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산동성박물관 불교조각실] 산동지방 불상의 변천(남북조시대~)

후한시대 중국에 전래된 불교는 351년 승려 낭공(朗公)이 태산(泰山) 부근에서 불경을 강의였으며 북위(北魏) 제왕들의 지원하에 낭공사(朗公寺)라는 사찰을 세우면 자리를 자리잡기 시작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었던 북위(北魏, 386~534년) 시기는 서역의 불상, 탑 등을 모방하거나 조합하면서 산동지방 고유의 불교 예술 양식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동위(東魏, 534~550년)와 북제(北齊, 550~577년)의 불교 예술은 간다라 양식을 비롯한 서역 불교예술의 모방단계를 벗어나 토착화된 불교예술의 형태를 보인다.

북제(北齊)는 나라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춘추전국시대 산동지방에 있었던 제(濟)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산동지방이 중심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제 시대에는 동아시아지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양식의 불상들이 만들어졌다. 광배가 있는 불상이 처음에는 많이 만들어졌으며, 점차 입체적인 형태의 불상로 발전하였다. 불상은 처음에는 여래나 보살이 서 있는 형태인 입상이나 많이 만들어졌으며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불상 형태인 반가사유상 또한 많이 만들어졌다. 남북조가 끝나가는 시점에 후대 동아시아 불상의 대표적인 형태인 가부좌상을 하고 있는 불상 형태가 완성되었다. 전시실에서는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되면서 성숙되어가던 북조 시기의 산동성 지역에서 출토된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을 통해 불교예술이 발전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불상의 복식(佛像着装)과 보살의 옷차림새(菩萨装束)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초기의 불상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을 그대로 모방했기때문에 사실적이면서 섬세한 표현을 하고 있다. 복식은 그리스.로마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 천을 길게 늘어뜨린 복식에 많은 장신구를 하고 있다. 불교가 성숙되는 북제 시기에 들어서면 불상이나 보살상이 점차 중국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길게 늘어뜨린 얇은 천의를 어깨에 걸치고 있으며, 장신구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신체의 표현 또한 간략하면서도 곡선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는데, 오늘날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불상 형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채색보살상(彩绘菩萨像), 북위, 칭저우시 용흥사(龙兴寺) 절터

351년 승려 낭공이 산동지방에서 처음 세웠던 용흥사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복식은 그리스나 서역의 것과 비슷하다. 전형적인 간다라양식의 불상으로 보인다.


채색불상, 북제, 칭저우 용흥사 절터

북제 시기에 들어서면서 토착화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과는 달리 장신구가 많지 않으며, 얇은 천의를 ‘U’자형으로 늘어뜨린 모습이다. 후대 동아시아 불상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국보, 경주박물관.

비슷한 형태의 불상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이다. 높이 1.7m로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금동불상이다.

금박채색보살상(贴金彩绘菩萨像,왼쪽), 북제, 지난시(济南, Jinan) 부근,금박채색보살상(贴金彩绘菩萨像,오른쪽), 북제, 지난시(济南, Jinan) 부근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보살상이다.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몸매와 복식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간다라 양식의 불상이다. 많은 장신구를 걸치고 있다.

보살상(菩萨像,왼쪽), 북제, 칭저우 용흥사(龙兴寺) 절터. 불상(가운데), 북제, 후이민현(惠民县), 채색보살상(왼쪽), 북위~북제, 칭저우 용흥사(龙兴寺) 절터

서역의 간다라 미술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불상들이다. 신체의 비례와 곡선 등에서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불상(佛像), 북제, 칭저우시 용흥사 절터,

이전에 만들어진 입체적이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한 간다라 양식의 불상과는 달리 간략하게 묘사하면서 곡선적인 형태의 불상으로 변천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후대 불상에서는 보기 힘든 망토를 걸친 모습이다.

불상(왼쪽), 북제, 지난시,  금박채색보살상(가운데), 북제, 칭저우시 용흥사 절터, 채색보살상(왼쪽), 북제, 칭저우시 용흥사 절터,

U자형 천의를 걸친 모습을 하고 있는 불상(왼쪽)이다. 신체의 비례나 조각수법 등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간다라양식이 산동지방에서 토착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가운데)에서도 토착화된 모습을 보인다.


채색불상, 북제, 칭저우시 용흥사 절터, ‘田’자 모양의 격자형 천의를 입고 있다.

채색불상(왼쪽), 북제, 칭저우시 용흥사 절터, 불상(오른쪽), 북제, 칭저우시 용흥사 절터

대리석(汉白玉)으로 만든 불상.

대리석으로 만든 불상은 산동성 북부지역에서주로 출토된다. 하북지방 딩저우시(定州市)를 중심으로 흰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이 많이 만들어졌고, 산동지방에서는 칭저우시를 중심으로 청석(青石)으로 불리는 진녹색의 석회암이 많이 사용되었다. 산동지방에서 출토된 대리석으로 만든 불상은 산동지방과 하북지방과의 불교문화교류를 보여준다.

