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추모의 공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은 영국의 역사, 문화, 그리고 국가적 정체성이 응축된 ‘영국 최고의 국립 추모 공간’이다. 1066년 윌리엄 정복왕 이래 영국의 거의 모든 국왕들이 대관식을 올린 축복의 장소인 동시에,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추모공간이다. 사원 내부에는 3,300명이 넘는 인물이 묻혀 있거나 기념되고 있다. 사원 가장 깊숙한 곳에는 참회왕 에드워드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1세, 메리 1세 등 영국의 황금기를 이끈 국왕과 여왕 30명이 잠들어 있다. 남쪽 수랑(Transept)에는 제프리 초서의 매장을 시작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기념비), 찰스 디킨스, 토마스 하디, 제인 오스틴 등의 묘와 기념비가 모여 있다. 사원 바닥과 벽면에는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스티븐 호킹 같은 과학자들은 물론, 윈스턴 처칠(기념비) 같은 정치가들도 이곳에 이름을 남겼다. 입구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숨진 신원 미상의 영국 군인 유해가 안장되어 있어 국가 추모공간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입구에서 본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부>

서쪽 정문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무명용사의 무덤’은 영국인들이 사원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이자, 국가적인 추모의 심장부이다.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여겨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이름모를 영국군 유해 1구를 이곳에 안장했다. 사원 내부의 수많은 왕과 위인들의 바닥 묘비는 관람객들이 밟고 지나다닐 수 있지만, 이 무덤만 절대 밟아서는 안되며 붉은 양귀비꽃으로 둘러쳐 있다.

<무명용사의 무덤>

”무명 용사의 묘’ 주변에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비극 속에서 영국을 이끌었던 세 명의 수상(앤드루 보너 로, 네빌 체임버린, 윈스턴 처칠)의 기념비와 무덤이 보여 있다. 국가적인 추모 공간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뒷편에 있는 무덤과 기념비>

전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학장이자 주교였던 허버트 에드워드 라이얼 (Herbert Edward Ryle, 1856~1925)의 무덤이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사원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겨지는 ‘무명 용사의 묘’를 사원 내부에 안치하도록 결정하고 추진한 핵심 인물이다. 무명 용사의 묘 바로 근처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허버트 에드워드 라이얼 무덤>

과학자의 코너(Scientists’ Corner)

본당 네이브석 동쪽 끝, 성가대 성막(Choir Screen) 바로 앞 바닥에 위치한 ‘과학자의 코너(Scientists’ Corner)’이다. 뉴우튼을 비롯하여 인류의 과학적 발전을 이끈 위대한 과학자들이 나란히 묻히거나 기념석이 설치되어 있다. 아이작 뉴턴 (Sir Isaac Newton), 찰스 다윈 (Charles Darwin), 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이 대표적이다.

<과학자의 코너(Scientists’ Corner)>
<뉴우턴의 무덤과 기념비가 있는 성가대 성막(Choir Screen)>

아이작 뉴턴 경(Sir Isaac Newton)의 대형 기념비이다. 뉴턴의 동상 위에는 거대한 천구가 놓여 있고, 표면에는 1680년에 나타났던 혜성의 궤도와 별자리들이 새겨져 있다. 뉴턴은 고대 로마의 토가 스타일 옷을 입고 저서인 《프린키피아(Principia)》를 포함한 네 권의 책 위에 기대어 있다. 그가 발명한 반사 망원경과 빛의 굴절을 증명한 프리즘, 그리고 수학·기하학적 계산을 위한 도구들도 볼 수 있다. 화려한 바로크·고전주의 양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덤은 기념비 바로 앞에 있다.

<아이작 뉴턴 경(Sir Isaac Newton)의 대형 기념비>

옆에는 제임스 스탠하프(James Stanhope, 1st Earl Stanhope)의 기념비가 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영국군을 이끌고 메노르카 섬을 점령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친 장군이었다. 영국의 국력과 제국을 확장한 군사·정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제임스 스탠하프(James Stanhope, 1st Earl Stanhope)의 기념비>

바닥을 보면 곳곳에 사각형의 석판들이 깔려 있는데, 이것이 실제 유해가 안장된 무덤들이다.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그리고 2018년 안장된 스티븐 호킹의 유해(유골) 등이 묻혀있다.

<과학자의 코너(Scientists’ Corner)>

제단 아래 깔린 바닥 무덤의 주인은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전자(e)를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조셉 존 톰슨 경 (Sir Joseph John Thomson, 1856~1940)의 무덤이다.

<조셉 존 톰슨 경의 무덤>

오른쪽에는 현대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어니스트 래더퍼드(Ernest Rutherford)의 무덤을 볼 수 있다. 바닥 돌에 “1871 ERNEST RUTHERFORD OF NELSON 1937″이라는 이름과 생몰연도가 새겨져 있다

<어니스트 래더퍼드(Ernest Rutherford) 무덤>

흰색 대리석 묘비의 주인은 1946년부터 1959년까지 웨스트민스터 사원 최고 책임자였던 앨런 캠벨 돈(Alan Campbell Don) 신부이다. 신부의 묘비 뒤쪽으로 P. A. M. DIRAC(폴 디랙)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디랙은 양자역학을 개척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다. 주변에 과학자들의 무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앨런 캠벨 돈(Alan Campbell Don) 신부와 폴 디랙의 무덤>

검은색 마름모꼴 기념석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 1918~2013)를 추모하기 위해 헌정된 기념석이다.

