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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국립박물관] 근대 미술

근대미술은 18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미술의 형식과 사고방식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19세기 메이지유신과 함께 근대화를 시작한 시기와 비슷하고 국가적으로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겼기때문에 박물관에서도 근대미술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 정부는 국내 전람회를 개최하고 해외박람회를 참가할 뿐 아니라, 미술학교를 설립하여 예술가들을 양성하였다. 박물관에서 근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기는데 해외 미술관이나 도쿄박물관에 위상에 비해 작품의 수준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일본화는 일본의 전통적인 회화 기법, 재료, 관승 등을 따라 제작된 그림이다. 메이이지시대 이후 서양화와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동양화 또는 한국화로 분류되는 부분이다.

<매와와 연꽃, 오치 쇼칸, 다이쇼시대 1920년>
<매와와 연꽃, 오치 쇼칸, 다이쇼시대 1920년>

작가는 일본미술원(1898년에 창립된 미술단체)의 부흥 활동에 참여하여 경영자가 되는 등 일본미술원의 발전에 힘쓴 인물입니다. 경쾌하고 오묘한 분위가가 감도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대나무숲 속의 고양이, 하시모토 가호, 메이지시대 1896년>
<호랑이, 기시 지쿠도, 메이지시대 1893년>
<독수리와 원숭이, 이마오 게이년, 메이지시대 1893년>

교토 출신인 이마오 게이넨은 사생을 바탕으로 한 꽃과 새 그림이 특기였습니다. 국내외의 박람회에서 다수 수상하는 등 높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독수리와 원숭이의 모습에서 정교한 묘사력이 엿보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소나무, 대나무, 매화, 요코야마 다이칸, 쇼와시대 1938년>
<소나무, 대나무, 매화, 요코야마 다이칸, 쇼와시대 1938년>

근대미술: 일본화
메이지시대에 서양에서 일본에 들어온 유채화 즉 ‘서양화’에 대해, 일본의 전통적 그림은 ‘일본화’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천연 광석을 부수어서 만든 입자를 아교로 녹인 분말 그림물감이나 먹을 사용해 비단이나 화지 등에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수묵화 등 중국에 유래된 그림이나 헤이안시대에 발전되어 연면히 계승되어온 야마토에, 우키요에 등이 점차 융합되고 하나의 흐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는 서양미술의 수법을 흡수하여 일본화에 살리려는 작품도 그려졌습니다. 또한 전통적 표현을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일본화 속에서 재생하려는 그림도 탄생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일본화
예로부터 일본 회화에서는 ‘화조’라는 주제로 동식물이 많이 그려졌습니다. 일본인은 사계절의 삶 속에서 피고지는 꽃들이 강산을 물들이는 모습을 소중히 여겨, 그 풍경을 ‘산수’로서 즐겼습니다. 여기서는 매화의 계절과 연관된 작품과 봄을 느끼게 하는 꽃과 새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목조불상이 주를 이루었던 일본 조각은 메이지시대 이후 다양한 재료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전 작가들이 뛰어나는 장인으로 여겨졌다면, 작가의 개성을 작품을 통해 구현하는 예술가를 추구하였다.

<용두관음, 사토 조잔, 쇼와시대 20세기>

사토 조잔은 일본 근대 조각의 아버지인 다카무라 고운의 손제자였습니다. 이 작품은 아스카시대 조각의 걸작으로 꼽히는 호류지의 구세관음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용의 조합과 화려한 채색을 통해 고전에 새 숨결을 불어 넣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샤쿤탈라 공주와 두샨타 왕, 사토 조잔, 다이쇼시대 1916년>