일광쌍불상(背屛双身像), 동위 무정8년(550), 후이민현(惠民县)

후대에는 보기 힘든 쌍불형태의 불상이다.

삼존상(三尊像), 북제 하청2년(563년),

삼국시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볼 수 있는 반가사유상 형태를 하고 있는 불상이다. 이 시기에 반가사유상이 동아시아에서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삼존상, 북위 무평 원년(570), 후이민현(惠民县)

반가사유상을 본존불로 하고 있는 삼존상이다.

일광쌍불상(背屛双身像), 북제, 후이민현(惠民县)


일광삼존상(背屛三尊像), 북제 천보7년(556), 후이민현(惠民县)

부조형식으로 조각된 삼존상이다. 광배부분에는 비천상, 연꽃대좌 아래 감실이 있고 그 안에 사자2마리를 새겨놓았다.


일광불상, 동위 무정 5년 (547)

불상대좌, 북제 무평5년(547),

불상은 없고 연꽃대좌와 그 아랫부분만이 남아 있다. 대좌 아래에 2마리의 사자와 사람이 새겨져 있다. 고대 하북지방의 딩저우시(定州)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광불상, 동위 무정6년(548). 후이민현(惠民县) 출토.


일광삼존상(背屛三尊像), 북위, 후이민현(惠民县) 출토

세속화단계, 수당(隋唐) 이후

수당(隋唐)시기에는 국가적인 통일이 완성되면서 불교 또한 중국화와 함께 세속화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전국적으로 사찰이 세워지면서 불상들이 조성되었다. 당대이후 불상은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는 불상들이 크게 유행하였다.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须弥山)에 부처가 앉아 있는 자리를 의미하는 대좌인 수미좌(须弥座)에 가부좌 자세를 하고 있는 불상의 형태이다. 이런 형태로 정형화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상, 북제~수,

북제 말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후대에 많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부좌 자세를 하고 있는 불상으로 산동지방에서 출토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수.당대 불상 양식의 원형이 되는 불상이다.

불상머리(왼쪽), 북제, 칭저우시 용흥사 절터, 불상머리(오른쪽), 북제,

채색보살상 머리(왼쪽), 북제, 칭저우시 용흥사 절터, 보살상 머리(오른쪽)

삼존상, 북제 천보7년(556), 후이민현(惠民县)

본존불이 반가사유상을 하고 있는 삼존상이다.

금박채색불상(贴金彩绘佛像), 당나라, 지난시 출토

금박채색불상(贴金彩绘佛像), 당 696년, 지난시, 채색미륵상, 당 무주(武周, 690~705년) 시기. 지난시

왼쪽은 연꽃대좌 위에 가부좌상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불상의 형태이다. 오른쪽은 측천무후가 집권했던 시기에 조성된 불상이다. 측천무후 집권기에는 불교가 크게 융성했으며 많은 불상들이 만들어졌다.

미륵상(왼쪽), 당 무주 원년(700), 지난시 출토, 채색미륵상(오른쪽), 당대, 지난시 출토

불상(왼쪽), 당대, 지난시, 불상(오른쪽), 당대, 지난시

당대이후 불상은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는 불상들이 크게 유행하였다.

불상, 북제~수, 지난시

멸불운동(灭佛运动)과 전쟁 등으로 손상된 불상

멸불운동(灭佛运动), 중국 역사에는 4차례의 큰 멸불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이라 한다. 삼무란 북위 태무제, 북주의 무제, 당의 무종을 가리키며, 일종이란 후주의 세종을 가리킨다. 이는 불교와 도교의 대립이 표면적인 이유였으며, 불교 자체적으로 타락과 비행이 심하여 그 원인을 제공한 정치적인 측면도 있다. 4차례 멸불운동으로 많은 사찰들 불타버렸으며, 이때 훼손된 불상들이 여러곳에서 출토되고 있다. 여러차례의 멸불운동과 전쟁 또는 자연재해 등으로 많은 불상들이 손상되었지만 손상된 불상 또한 그 자체로 예술적인 미를 보여준다.

일광삼존상, 북위 518년,

협시보살의 얼굴이 고의로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불상, 북제


일광삼존불상, 북위


보살상, 북제~수, 지난시,

신체의 곡선미와 조각수법이 뛰어난 불상으로 여자의 몸매를 연상시킨다.

나한상(罗汉像), 북송, 지난시,

북송대에 만들어진 나한상이다. 나한은 부처의 제자들을 의미하며, 선종이 크게 유행하면서 수행하는 승려들을 의미하는 나한상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보살상, 당대, 지난시 출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