<넬슨 만델라 기념석>

영국의 육군 원수 조지 웨이드 (George Wade, 1673~1748)의 무덤이다. 18세기 초·중반 나폴레옹 전쟁 이전 시대에 활약한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특히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방에 군사용 도로와 수십 개의 다리를 건설하여 영국의 현대적 교통 인프라 형성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쟁 영웅인 제임스 스탠하프 무덤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조지 웨이드 (George Wade, 1673~1748)의 무덤>

왼쪽의 어두운 원형 석판은 옥타비아 힐 (Octavia Hill, 1838~1912)의 무덤이다. 19세기 영국에서 빈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에 앞장서고 자연환경 보존을 위해 내셔널 트러스트를 설립한 위대한 여성 사회 운동가이다. 오른쪽의 커다란 대리석 판 (십자가 문양)은 조지 길버트 스콧 경 (Sir George Gilbert Scott, 1811~1878)의 무덤이다. 그는 바로 정면에 보이는 화려한 황금빛 고딕 양식 가림막(Screen)을 비롯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대대적인 복원과 장식을 책임졌던 사원의 수석 건축가였다.

<옥타비아 힐, 조지 길버트 스콧 경의 무덤>

하단 중앙에 있는 묘비의 주인은 영국의 전설적인 해군 제독이자 정치가인 토마스 코크런(Thomas Cochrane, 10th Earl of Dundonald, 1775~1860)이다. 나폴레옹 전쟁 활약했던 전쟁 영웅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무덤은 인도 제국에서 활약했던 영국의 장군 제임스 아우트럼(Sir James Outram) 경의 무덤이다. 왼쪽 의자 밑 라인에는 인도 총독이나 장군들의 기념비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토마스 코크런과 제임스 아우트럼의 무덤>

바닥에 사람의 전신 실루엣이 새겨진 놋쇠 무덤의 주인은 영국의 유명한 철도 및 토목 엔지니어인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Stephenson, 1803~1859)이다. 19세기 영국 철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스티븐슨의 아들이다. 마름모꼴(다이아몬드형) 금속 판은 영국의 전설적인 토목 엔지니어이자 세계 최초의 토목공학회 회장이었던 토머스 텔퍼드(Thomas Telford, 1757~ 1834) 의 무덤이다. 인류의 산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거장들이다.

<로버트 스티븐슨과 토머스 텔퍼드의 무덤>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과 토마스 톰피언(Thomas Tompion), 조지 그레이엄(George Graham)의 무덤이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19세기 아프리카 대륙을 탐험한 영국의 전설적인 선교사이자 탐험가, 인도주의자입니다.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하고 아프리카 노예무역 폐지에 평생을 바쳤다. 1873년 사망한 후 그의 아프리카 동료딜의 이곳으로 모셔와 안장했다. 오른쪽에는 시계 제조의 거장들인 토마스 톰피언과 조지 그레이엄의 무덤이 합장되어 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토마스 톰피언, 조지 그레이엄의 무덤>

네이브석 북쪽 통로(North Aisle of the Nave)

네이브석 북쪽 통로(North Aisle of the Nave) 중 서쪽 모서리에 있는 공간은 영국의 의회 정치, 민주주의 발전, 그리고 사회 개혁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집중적으로 기념되는 곳이다. 왕족이나 귀족 중심의 전통적 권위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과 정치를 통해 국가를 변화시킨 인물들을 기리고 있다. 중앙에는 제국 확장기를 이끈 군사적 영웅을, 동쪽에는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꾼 ‘과학자와 사상가’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네이브석 북쪽 통로(North Aisle of the Nave) >

서쪽 정문 바로 옆에 나란히 서있는 기념비이다. 오른쪽 전신 석상은 안토니 애슐리 쿠퍼 (Antony Ashley Cooper, 1801~1885)이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자 복지 개혁가, 자선가입니다. 산업혁명기 아동 노동을 제한하는 공장법 개정을 이끌고,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무료 학교(Ragged Schools)를 지원했다. 쪽 벽면 양식 기념비는 뉴우튼의 조카사위이자 정치인인 존 콘듀이트(John Conduitt) & 천재 천문학자 제레미아 호록스(Jeremiah Horrocks, 1618~1641)를 기리는 기념비이다. 호록스는 역사상 최초로 금성의 태양면 통과 현상을 예측하고 관측해 낸 인물이다.

<안토니 애슐리 쿠퍼의 석상, 존 콘듀이트와 제레미아 호록스의 기념비>

본당의 가장 서쪽 끝, 북쪽 벽면과 북쪽 측랑이 시작되는 공간은 ‘휘그당원들의 코너(Whigs’ Corner)’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18~19세기 영국의 진보적 정당이었던 휘그당 출신의 유명 정치인과 개혁가들의 기념비가 집중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던 찰스 제임스 폭스(Charles James Fox)의 거대한 기념비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영국의 위대한 정치인 찰스 제임스 폭스(Charles James Fox, 1749~1806)의 기념비이다. 폭스는 그가 사망하기 직전인 1806년,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무덤은 북쪼고 익랑에 있는 ‘정치인의 회랑’구역에 있다.

<찰스 제임스 폭스(Charles James Fox, 1749~1806)의 기념비>

중앙의 하얀 대리석 전신상은 18세기 영국의 해군 영웅인 제임스 몬태규(James Montagu, 1752~1794) 함장의 기념비이다. 앞쪽 검은색 석묘는 19세기말 남아공에서 활약했던 폭스 주교의 기념비이다. 주변 벽면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하얀색 흉상들은 18~19세기 영국 정치를 이끌었던 주요 정치가들과 귀족들(특히 휘그당 계열의 인물들)의 기념비이다.

