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위치한 관동팔경 중 3번째에 해당하는 청간정(淸澗亭)이다. 동해안 낮게 솟아 있는 바위언덕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겸재 정선이 그린 ‘청간정’이라는 그림에서도 묘사되어 있는 이 정자는 바위산이 정자의 축대같다고 묘사되어 있다. 옛 그림들을 보면 해안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있고 그 앞에 누각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나무가 많이 자라지 못해 숲이 없는 바위산으로 보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정자 위치 또한 아래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옛 문헌기록에 의하면 조선 중종 이전에 지어진것으로 보이며, 화재 등으로 수차례 중건이 있었다. 현재의 정자는 고종때 불타버린 것을 일제강점기에 재건한 것이며, 이후에도 크고 작은 수리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석재 초석 위에 건물을 올린 중층 누각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돌로 된 초석과 목조의 몸체, 기와 지붕이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과 잘 어우러져 강원도 누정(樓亭)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고성 청간정>
강원도 고성군 해안가에 위치한 관동팔경 중 제3경에 해당하는 청간정이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작은 구릉 위에 있으며, 청간천은 바다와 만나면서 작은 석호를 이루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자>
창건연대와 건립자는 미상이나 1520년(중종15)에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갑신정변 때 불타버린 것을 40여년 후인 1930년경에 지방민들이 재건하였다. 그후 1955년 보수하였고, 1981년 4월 해체복원하였다.
<이승만 전대통령이 친필로 쓴 현판>
청간정의 위치 및 경관
청간정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89-2번지에 있으며 설악산과 신선봉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만경창파가 넘실거리는 기암절벽 위에 팔각지붕의 중층누정으로 아담하게 세워져 있다. 남쪽으로는 청간천과 천진천이 교차되어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정면에는 은빛의 백사장이 넓게 형성되어 푸른 동해바다의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고, 무로도는 동해안의 절경이라 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바다를 에워싸고 청간리와 아야진 어촌 마을이 펼쳐져 있고, 항포구인 아야진항이 자리잡고 있다. 일출과 월출의 장엄함과 밀려오는 파도가 마치 뭉게구름이 일다가 안개처럼 사라져 가는 황홀경으로 관동팔경 중 가장 뛰어난 명승지로 손꼽힌다. 정자를 에워싼 울창한 송림 사이로 넘실대는 동해의 만경창파와 군집한 해조의 한가로운 몸짓, 그리고 청간천을 따라 펼쳐진 농경지의 풍요로움과 연이은 해안선 백사장은 시원스러움을 자랑하는 절경지이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5년)
<청간정이 위치한 언덕>
오늘날 청간정 정자와 위치나 외관은 그림을 통해서 본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자는 아마 바위언덕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위산 또한 숲이 우거지지 않고 바위가 드러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간정 들어가는 길>
<청간정에서 내려다 본 풍경>
청간정에서 내려다 본 동해안의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아침의 해돋이광경과 낙조의 정취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해안에서 본 청간정>
<남쪽 천진항에서 본 청간정과 주변 풍경>
<청간정 옆을 흐르는 하천>
<작은 석호>
하천이 바다와 만나면서 모래톱과 작은 석호(潟湖)를 형성하고 있다. 옛 사람들이 풍류를 즐기기에 좋은 자연환경이다.
<청간정 아래 백사장>
<청간정 남쪽>
속초까지 긴 모래사장이 이어져 있다.
청간정이 관동팔경 중 하나로 손꼽혔던 것은 정자에서 보는 경치가 아름다웠던 점도 있지만, 주변에 넓은 농지가 있어 경제력이 있었던 지역이었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관동팔경 유람을 떠난 유력 인사들이 마을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잠깐씩 들렀던 명소였던 것으로 보읹다. 이곳은 옛 간성군 관아에서 약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음 목적지인 낙산사까지도 약 20 km 거리이다. 간성에서 아침에 출발하면 청간정에서 잠시 쉬었다가 저녁에 낙산사로 도착하거나, 청간정 주변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어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자에 올라서면 소나무숲 사이로 속초항까지 이어지는 긴 백사장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고 뒷편으로는 설악산 봉우리를 멀리 눈에 들어오는 경관을 자랑한다.
청간정의 형성배경,
청간역(淸澗驛)에 딸린 정자라는 의미로 보통 역(驛)은 역참(驛站), 우역(郵驛)이다.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과 접대 등을 위하여 마련된 교통 통신기관이다. 역참은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어 왕의 지방순행이나 행정명령의 전달과 사신들의 왕래에 숙박편의를 제공하였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기능이 거의 마비되어 파발제 및 봉수와 함께 군사통신수단의 구실을 하였다. 이런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고려시대 이전에도 청간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왕족과 관리나 사대부 등이 유람, 임지발령, 파견 등 이동을 할 때 편안한 휴식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5년)
<청간정 모형>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건축양식
청간정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된 중층의 누각형식으로 지어졌다. 초석은 팔각기둥형으로 전.후면의 8개는 그 높이가 2.1m이며 전.후면의 초석과 함께 아래층의 구조체를 형성하고 있다. 2층의 10개 기둥은 모두 원기둥이며 기둥 중심에서 외측으로 약 2척 정도를 띄워 사면을 모두 단층 궁판을 갖춘 평난간으로 처리하였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지붕 층면의 첫째와 두번째 기둥 사이에 정자 위로 오르는 목조계단을 설치하였다. 공포는 외출목의 이익공 양식으로 창방위에 가구를 이루고 있는데 주두와 소로의 마구리는 사절되었으며 외부의 조제공은 앙서로서 그 위에 연꽃을 올리고 그 위에 소로를 올려 수서의 이제공을 받치게 하였다. 청간정에서의 단청은 모로단청이며 영조척은 기둥간격을 분석한 결과 1尺은 305 mm로 판단하였다. 1971.12.16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국유로서 관리자는 고성군이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5년)
『관동명승첩』「청간정도」, 정선, 1738년, 지본담채, 간송미술관
『관동팔경도』「청간정도」, 정충엽, 18세기, 지본담채, 일민미술관
『해산도첩』「청간정도」, 이의성, 18세기, 지본담채
『금강산도병』「청간정」, 작가미상, 19세기, 견본수묵담채, 온양민속박물관.
