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시에 남아 있는 에도시대 일본의 대외창구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인들이 거주했던 데지마네덜란드상관터(出島和蘭商館蹟)이다. 전체 면적 5천평정도의 부채꼴모양 작은 인공섬이다. 19세기 일본의 전면적인 개항 이후 그 기능이 없어지고 주변지역이 매립하여 근대적인 항구를 조성하면서 원래의 모습은 없어졌다. 일본은 1922년 에도시대 대외 교류의 창구였던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하여 국가사적으로 지정하였다. 1996년 이후 나가사키시는 이곳을 복원하여 상관장의 자택, 일본관리 거주지 등 여러채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일본 나가사키(Nagasaki, 長崎)에 남아 있는 옛 네덜란드 상관 유적>
정식명칭은 데지마네덜란드상관터(出島和蘭商館蹟)로 일본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 넓지 않은 면적에 몇동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데지마(出島)는 1634년부터 2년에 걸쳐 포루투갈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막부는 나가사키의 부유한 상공업자에게 이 섬을 건설하게 하고 포르투갈인들에게 사용료를 받도록 했다. 1639년 카톨릭 선교를 이유로 포르투갈인을 추방한 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관을 이곳으로 옮겨 거주시켰다. 이후 약 200년 동안 이곳에서만 에도막부의 통제 아래 일본과 서양과의 무역이 이루어졌다. 네덜란드인은 상관 바깥으로 원칙적으로 출입이 불가능했으며, 일본인도 허가된 관리들만 상관을 출입하였다. 에도막부의 상관운영은 조선의 왜관운영과 유사했으나 그 규모도 작고 통제도 엄격했던 것으로 보인다. 에도시대 데지마는 일본의 서양과의 유일한 교류창구였으며, 상관에 거주한 네덜란드인들은 일본의 문화를 서양에 소개하였다. 데지마를 통해 입수된 서양서적들은 일본내 서양학문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켰으며 이를 난학(蘭學)이라 한다.
<그림으로 본 네덜란드 상관유적>
항만 바깥에 약 5천평 규모의 인공섬을 조성하여 무역에 종사했던 네덜란드인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다. 일본이 개항한 이후 주변을 매립하여 근대적인 항만으로 조성하면서 육지화되었다.
<네덜란드 상관 출입문>
전통적인 일본 관청 건물과 비슷한 구조이다.
<담장>
바깥쪽에는 높은 담장을 쌓아 일본인들의 출입을 통제하였다.
<네덜란드 상관 유적지 내부>
건축자재나 형태 등에서는 일본 한옥과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네덜란드 건축양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2층 건물로 이루어진 거리는 네덜란드 도시의 풍경과 비슷하다. 일본은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창구였던 역사적 사실을 중시하여 1922년에 이곳을 국가사적으로 지정하면서 건물들을 복원하였다.
<건물 1층>
건물 1층은 창고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상거래 모습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
<창고에 쌓여 있는 곡물포대>
<창고에 전시해 놓은 음료수나 액체를 담을 수 있는 통>
<사무실로 사용했던 공간>
카펫을 깐 유럽 주택과는 달리 다다미를 깔아 놓은 점만 다르다.
<사무용 책상>
<네덜란드인이 사용했던 생활도구>
<침실 내부>
<운하>
데지마상관은 바다를 메꾸어 조성한 인공섬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상관과 육지 사이에는 운하가 가로막혀 있다.
<운하 주변 주택가>
<나가사키를 오가던 상선>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었기때문에 실제 일본과 네덜란드를 오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 설치되었던 초량왜관를 그린 그림>
초량왜관은 임진왜란 이후 이전에 개항했던 삼포를 통합한 것으로 그 규모가 10만평에 이르며, 많은 인구들이 상주하였다고 한다. 나가사키의 상관은 조선의 왜관 운영을 참조하여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데지마네덜란드상관터(出島和蘭商館蹟, 국가지정사적)
데지마(出島)는 1636년 천주교 포교를 막는 목적으로, 시내에 흩어져 살던 포르투갈인을 한 곳으로 보아 거주시키기 위하여 에도막부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면적 약 15,000㎡인 부채 모양의 인공섬입니다. 1639년 포르투갈인이 퇴거한 후 일시적으로 무인도가 되기도 하였으나, 1641년 히라도(平戶)에 있던 네덜란드 상관이 이곳으로 옮겨진 후 안세이(安政)의 개국(1859년)까지의 218년간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구를 향하여 열린 창으로 해외에서 새로운 학술이나 문화가 전해졌습니다. 데지마 내에는 네덜란드 상관원의 주택이나 창고 등이 늘어서 있었으며 가축을 사육하고 여러가지의 식물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에도막부말기에서 메이지에 걸쳐서 실시된 항만개량공사 등으로 주위가 매립되어 바다에 뜬 부채 모양의 원형이 상실되었으나 일본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한 귀중한 역사적 문화유산이므로 1922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출처:나가사키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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