<제임스 몬태규 함장의 기념비와 휘그당 정치가들의 흉상, 폭스 주교의 기념비>

네이브석 북쪽 측랑(North Aisle of the Nave) 중 가운데 구역은 제국 확장기(18~19세기)를 이끈 ‘군사적 영웅’들의 추모 공간의 성격을 갖고 있다. 대외 전쟁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군과 함장들의 기념비가 대거 자리 잡고 있다. 가문의 영예를 넘어 ‘국가와 의회(Parliament)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공적’을 찬양하는 성격이 강하다.

<네이브석 북측 통로>

오른쪽의 화려하고 커다란 흰 대리석 기념비는 영국 육군 소장이자 동인도회사 군대를 이끌었던 스트링거 로렌스(Stringer Lawrence, 1697~1775)를 기리는 곳이다. 그는 인도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고 영국 동인도회사의 군사적 기반을 다졌다. 왼쪽 아치형 검은색 목재/대리석 프레임 안에 청동 흉상이 놓인 기념비는 영국의 총리를 지낸 헨리 캠벨-배너먼 경(Sir Henry Campbell-Bannerman, 1836~1908)의 기념비이다. 20세기 초(1905~1908년) 영국의 자유당 정부를 이끌었던 총리이다.

<헨리 캠벨-배너먼 경과 스트링거 로렌스의 기념비>

세 개의 아치 중 가장 왼쪽에 턱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여성의 대리석 조각상은 킬데어 백작부인 엘리자베스 존스(Elizabeth Jones, Countess of Kildare, 1665~1758)를 기리는 기념비이다. 당대 문인·정치인들과 교류했던 귀족 여성이다. 백작부인 바로 오른쪽, 정교하고 화려한 스크롤 문양과 방패 형태로 장식된 기념비는 영국 군인인 로버트 킬리그루 준장(Brigadier-General Robert Killigrew, 1660~1707)의 것이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전사한 영국의 용맹한 군인이다. 킬리그루 기념비 우측에 있는 아치형 기념비는 영국의 하원의원이자 재무장관을 지낸 존 스미스(John Smith, 1655~1723)의 기념비이다.

<엘리자베스 존스, 킬리그루 준장, 존 스미스의 기념비>

우측 하단의 수많은 창과 방패, 갑옷과 깃발이 정교하게 얽혀 있는 이 거대한 대리석 부조는 로버트 킬리그루 준장(Brigadier-General Robert Killigrew, 1660~1707)의 기념비이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알만사 전투에서 전사했다.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창 바로 아래, 두 명의 천사가 거대한 메달과 항아리를 떠받치고 있는 웅장한 기념비는 영국 해군의 영웅인 존 하비 함장(Captain John Harvey, 1740~1794)과 존 헛 함장(Captain John Hutt, 1746~1794)을 기리는 연합 기념비이다. 프랑스 혁명전쟁 당시 프랑스 함대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 전사한 인물들이다. 중앙과 자측에는 제임스 브링필드 (James Bringfield, 1656~1706), 리처드 록스비 (Sir Richard Rokesby) 등 군사적인 업적이 있는 인물들의 기념비이다.

<로버트 킬리그루 준장, 존 하비 함장, 존 헛 함장, 제임스 브링필드, 리처드 록스비 기념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각기 다른 형태와 시대를 담은 3개의 독특한 벽면 기념비(Mural Monument)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왼쪽 흰 대리석 기념비는 메리 보포이 (Mrs. Mary Beaufoy, ?~1705)의 기념비이다. 그녀의 어머니 샬럿 보포이가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외동딸을 기리기 위해 사후에 세웠다. 가운데 검은 대리석 기단 위 작은 청동/석조상은 제인 스토트빌 (Mrs. Jane Stoteville, 1553~1631)의 기념비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본당(Nave) 영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념비이다. 오른쪽 두 개의 기둥 모양 석판 기념비는 맨셀 가문의 형제들 (Thomas Mansel & Alexander Mansel 등)의 기념비이다. 젊은 나이에 숨진 명문 맨셀(Mansel) 가문의 자제들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귀족들의 추모 공간이다.

<귀족들의 추모공간>

로마식 토가를 걸친 고전적인 형태의 남성 흉상 기념비는 기디언 로틀리(Gideon Loten, 1710~1789)를 기리는 것이다. 실론(현 스리랑카)과 자바(현 인도네시아) 지역의 총독을 지냈던 인물이자, 뛰어난 박물학자 및 조류 연구가였다. 하단 중앙 및 좌측의 석판 기념비들은 맨셀 가문 자제인 에드워드 맨셀과 토마스 멘셀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스테인드글라스 창 바로 아래에 길게 배치된 웅장한 대리석 조각은 조지 해밀턴 부부와 그들의 친척인 존 로버트 프레드릭 등을 기념하는 연합 부조이다.

<기디언 로틀리 등을 기리는 기념비>

두 기념비는 모두 영국 해군의 역사적 영웅들을 기리고 있다. 왼쪽은 존 베이커 (John Baker, 1660~1716), 오른쪽은 헨리 프리스트먼 (Henry Priestman, 1647~1712)의 기념비이다. 검은 대리석 바탕 앞에 웅장하게 서 있는 기둥은 고대 로마에서 해전의 승리를 기념할 때 적선의 기수로 기둥을 장식하던 ‘로스트랄 컬럼(Rostral Column)’ 양식이다.