조선시대 관동팔경은 총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고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평해 월송정, 울진 망양정의 8곳을 말한다. 각기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금강산에서 평해 월송정까지 동해안을 따라 관동지방을 유람할 때 하루식 쉬어갈 수 있는 지점에 있는 명승지이다. 물론 주변에 농토가 비교적 넓어 하루쯤 손님접대를 할 수 있는 부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고성 화진포나 송지호, 속초 청초호나 영랑호, 양양 하조대, 동해 촛대바위 등은 뛰어난 경치에도 불구하고 관동팔경에 포함되지 못했다.
<청간정 주변 농지>
청간정 주변에는 비교적 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다. 주변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마을이었기때문에 관동팔경 유람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머물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간정 앞 해안>
<청간정 주변 모형>
고문헌 속의 청간정의 실체
1631년(인조5) 간성현감을 역임한 바 있는 이식이 편찬한 『수성지(水城志)』 누대조(樓臺條)에서는 ‘청간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본래 청간역의 정자로 만경대 남쪽 2리에 있었다. 간수(澗水,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에 임해 있는 까닭으로 그렇게 불렀다. 만경루가 허물어지자 역의 정자를 대 곁으로 옮겨 옴에 드디어 승지(勝地)가 되었다. 정자가 바닷물과 떨어진 것이 겨우 5,6보이나 만경대 모퉁이를 삼고 물속의 험준한 섬이 둘러 막아 먼저 물결과 싸우는 까닭에 예부터 수해를 입지 않는다. 비록 큰 바람으로 바다가 넘칠지라도 앞 계단을 넘어 닥치지 못하니 도리어 기관(奇觀)이 된다. 정자 위에 앉으면 물과 바위가 서로 부딪쳐 산이 무너지고 눈을 뿜어내는 듯한 형상이나 갈매기 천백마리가 아래위로 떠돌아 다니는 것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그 사이에서 일출(日出)과 월출(月出)을 바라 보는 것이 더욱 좋은데, 밤에 헌방(軒房, 정자 한켠에 꾸며진 방)에 누워 바람과 파도소리를 들으면, 창문을 뒤흔들어 마치 배속에서 물 잠자는 듯하다. 옛 정자는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정자는 군수 최천이 중수하였다고 할 뿐이다.”
<청간정 사료전시관>
<동여비고, 강원도 동서주군총도>
<청간정이 언급된 옛 문헌>
<옛호구 조사표>
<청간정 현판>
고성 청간정(淸澗亭),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청간정은 청간천관과 천진천이 합류하는 지점인 바닷가 기암절벽 위 만경창파가 넘실거리는 노송 사이에 위치해 있다. 파도와 바위가 부딪혀 바닷물이 튀어 오르고 갈매기가 물을 차며 날아오르는 순간의 일출은 가히 천하제일경이다. 달이 떠오른 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안에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정자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문헌을 고증해 보면, 본래는 청간역의 정자로 만경대의 남쪽 물가 봉우리에 지어 청간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중수에 관한 기록은 1560년(명종15)에 간성 군수 최천이 처음 수리하였고, 1662년(현종3) 군수 정양이 재차 보수한 뒤 평에 작은 누각을 세우면서 좀더 화려하게 치장했다. 1844년(헌종10) 군수 정재용이 고쳐 지었으며, 1863년(철종14) 군수 이원영이 다시 지었다. 그 후 비바람과 화재를 겪으며 10여 개의 돌기둥만 쓸쓸히 남아 있던 것을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의 발기로 지금의 위치에 옮겨 중수하게 되었다. 1953년 5월15일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지시로 부수하였으며, 1980년 8월1일 최규하 대통령의 동해안 순시 때 청간정 보수정화 지시에 따라 다음해 1981년 4월22일 완전 해체 보수하면서 휴게소, 주차장 등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의 청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며 초석은 팔각기둥형으로 전.후면의 8개는 그 높이가 2.1m나 되어 마루귀틀을 받치는 1층 기둥으로 삼았다. 중앙부는 높이 1.2m 정도의 초석 위에 팔각형의 동자주를 세워 전.후면의 초석과 함께 아래층의 구조체를 형성하고 있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5년)
<참고문헌>
- 고성군청
- 두산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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