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삼국시대
-
[중앙박물관특별전, 세계유산 백제] 백제인의 일상생활
1. 도성과 행정, 2. 건축, 3. 무기와 전쟁, 4. 일상생활, 5. 사찰과 불교문화, 6. 능묘, 7.국제교류, 8. 지방통치 백제가 한강 이남으로 물러난 웅진기, 사비기의 백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들은 당시 도읍이었던 공주 공산성, 부여 도성, 익산 왕궁리에 조성했던 궁궐터 등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에서 살펴볼 수 있다. 부여 부소산성 아래 궁궐터 주변과 익산 왕궁리에서는 화려한 공예품들을 만들어 지배계층에 공급했던 공방터를 비롯하여, 제기 등을 보관했던 창고,…
-
[중앙박물관특별전, 세계유산 백제] 백제의 무기
1. 도성과 행정, 2. 건축, 3. 무기와 전쟁, 4. 일상생활, 5. 사찰과 불교문화, 6. 능묘, 7.국제교류, 8. 지방통치 백제는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하였다. 백제가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부여 부소산성과 공주 공산성에서는 당시 백제의 무기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백제의 무기로는 활과 대도, 환두대도, 쇠낫, 쇠갈고리창, 쇠창 등이 있다. 출토된 무기들은 고구려나 신라의 무기류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공주 공산성 저수시설에서…
-
[중앙박물관특별전, 세계유산 백제] 백제의 건축
1. 도성과 행정, 2. 건축, 3. 무기와 전쟁, 4. 일상생활, 5. 사찰과 불교문화, 6. 능묘, 7.국제교류, 8. 지방통치 백제는 웅진기때부터 중국 남조의 남조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으며, 건축분야에서도 중국의 영향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백제의 건축의 흔적은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와 익산에 남아 있는 궁궐 건물터, 도성 안팎의 여러 절터 등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미륵사지 석탑은 당시 목조건축물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
[중앙박물관특별전, 세계유산 백제] 백제의 도성과 행정
1. 도성과 행정, 2. 건축, 3. 무기와 전쟁, 4. 일상생활, 5. 사찰과 불교문화, 6. 능묘, 7.국제교류, 8. 지방통치 백제는 기원 전후 무렵 한강유역에서 출발하여 성장했으며, 웅진기를 거쳐 성왕때인 538년에 사비로 도읍을 옮겨 새로운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성과 웅진기 도성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은 많지 않으나, 부여에서는 관북리 옛 왕궁터를 중심으로 여려 유물들이 출토되어 도성과 행정제도에 대한…
-
익산 미륵사지(사적), 백제 무왕이 세운 백제 최대 규모의 사찰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미륵사지(사적)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 창건한 백제 최대이자 신라 황룡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대형 사찰이다. 석탑 수리과정에서 출토된 사리봉영기에 따르면 백제 왕후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석탑(국보)만 남아 있는데 석재를 이용하여 목탑 형태를 구현해 놓다.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그…
-
[익산 왕궁리유적 전시관] 고급물품을 제작하던 공방터
왕궁리 궁성 서북편에는 유리제품, 금제품, 동.청동제품같은 고급 물품을 생산하여 궁궐에 공급하기 위한 공방이 있었다. 발굴.조사결과 남북으로 긴 2동의 공방 관련 건물, 공방 관련 원료, 재료, 도구들을 버리는 폐기지가 확인되었으며, 금.유리제품 및 반제품, 금속.유리제작용 도가니, 슬래그, 송풍관, 원재료, 소토덩어리, 벽체편 등 다양한 종류의 공방 관련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공방터 앞쪽에는 좁은 수로를 통해 화장실 오수가 배출되는…
-
[익산 왕궁리유적 전시관] 백제 무왕이 조성한 궁성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은 백제 무왕이 조성한 왕궁지와 후대의 사찰 유적이 같이 있는 곳으로 경복궁처럼 앞쪽은 정전을 중심으로 의례적인 공간이, 뒷쪽은 업무, 생활공간이 흔적이 남아 있다. 후대에 사찰로 바뀌면서 중심부 궁성 건물은 없어졌지만 앞쪽의 정전 영역과 뒷편에는 크고 작은 건물터들이 확인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의 와적기단과 같은 건축양식과 기와같은 건축부재와 백제인이 사용했던 토기 등이 출토되고 있다.…
-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 확인되는 궁궐터
전북 익산시 왕궁면과 금마면에 있는 왕궁리 유적(사적)이다. 오층석탑이 남아 있던 이곳은 마한의 도읍지설 등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백제후기에서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 확인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유적은 백제 무왕 때 조성은 궁성 영역과 백제말 또는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사찰영역이 혼재되어 있다. 궁성은 치밀한 계획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중국의 영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