<영국 해군의 역사적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비>

이 구역은 왕실을 보좌했던 인물들과 명망 높은 군인들의 정교한 가문 문장 및 석조 기념비들이 모여 있다. 왼쪽 소년의 흉상과 그 아래 명석을 든 인물 조각이 있는 기념비는 필립 카터렛(Philip Carteret, 1695~1710)을 기리는 곳이다. 중앙에 배치된, 상단에 화려한 화병 조각과 붉은색 가문 문장이 들어간 대리석 석판은 에드워드 드 카터렛(Edward de Carteret, 1671~1677)의 기념비이다. 오른쪽 벽면에 위치한 기념비는 테비엇 자작 토마스 리빙스턴 중장(Thomas Livingston, 1st Viscount Teviot, 1651~1711)의 것이다.

<왕실을 보좌했던 인물들과 명망 높은 군인들의 기념비>

북쪽 측랑을 따라 성가대 스크린 앞로 이동하면, ‘과학자들의 코너(Scientists’ Corner)’로 연결된다. 공간의 성격은 정치·군사적 업적을 넘어, 인류의 지적 지평을 넓힌 위대한 정신을 기리는 성격으로 확장된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 경을 중심으로 진화론의 찰스 다윈, 현대 우주론의 스티븐 호킹 등이 이곳에 묻히거나 기념되어 있다.

흰색 대리석 무덤은 찰스 다윈 (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무덤이다. 진화론과 《종의 기원》을 집대성한 생물학자이다. 검은색 대리석 무덤은 존 허셜 (Sir John Herschel, 1792~1871)의 무덤이다. 천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의 아들이자, 스스로도 수많은 성운을 발견하고 사진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영국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이다.

<찰스 다윈과 존 허셜의 무덤>

벽면 높은 곳에 나란히 설치된 5개의 원형 프로필 부조(Medallion)는 19~20세기 현대 과학의 기초를 다진 영국의 거장들을 기리고 있다. 전자를 발견한 조셉 존 톰슨 (J.J. Thomson, 1856~1940), 수술실 소독법 및 무균 수술법을 개척한 조셉 리스터 (Joseph Lister, 1827~1912), 유체역학(스토크스 방정식)과 광학 발전에 기여한 조지 가브리엘 스토크스 (George Gabriel Stokes, 1819~1903),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공동 발견한 알버트 비엔나 윌리엄스 (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 찰스 다윈 (Charles Darwin, 1809~1882)이 기념비의 주인공이다. 중앙 왼쪽에 명확하게 이름이 새겨진 사각형 석판은 ‘에너지 보존 법칙’과 열의 일당량을 발견하여 에너지의 단위인 ‘줄(Joule, J)’의 주인공이 된 제임스 프레스콧 줄(1818~1889)의 기념비이며, 그 아래에 인류학자이자 자선가였던 조셉 달튼 후커(Joseph Dalton Hooker)의 메달 등이 있다. 화려한 대리석 아치와 누워있는 석상의 주인공 토마스 플랙맨 (Thomas Thynne)은 과학자의 코너가 조성되기 전에 있던 무덤의 주인공이다.

<과학자들의 기념비>

북측 성가대 통로 (North Choir Aisle)

이 구역에는 영국의 대표적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들과 역사적 인물들의 기념비 및 조각상이 모여 있다. 바닥에는 영국의 천재적인 음악가들이 집중적으로 묻히거나 기념되어 있어 일명 ‘음악가들의 코너 (Musicians’ Chantry / Musicians’ Aisle)’라고도 불린다.

<북측 성가대 통로 (North Choir Aisle)>
<북측 성가대 통로 (North Choir Aisle)>

왼쪽 싱가포르를 건설한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 (Sir Thomas Stamford Raffles)의 좌상이, 중앙에는 알메리쿠스 드 코시 (Almericus de Courcy)의 묘비와 그 아래 바닥에 새겨진 노예제 폐지 운동가 토머스 클라크슨 (Thomas Clarkson)의 기념석이, 오른쪽에는 영국의 대대표적인 노예무역 폐지 운동가 윌리엄 윌버포스 (William Wilberforce)의 좌상이 있다.

<노예제 폐지 운동가들의 기념비>

앞쪽 바닥에 보이는 묘비의 주인은 영국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음악가 헨리 퍼셀 (Henry Purcell)과 그의 아내 프랜시스 퍼셀 (Frances Purcell)이다. 오른쪽 바닥은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새뮤얼 아놀드 (Samuel Arnold), 위쪽 바닥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윌리엄 크로프트 (William Croft)의 무덤이다. 멀리 보이는 하얀색 대리석 판은 영국의 위대한 음악가 조지 프리더릭 헨델 (George Frideric Handel)의 바닥 기념석(Memorial Stone)이다.

<헨리 퍼셀을 비롯한 음악가들의 무덤>

화려한 황동(Brass) 바닥 묘비의 주인은 영국의 성직자이자 고전학자였던 제임스 헨리 뭉크 주교 (James Henry Monk, 1784~1856)이다.

<제임스 헨리 뭉크 주교의 무덤>

‘음악가들의 코너(Musicians’ Aisle)’ 벽면에 나란히 설치된 세 개의 주요 기념비이다. 왼쪽은 영국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윌리엄 크로프트 (William Croft), 가운데는 헨리 퍼셀의 스승이자 위대한 음악가인 존 블로우 (John Blow), 오른쪽은 영국의 제독 찰스 프리맨틀 경 (Sir Charles Fremantle) 혹은 그 가문과 관련된 기념비이다.