사토 조잔은 신사나 절, 궁전의 건축물에 조각을 새기던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왕과 왕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인도의 설화를 소재로 한 것으로, 인물의 용모도 인도 조각을 의식한 것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근대미술: 조각
근대 이전의 일본 조각의 중심은 목조의 불상이었습니다만, 메이지시대가 되면서 조각 교육을 위해 초청된 빈첸초 라구사 등에 의해 점토와 석고를 사용한 사실적 표현이 전해졌습니다. 불사였던 다카무라 고운은 그러한 표현 수법에 동경심을 느껴 목조로 사실적 표현을 도입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메이지 30년대 후반이 되면 로뎅의 작품에 감명을 받은 오기와라 모리에나 다카무라 고타로 등이 표면적인 사실에 그치지 않고 내적인 생명감이나 작가의 개성을 작품을 통해 추구했습니다. 메이지시대 말부터 다이쇼시대에 걸쳐 고운에게 배운 히라쿠시 덴추 등이 전통적인 기법인 목조에 의해 새로운 표현을 모색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여성용 시곗줄, 마루마쓰 안자부로 가가와 가쓰히로, 메이지시대 1892년><남성용 시곗줄, 무라마쓰 만자부로 사와다 주에이, 메이지시대 1892년>
<팔찌, 제6대 구쓰타니 다키지로, 메지지시대 1892년>
<브로치, 제6대 구쓰타니 다키지로, 메이지시대 1892년>
<소매 단추, 가가와 가쓰히로, 제6대 구쓰타니 다키지로, 메이지시대 1892년>
<칠보 꽃과 새 그림 병, 메이지시대 19세기>
<백자 관음 입상, 초대 미야가와 고잔, 메이지시대 19세기>
<독수리 장식물, 스즈키 조타치, 메이지시대 1892년, 중요문화재>

스즈키 조키치는 메이지시대를 대표하는 금속공예가입니다. 이 작품은 깃털 한 올까지 정교하게 표현되어 납형 주조가 특기였던 그의 진가가 발휘된 작품입니다. 1893년 시카고 콜럼버스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나비무늬 꽃병, 가나자와 동기 회사, 메이지시대 1892년>

은과 동 및 그 합금 등, 여러 금속을 이용해 다양한 색의 나비를 표현했습니다. 금속의 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1893년 시카고 콜럼버스 세계박람회 출품작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채색 금채 화초무늬 큰 병, 제12대 심수관, 메이지시대 1892년>

한국계 도예가인 제12대 심수관은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시대에 걸쳐 활동한 사쓰마의 도공입니다. 빈 만국박람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이후 사쓰마 도자기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이 작품은 시카고 콜럼버스 세계박람회에 출품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눈 내린 남천나무와 직박구리 장식판>

은과 동의 합금 바탕에 눈 내린 남천 나무의 열매를 쪼아먹는 새를 부조와 상감으로 나타냈습니다. 쇼아미 가쓰요시는 미마사카(지금의 오카야마현 북동부)의 장식 도검 금속 공예가 가문에서 태어나 꽃병, 장식물 등을 제작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녀)

<부가쿠 ‘겐조라쿠’ 그림 장식판, 운노 쇼민, 메이지시대 1893년>

감녀극 부카쿠 <겐조라쿠>에서 뱀과 마주하는 장면을 금, 은, 동 등의 금속 상감으로 표현했습니다. 운노 쇼민은 제실기예원(황실이 미술가 및 공예가를 등용하던 제도)으로 임명된 메이지시대를 대표하는 금속 공예가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칠보 후지산 그림 액자, 나미카와 소스케, 메이지시대 1893년, 중요문화재>

나미카와 소스케는 제실기예원의 일원으로 메이지시대를 대표하는 칠보 작가입니다. 이 작품은 회화로 보일만큼 정교한 무선칠보(금속의 윤곽선없이 유약만을 사용한 칠보)로 만든 것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채색 금채 두 봉황무늬 장식 항아리, 제7대 긴코자 소베에, 메이지시대 1892년>

