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임천면 대조사(大鳥寺) 경내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탑은 무게를 지탱해 주는 2층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기단은 각층 모서리와 가운데 기둥 모양을 장식해 두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적절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 탑신은 지붕돌만 남아 있었는데 부근에서 몸돌이 발견되어 복원하였다. 2,3층 몸돌과 머리장식은 새로 만든 것이라 한다.
<대조사 삼층석탑>
대조사 경내 마당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이 사찰이 크게 중건된 고려초기에 석탑을 중심으로 오늘날과 같은 사찰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사찰의 가람배치나 입지 조건 등이 인근 논산의 관촉사, 예산 수덕사, 영주 부석사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왼쪽에서 본 모습>
탑은 무게를 지탱하는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 양식으로 세련되면서도 안정감을 주고 있다.
<기단부>
2층으로 된 기단(基壇), 1층은 낮게 2층은 높게 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목조건물처럼 보이도록 네모서리에 기둥을 새겨놓고 있다.
<탑신>
머릿돌만 남아 있던 것으로 1층 몸돌을 인근에서 발견하여 복원하였다. 2,3층 몸돌과 머리장식은 새로 만들었다..
대조사는 백제 성왕이 사비로 천도하던 6세기경에 창건된 사찰이다. 이후 고려초에 크게 중건하였는데 석탑과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이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관세음보살이 새가 되어 날아와 앉은 자리에 세웠다고 창건 설화에 따라 대조사(大鳥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조사>
대조사 석탑
석불과 같이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석탑이다. 원래 지붕돌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 부근에서 몸체를 발견하여 복원하였다. 이 지방에 있는 다른 탑과 통일신라 이후 유행한 3층 석탑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행태로 보아도 신라탑 양식을 띄고 있다. 탑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보관하던 장소로 예배대상이었으나 후에 금당 불상의 비중이 커지면서 절의 중요한 상징적인 시설물이 되었다. 이절은 관음보살이 새가 되어 날아와 앉은 자리에 세웠다고 해서 대조사라 부른다. (안내문, 부여군청,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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