<윌리엄 크로프트, 존 블로우, 찰스 프리맨틀 경의 기념비>

영국의 의사였던 휴 체임벌린 (Hugh Chamberlen, 1664~1728)의 기념비이다. 주인공 양옆에는 의학을 상징하는 의인화된 여신상들이 서 있다. 왼쪽 기둥 뒤편으로 작게 보이는 둥근 메달리온과 비문은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 작곡가이자 오페라 음악가인 마이클 윌리엄 발프 (Michael William Balfe)의 기념비이다.

<휴 체임벌린, 마이클 윌리엄 발프 기념비>

왼쪽에 앉아 있는 모습의 대리석 조각상은 영국의 정치가이자 사회 개혁가, 노예제 폐지 운동가인 토머스 파월 벅스턴 경(Sir Thomas Fowell Buxton, 1786~1845)의 기념비이다. 중앙의 누워 있는 형태의 묘비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의 대재상이었던 버글리 남작 윌리엄 세실(William Cecil, 1st Baron Burghley, 1520~1598) 가문의 기념비이다.

<토머스 파월 벅스턴 경, 윌리엄 세실 가문의 기념비>

북측랑(N Transept)

북측랑(North Transept)은 교회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십자형 구조의 북쪽 날개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북문(North Entrance)은 오랫동안 일반 방문객들의 주출입구 역할을 해왔으며, 외부에는 그리스도와 사도들, 다양한 직업군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18세기 이후 영국의 총리와 정치가들의 묘비와 기념상이 집중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정치인의 거리(Statesmen’s Aisle)” 라고 불린다.

<북측랑(North Transept)>

오른쪽에 19세기 영국 정계를 이끌었던 거물급 정치가들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북문 주위의 석상들>

북측랑 내부로 들어서면 18~19세기 대영제국 시절의 정치를 이끌었던 인물들의 기념비와 거대한 대리석 석상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 곳에 있는 두 명의 거물급 총리 석상이다. 오른쪽은 근대적인 경찰제도를 확립한 로버트 필 경 (Sir Robert Peel, 1788~1850)이다. 왼쪽은 4차례나 총리를 역임하면서 빅토리아 시대를 이끌었던 정치가인 윌리엄 글래드스턴 (William Ewart Gladstone, 1809~1898)이다.

<로버트 필 경 (Sir Robert Peel)과 윌리엄 글래드스턴 (William Ewart Gladstone, 1809~1898) 석상>

영국의 법률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윌리엄 웹 폴릿 경(Sir William Webb Follett)이다. 빅토리아 여왕 치하에서 영국의 엑서터(Exeter) 지역 국회의원이자 검찰총장(Attorney General)을 지낸 인물이다.

<윌리엄 웹 폴릿 경 기념비>

군인이자 원수였던 리고니어 백작 존 리고니어(John Ligonier, 1st Earl Ligonier) 기념비이다. 프랑스 출신의 망명 귀족 출신으로 영국의 군대에서 최고 직위인 영국군 총사령관과 야전원수에 오른 전설적인 군사 지도자이다.

<존 리고니어 기념비>

참회왕 에드워드 성소(Shrine of St Edward the Confessor)

‘참회왕 에드워드 성소(Shrine of St Edward the Confessor)’는 사원 전체에서 가장 신성하고 역사적인 깊이가 깊은 핵심 중의 핵심 공간이다. 주 제단(High Altar) 바로 뒷편에 독립된 예배당(St Edward’s Chapel)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보호 구역으로 옆쪽 통로(Ambulatory)를 통해서만 들여다볼 수 있다.

중세 영국의 군주들은 성인인 에드워드 왕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고자 했다. 그래서 이 성소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자신들의 무덤을 배치했습니다.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오른편으로 중세 시대 왕들의 거대한 석묘가 병풍처럼 이어진다.

<참회왕 에드워드 성소(Shrine of St Edward the Confessor)>

13세기 영국의 귀족이자 절세미녀로 알려졌던 랭커스터 백작부인 아벨린(Aveline de Forz, Countess of Lancaster)이다. 국왕 헨리 3세의 차남인 랭커스터 백작 에드먼드 크라우치백(Edmund Crouchback)과 결혼했다.

<랭커스터 백작부인 아벨린의 무덤>

펨브록 백작 에이머 드 발랑스(Aymer de Valence, 2nd Earl of Pembroke)의 무덤이다. 이 무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대제단 북쪽 성소(Sanctuary)에 나란히 늘어선 세 개의 유명한 중세 무덤 중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에드워드 1세와 에드워드 2세 치하에서 프랑스 및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 참전했던 영국의 유력 귀족이자 군사 지도자이다.

<펨브록 백작 에이머 드 발랑스의 무덤>

영화 《브레이브하트》로도 잘 알려진 에드워드 1세(재위 1272~1307)의 무덤이 북측 측랑에서 1번째로 볼 수 있다. 나무 계단 뒤쪽으로 보이는 길고 어두운 빛깔의 거대한 회색 대리석 상자가 바로 에드워드 1세의 무덤이다.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을 치열하게 이끌어 ‘스코틀랜드인의 망치(Hammer of the Scots)’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이다. 통로에서 뒷면을 볼 수 있다.

<에드워드 1세 무덤>

헨리 5세(Henry V, 재위 1413~1422)의 무덤은 ‘에드워드 참회왕 성소’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유언에 따라무덤 위쪽을 덮는 형태로 복층 구조의 ‘헨리 5세 예배당’이 만들어졌다. 무덤 위에는 누워 있는 헨리 5세의 나무 조각상(Effigy)이 있다. 원래 나무 본체 위에 순은으로 만든 판을 덧씌웠고, 화려하게 장식되었는데 도둑들이 은을 뜯어갔다고 한다.

