으로 꾸며 유생들이 공부하면서 기거하는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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