제7대 긴코잔 소베는 교토 아와타 도자기에 사쓰마 도자기의 기법과 표현을 받아들여 수출용 도자기를 제작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카고 콜럼버스 세계박람회 출품작인 이 항아리는 금채로 정교한 장식을 넣은 것이 특징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근대미술: 공예
메이지시대 초기, 박물관은 국내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식산흥업’ 정책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공예품의 수출이 중요시되고 결과적으로 우리 관에 메이지시대 초기의 훌륭한 공예작품들이 많이 소장되게 되었습니다. 메이지시대 중기 이후, ‘식산흥업’은 공예로부터 공업으로 중심이 옮겨져 박물관의 목적도 일본의 미술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예를 포함해 ‘미술’로 생각하는 일본적 미술관을 세계로 널리 알리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그것을 목적으로 참가한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작품과 국가가 특별히 임명한 미술.공예 작가인 ‘제실기예원’의 손에 의한 훌륭한 작품들이 도쿄국립박물관 근대공예 컬렉션의 또 하나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우에스키 요잔의 초상, 다카하시 유이치, 메이지시대 1881년>
<사탕 장수, 찰스 워그먼, 메이지시대 19세기>
<오쿠보 고토의 초상, 다카하시 유이치, 메이지시대 1881년>

초상화의 모델인 오쿠보 고토는 에도시대 말기 사쓰마의 무사로 메이지시대에 정치가로서 활약했습니다. 고토는 왕정복고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은 인물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야마토 다케루 노 미코토, 아오키 시게루, 메이지시대 1906년>

야마토 다케로 노 미코토는 일본 신화 속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남편 대신 물에 빠진 부인을 그리워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화가 본인의 얼굴을 모델로 한 미코토의 표정에서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빛의 효과를 이용해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달밤의 호랑이, 야마모토 호스이, 메이지시대 19세기>

근대미술: 서양화
문명개화를 통해 서양 문명이 일본에 전해지고, 그림의 세계에서는 유채화가 일본에 도입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그려진 유채화를 ‘서양화’라고 합니다. 메이지시대에 일본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선진국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예술을 갖추려고 원근법 등 서양화법이 표현방법으로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당초 기술적인 부분에서 서양화의 내용과 화법을 배웠는데 점차 서양의 근대적 가치관이나 사상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개성이나 자아 등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일본 고래의 가치관을 서양화를 통해 표현하려는 화가들도 나타났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서양화
일본의 근대는 생활 속에 서양 문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던 시기였습니다. 일본의 화가들은 그전까지 일본에 없었던 유화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떠났으며, 서양화의 주제와 기법 등을 연구하여 일본에 정착시켰습니다. 메이지시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각 화가의 독자적 스타일을 표현한 작품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여기서는 메이지시대의 초상화와 정물화 등을 통해 다양하게 전개된 유화 표현의 양상을 소개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근대 미술
일본의 국가 체제는 메이지시대에 크게 변화했습니다. 무사의 정점에 있는 쇼군이 정치의 실권을 쥐는 체제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가 체제로 이동한 것입니다. 동시에 근대 국가로서 구미의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노력 속에서서, 일본의 전통적인 ‘모노즈쿠리(숙련된 기술자가 뛰어난 기술로 정교한 물건을 만드는 것)’와 서양 예술의 형식 간의 차이에 따른 갈등도 있었습니다. 서양의 예술관에서, 생활 공간을 장식하는 용도인 병풍과 맹장지 그림, 일상에서 사용되는 도자기와 금속공예, 칠공예, 염직 등은 ‘미술’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제작자들은 구미 국가에도 통할 수 있도록 이전까지의 가치관과 기술을 개혁하는 데에 분투했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해외의 박람회에 참가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전람회를 개최하고, 동시에 미술학교를 설립함으로써 ‘미술’제도를 정비했습니다. 이를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들은 일본도 구미의 국가들에 뒤지지 않는 근대 국가임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메이지시대가 일본의 미술 제도가 정비되는 가운데 서양의 근대 사상을 받아들여 작자가 자신의 주장과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시대였다면, 이후의 다시쇼시대와 쇼와시대는 기술과 표현을 더운 갈고 닦은 시대였습니다. 여기서는 이 시대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출처>

  1.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2. Wikipedia,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