<헨리 5세(Henry V, 재위 1413~1422)의 무덤>

에드워드 3세의 손자이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리처드 2세(King Richard II)와 그의 첫 번째 왕비인 보헤미아의 앤(Anne of Bohemia)의 합장묘이다. 리처드 2세가 첫 번째 왕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도금 청동상(Effigy)은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 오른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형태로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리처드 2세(King Richard II) 부부의 무덤>

플랜태저넷 왕가의 중세 국왕인 에드워드 3세(King Edward III)의 무덤이다. 에드워드 3세(1312~1377)는 50년간 재위하며 영국의 군사적 전성기를 이끌고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을 시작한 역사적인 국왕이다. 무덤의 측면 면석에는 에드워드 3세의 자녀들을 묘사한 작은 청동 도금 조각상들이 감실(Niche) 안에 서 있다. 흑태자 에드워드, 앤트워프의 라이오넬, 가운트의 존 등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의 서막을 열었던 역사적 인물들이다.

<에드워드 3세(King Edward III)의 무덤>

에드워드 3세의 왕비이자 리처드 2세의 할머니인 에노의 필리파(Philippa of Hainault, 1310~1369) 왕비의 무덤이다.

<에드워드 3세의 왕비 무덤>

웨스트민스터 사원 자리에 최초로 베드로 성당(성당의 전신인 수도원)을 세운 7세기초 동색슨 왕국 세버트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석조 구조물 위에 있는 뾰족한 고딕 프레임 안에 그려진 인물화 패널들이 보인다. 에드워드 참회왕, 헨리 3세 등 역사적 국왕들과 성인들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세버트왕의 무덤>

북측 주랑(North Ambulatory)

북측 주랑(North Ambulatory)은 사원의 중심부인 주 제단과 에드워드 참회왕의 성소(Shrine) 뒤편을 반원형으로 감싸고 도는 복도 공간의 북쪽 파트이다. 북측 주회랑은 참회왕의 성소를 중심으로 둥글게 돌아가는 복도 형태로 설계되었다. 이 주회랑을 따라 촘촘하게 배치된 방사형 예배당으로 진입할 수 있다. ‘성 이슬립 예배당 (Abbot Islip’s Chapel)’, ‘세례 요한 예배당(Chapel of St John the Baptist)’, ‘성 바울 예배당(St Paul’s Chapel)’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중앙에는 주제단(High Altar)과 ‘에드워드 참회왕의 예배당(St Edward the Confessor’s Chapel)’을 둘러싼 귀족들의 무덤을 볼 수 있다.

<북측 주랑(North Ambulatory)>

주 제단(High Altar)의 북측은 ‘중세 귀족들의 고딕 양식 석묘’ 구역이다. 이 무덤는 국왕 헨리 3세의 차남이자 에드워드 1세의 친동생인 ‘에드먼드 크라우치백’의 무덤이다. 랭커스터 가문의 시조가 되는 인물로, 훗날 영국의 왕위 계승 전쟁인 ‘장미 전쟁’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는 명문가의 뿌리이다.

<랭커스터 백작 에드먼드 크라우치백 (Edmund Crouchback)>

북측 주랑 (North Ambulatory) 입구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은 7년 전쟁 당시 퀘벡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영국의 군사 영웅, 제임스 울프 소장(1727~1759)의 기념비이다.

<제임스 울프 소장(Major-General James Wolfe, 1727~1759)의 기념비>

성 요한 복음전도자 예배당

성 요한 복음전도자 예배당(Chapel of St John the Evangelist)이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전설적인 군인이자 지휘관이었던 프란시스 비어 경(Sir Francis Vere, 1560~1609)의 묘비를 볼 수 있다.

<프란시스 비어 경의 묘비>

맞은편에 있는 영국의 해군 제독이자 북극 탐험가였던 존 프랭클린 경(Sir John Franklin)의 기념비이다. 1845년 두 척의 배를 이끌고 북극해의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으나, 얼음에 갇혀 전 대원과 함께 실종 및 사망한 비운의 탐험가이다. 흉상 아래의 부조에는 북극의 거대한 얼음과 빙산 사이에 갇혀 있는 탐험선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존 프랭클린 경 기념비>

세인트 마이클 예배당

‘성 이슬립 예배당 (Abbot Islip’s Chapel)’ 바깥 벽면에 있는 ‘나이팅게일 기념비 (Lady Elizabeth Nightingale Monument)’ 이다. 주변에 보이는 고딕 양식의 석조 구조물들 중세 또는 17세기 인물들의 기념비나 묘비들이다. 이곳은 세인트 마이클 예배당(St Michael’s Chapel)이다. 이곳은 좁은 공간에 여러 예배당들이 모여 있다.

<‘나이팅게일 기념비 (Lady Elizabeth Nightingale Monument)’>

17세기 영국의 자선가이자 공작부인이었던 서머싯 공작부인 사라 시모어(Sarah Seymour, Duchess of Somerset, 1631~1692)의 묘비이다. 하단의 커다란 대리석 판에는 그녀가 생전에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 및 여러 학교와 소외된 이들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했던 위대한 자선 업적들이 라틴어로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세인트 마이클 예배당 (St Michael’s Chapel)이다. 무덤은 바로 옆 성 앤드루 예배당 (St Andrew’s Chapel)에 있다.

