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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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선원전(보물) 일원, 역대국왕의 어진을 모신 전각
창덕궁 선원전(보물)는 역대 국왕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로 정전인 인정전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선원전은 임진왜란을 경복궁 선원전이 불타버린 후 숙종대에 역대 국왕의 어진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 궐내각사 뒷편에 세웠다. 원래는 태조, 세조, 원종을 모셨던 것을 후에 숙종.영조.정조.순조.익종.헌종, 철종, 고종의 어진이 봉안되면서 11실로 구성되었다. 건물은 앞면9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종묘 정전이나 일반적인 사당과 달리 판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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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동궁, 세자 서연이 열렸던 성정각과 관물헌
궁궐에서 정전 동쪽에는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東宮)이, 서쪽에는 국왕을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는 관청들인 궐내각사가, 뒷편에는 국왕의 업무공간인 편전과 생활공간인 침전이 자리하고 있다. 창덕궁에서는 편전과 침전이 정전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궁은 편전인 희정당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동궐도 동궁영역에는 생활공간인 중희당을 중심으로 세자의 교육을 위해 서연(書筵)이 열렸던 성정각과 관물헌, 그리고 부속 건물과 행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동궁 동쪽으로는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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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침전, 국왕의 생활공간 대조전(보물) 일원
창덕궁은 삼조제도(三朝制度)에 따라 신하들의 공간인 외조(外朝), 국왕이 정무를 보는 치조(治朝), 왕과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연조(燕朝)가 분리되어 있는데, 경복궁과는 달리 자연지세에 순응하여 치조의 중심공간인 정전 동쪽에 연조가 자리잡고 있다. 창덕궁 대조전은 국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공간으로 국왕의 일상적인 업무공간인 희정당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창덕궁 연조는 국왕 침전인 강녕전과 왕비 침전인 교태전이 분리된 경복궁과는 달리 대조전에 국왕과 왕비의 침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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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편전, 국왕의 업무공간 선정전과 희정당
궁궐의 공간은 크게 관청들이 배치되는 외조, 왕이 정치를 하는 치조, 왕과 왕비가 생활하는 연조로 나누는데 남북 방향 일직선으로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조선의 법궁으로 세워진 경복궁이 이런 법칙에 따라 공간을 배치하고 있다. 반면에 창덕궁은 태종때 상왕을 위한 이궁으로 세워진 궁궐로 자연지세에 순응하는 형태로 공간을 배치하고 있다.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있어 정문인 돈화문이 남서쪽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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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정전, 인정전(국보)과 조정
인정전는 창덕궁을 정전으로 조선 500년 동안 가장 오랜 기간동안 법전 역할을 했던 곳이다. 법전은 왕의 즉위식, 결혼식, 세자책봉식,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국가적인 행사를 치렀던 건물이다. 또한 인정전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길을 출발한 곳이었으며, 인조반정도 이곳에서 벌어지는 등 많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창덕궁 정전 영역> 인정전은 태종대에 처음 세워졌고, 임진왜란대에 소실된 것을 광해군대에 오늘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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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궐내각사, 국왕을 보필하던 직속 관청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최근에 복원한 관아 건물인 궐내각사이다. 궐내각사는 의사결정기구인 의정부, 집행기관인 육조와 달리 국왕을 보필하는 직속기관이다. 왕의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왕의 칙령과 교서를 작성하고 보하던 예문관, 국왕직속 학술기관인 규장각과 장서 발행을 주관하는 검서청, 왕의 건강을 관리하는 내의원 등이 있었고, 그 뒷편으로 역대 국왕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이 자리잡고 있다. 궐내각사는 창덕궁 정전 서쪽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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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룡사지(사적), 9층목탑이 우뚝 솟아 있던 신라 최대 사찰
황룡사는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신라인이 신성시여겼던 7곳의 숲에 세워진 칠처가람 중의 하나로 궁궐이었더 동궁(임해전)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진흥왕이 21세가 되던해에 월성 동쪽에 궁궐을 지을려고 하다고 사찰로 고쳐지면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진평왕대에 금당을 비롯한 주요 건축물들과 금당에 모셔진 삼륙존상이 조성되었으며, 선덕여왕대에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건의로 9층목탑을 세웠으며, 이후에 종루와 경루가 세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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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오릉 (사적),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와 초기 박씨 왕들의 능
신라 천년 고도 경주시 탑동에 있는 경주 오릉(사적)은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와 알영부인,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의 능으로 전해지고 있다. 왕릉은 높이 10m대형 봉분인 1호무덤이 앞에 있고, 그 뒷편으로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2개인 무덤과 그 뒷편에 작은 봉분 2기가 있다.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무덤의 형식은 4세기 이후 나타난 원형 봉통무덤으로 신라가 건국한 기원전후의 시기 무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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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차산성(사적), 한강유역 패권을 다투던 삼국시대 산성
아차산성은 아차산(해발 285m)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다. 아차산성을 누가 쌓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원래 백제가 왕성이었던 하남 위례성(풍납토성)을 외곽에서 방어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원래는 행주산성처럼 토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아차산성은 고구려가 점령하여 사용하다가, 한강유역 장악한 신라가 현재에 남아 있는 석축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차산성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으로 삼국사기에는 중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