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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덕수궁) 양이재, 구한말 황족 교육을 전담한 수학원 건물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회 뒷편에 남아 있는 덕수궁(경운궁) 전각 중 하나인 양이재이다. 구한말인 1905년 덕수궁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지은 건물로 앞면 7칸 규모의 비교적 큰 건물이다. 함희당이라는 부속건물과 행각들이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외형상 삼군부 총무당처럼 조선시대 한양의 관아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이곳은 황족과 귀족자제 교육을 전담하기 위해 궁궐 안에 지어진 건물이다. 건물의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조선이 지은 마지막 관아 건물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대한성공회에서 건물을 임대해 사용다가 사들여 사무실로 사용해 왔다. 덕수궁과 담장을 경계로 하고 있는 이곳은 구한말 당시 세계정세를 이끌던 초강대국 영국 대사관과 영국에서 건너온 성공회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뒷편에 남아 있는 양이재>

앞면 7칸 규모로 온돌방, 대청마루, 누마루로 구성된 전형적인 조선시대 관아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구한말 황족과 귀족자제의 교육을 위해 궁궐에 지은 건물이다.

<창호>

건물 양쪽에 누마루와 온돌방을 두고 있다. 성공회에서 사용해 오면서 건물을 잘 보존해왔기 때문에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왼쪽에서 본 모습>

<양이재에 딸린 부속건물>

경운궁 양이재, 등록문화재, 서울 중구 정동,
이 전각은 경운궁을 고쳐 지을 때인 1905년(광무9)에 세운 것이다. 경운궁 공사보고서인 《경운궁중건도감의궤》에는 중화전(中和殿)을 비롯한 주요 건물 11채만 따로 도면을 그렸는데 양이재도 그 중 하나다. 당시 양이재는 함희당(咸喜堂)이란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행각과 꽃담으로 에워 싼 일곽은 홍원(紅園)이라 불렀다. 원래 건물의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4칸이었으며, 내부에는 온돌방과 마루, 누마루가 있었다. 건물의 지붕에는 양성바름에 용두를 써서, 격조를 높였다. 현재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무실로 쓰인다. 홍원 일대는 1906~1910년까지 황족과 귀족의 자제 교육을 전담한 수학원(修學院)으로 쓰였다. 대한성공회는 1912년부터 이곳을 임대해 쓰다가, 1920년 이곳을 사들인 후 건물을 옮겼다. 함희당은 1960년대에 헐렸으나 양이재 뒷편에 복도각 일부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