<서머싯 공작부인 사라 시모어의 묘비>

맞은편에 있는 아일랜드의 귀족인 마운트래스 백작 앨저넌 쿠트(Algernon Coote, 6th Earl of Mountrath)와 그의 부인인 다이애나 백작부인(Diana, Countess of Mountrath)이다.

<앨저넌 쿠트 부부의 기념비>

성 앤드루 예배당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헨리 노리스 경(Henry, Lord Norris, 1525~1601)과 그의 아내 마거릿 여사의 기념비(Lord Norris Monument)이다. 8개의 기둥과 거대한 캐노피 구조를 하고 있는 높이 7.3m의 대형 기념비이다. 무덤 아래에 노리스 경 부부의 여섯 명의 아들들을 볼 수있다. 성 앤드루 예배당 (St Andrew’s Chapel)이다.

<헨리 노리스 경과 그의 아내 마거릿 여사의 기념비>

대리석 벽면형 무덤의 주인공은 바로 영국의 정치가이자 귀족이었던 케리 백작 프란시스 토머스 피츠모리스(Francis Thomas Fitzmaurice, 3rd Earl of Kerry, 1740~1818)와 그의 부인인 케리 백작부인 아나스타샤(Anastasia, Countess of Kerry, ~1799)이다. 성 앤드루 예배당 (St Andrew’s Chapel)이다.

<프란시스 토머스 피츠모리스와 그의 부인인 케리 백작부인 아나스타샤 기념비>

이슬립 예배당

이슬립 예배당(Islip Chapel)은 2층 구조의 예배당이다. 1500년부터 1532년까지 수도원을 이끈 존 이슬립(John Islip) 수도원장이 자신의 매장과 기도를 위해 건립했다. 하부 예배당(Lower Islip Chapel): 일반 참배객이 접근하는 공간이며, 좁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상부 예배당은 간호사 기념 예배당(Nurses’ Memorial Chapel)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깥쪽 벽면에 나이팅게일 기념비가 있다.

<이슬립 예배당(Islip Chapel) 1층>

아워 레이디 오브 퓨 예배당

‘세례 요한 예배당’ 옆에 있는 ‘아워 레이디 오브 퓨 예배당 (Our Lady of Pew)’이다. 이 예배당은 원래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바치던 지극히 개인적이고 신성한 공간이었다. 화려한 붉은색과 금색의 직물 장식이 성모를 향한 공경과 중세풍의 아늑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워 레이디 오브 퓨 예배당>

북측 주랑(North Ambulatory)에 있는 아주 작고 아늑한 벽감 형태의 경당입니다. 중세 시대에 국왕들과 귀족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개인적인 기도와 헌신을 바치던 매우 신성한 장소였다. 원래 중세에 있던 성모자상은 16세기 종교개혁과 성상 파괴 운동을 거치며 사라졌다. 현재 자리하고 있는 조각상은 1971년에 봉헌된 작품이다.

<성모자상>

세례 요한 예배당

세례 요한 예배당(Chapel of St John the Baptist)은 북쪽 주회랑(North Ambulatory)에 위치한 방사형 예배당이다. 이 예배당은 중세 시대에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장(Abbots of Westminster)들의 무덤이 집중되어 있는 공간이다. 왕들의 무덤만큼 거대하진 않지만, 사원의 종교적 기틀을 다진 지도자들의 무덤인 만큼 정교한 고딕 석조 장식의 디테일이 뛰어나다. 수도원장들 외에도 튜더 및 스튜어트 왕조 시기의 강력한 귀족과 정치가들의 무덤들이 모여 있다.

<세례 요한 예배당(Chapel of St John the Baptist)>

15세기 후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수도원장이었던 존 에스토니(John Esteney, 혹은 John de Estney)이다.

<존 에스토니 무덤>

과거 영국의 고위 귀족들과 정치가들이 묻힌 방으로, 내부가 화려한 대리석 기념비와 조각상들로 가득 차 있다. 예배당 중앙에는 1대 엑서터 백작 토마스 세실과 그의 첫 번째 아내의 대리석 누상 조각(Effigy)이 놓여 있다. 왼쪽 커튼 모양의 캐노피는 에드워드 팝햄 대령(Colonel Edward Popham, 1610~1651)과 그의 아내 앤(Anne)의 무덤이다. 팝햄은 올리버 크롬웰 진영의 의회파 군 지휘관이었다. 오른쪽 아치형 벽면 안쪽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대수도원장 조지 파셋(Abbot George Fascet, 사망 1500)의 무덤이다.

<세례 요한 예배당(Chapel of St John the Baptist)>

성 바울 예배당

‘성 바울 예배당(St Paul’s Chapel)’이다. 15세기 튜더 왕조 시절부터 17세기 스튜어트 왕조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총애를 받았던 최고위 귀족들과 군 사령관, 법관들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곳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정치가였던 자일스 도브니 경(1451~1508)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의 무덤이다. 무덤 바로 뒤쪽 왼쪽 벽면에 보이는 대리석 흉상은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의 위대한 엔지니어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기념비이다.

<성 바울 예배당(St Paul’s Chapel)>

바깥 통로에 있는 기념비는 18세기에 활동했던 영국의 정치인 윌리엄 풀트니, 배스 백작(William Pulteney, Earl of Bath)의 기념비이다.

<윌리엄 풀트니, 배스 백작의 기념비>

가운데 검은색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인 무덤은 자일스 도브니 경(Sir Giles Daubeney)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부인(Dame Elizabeth)의 합장묘이다. 자일스 도브니 경(1451~1508)은 장미 전쟁 당시 헨리 7세를 도와 보스워스 전투에서 싸웠다.

<자일스 도브니 경 부부의 합장묘>

왼쪽 상단은 영국의 근대 우편 제도를 창시한 로랜드 힐 경(Sir Rowland Hill)의 흉상이다. 중앙의 거대한 대리석 기념비는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던 헨리 벨라시스 경(Sir Henry Belasyse)의 기념비이다.

<로랜드 힐 경과 헨리 벨라시스 경의 기념비>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법률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존 퍼커링 경(Sir John Puckering)과 그의 아내 제인 부인(Lady Jane)의 합장묘이다. 존 퍼커링 경(1544~1596)은 영국의 하원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존 퍼커링 경 부부의 합장묘>

제임스 풀러턴 경(Sir James Fullerton)과 그의 아내 막달레나 부인(Lady Magdalen)의 합장묘이다. 임스 풀러턴 경(1563~1631)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정치가로, 국왕 찰스 1세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제임스 풀러턴 경 부부의 합장묘>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탁월한 법률가이자 정치가였던 토머스 브롬리 경(Sir Thomas Bromley)의 무덤이다. 특히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의 선고 재판 당시 재판장을 맡았던 역사적 인물로 유명하다.

<토머스 브롬리 경의 무덤>

영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더들리 카를턴, 도체스터 자작(Dudley Carleton, Viscount Dorchester)의 무덤이다.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 치하에서 베네치아, 파리, 네덜란드 헤이그 등 여러 주요국 임무를 수행한 탁월한 외교관이었다.

<더들리 카를턴, 도체스터 자작의 무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시종이자 자선가였던 프란시스 시드니, 배서크스 백작부인(Frances Sidney, Countess of Sussex)의 무덤이다. 유언을 통해 5,000파운드의 기금을 남겨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시드니 서섹스 칼리지(Sidney Sussex College)를 설립한 설립자로 매우 유명하다.

<프란시스 시드니, 배서크스 백작부인의 무덤>

검은색 대리석과 화려한 금빛 장식으로 꾸며진 무덤은 앤 카를턴 부인(Lady Anne Carleton)의 무덤이다. 더들리 카를턴의 부인이다.

<앤 카를턴 부인의 무덤>

칸막이처럼 보이는 이 화려한 구조물은 루도빅 스튜어트, 릭먼드와 레녹스 공작(Ludovic Stewart, Duke of Richmond and Lennox)의 가문을 기리는 기념비의 일부이자 성 바울 예배당의 입구 스크린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다.

<예배당 스크린>

남측 주랑(South Ambulatory)

남측 주랑(South Ambulatory)은 중앙의 제단 및 성 에드워드 참회왕의 예배당을 U자형으로 감싸고 도는 복도 공간 중 남쪽 구역을 말한다. 남측 주랑과 이와 연결된 작은 예배당들은 사원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들이 모여 있는 곳 중 하나이다. 헨리 3세가 사원을 고딕 양식으로 재건한 이후, 왕실과 밀접했던 고위 귀족, 고위 성직자, 그리고 국왕의 자녀들이 이곳에 집중적으로 묻혔다.

<남측 주랑(South Ambulatory)>

성 니콜라스 예배당

성 니콜라스 예배당(Chapel of St. Nicholas)은 남쪽 회랑 동쪽 끝에 위치한 유서 깊은 소예배당이다. 어린이, 항해사, 전당포업자 등의 수호성인인 성 니콜라스에게 헌정된 예배당이다. 주로 세이모어(Seymour), 세실(Cecil), 버클리(Berkeley) 등 영국 역사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린 명문 귀족 가문의 여성들이 주로 안장되어 있다.

<성 니콜라스 예배당(Chapel of St. Nicholas)>
<입구 스크린>

예배당 중앙에 있는 조지 빌리어스 경(Sir George Villiers)과 그의 아내인 버킹엄 백작부인 메리 빌리어스(Mary Villiers, Countess of Buckingham)의 무덤이다. 조지 빌리어스 경(1544~1606)은 레스터셔 출신의 기사이자 지주였으며, 그의 아내 메리 빌리어스는 제임스 1세 국왕의 총애를 받았던 제1대 버킹엄 공작(George Villiers, 1st Duke of Buckingham)의 어머니이다.

<조지 빌리어스 경 부부의 무덤>
<옆에서 본 모습>
<무덤 위 조각상>

중세 잉글랜드의 귀족 여성이었던 필리파 드 모훈, 요크 공작부인(Philippa de Mohun, Duchess of York)의 무덤이다. 제2대 요크 공작인 에드워드 노리치의 아내이다.

<필리파 드 모훈, 요크 공작부인 무덤>

17세기 영국의 귀족 여성이었던 엘리자베스 세실, 버링턴 백작부인(Elizabeth Cecil, Countess of Burlington)의 기념비이다.

<엘리자베스 세실, 버링턴 백작부인의 무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의 귀족 여성이었던 위니프레드 브라이던, 버킹엄 백작부인(Winifred Brydges, Countess of Buckingham / Lady Winchester)의 무덤이다.

<위니프레드 브라이던, 버킹엄 백작부인의 무덤>

엘리자베스 시대와 자코비안 시대의 정치가이자 법률가였던 토머스 브로드헤이븐 경(Sir Thomas Fane)과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페인, 르 디스펜서 여남작(Elizabeth Fane, Baroness le Despencer)의 무덤이다.

<토머스 브로드헤이븐 경 부부의 무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의 가장 강력한 정치가였던 버리 남작 윌리엄 세실의 가족들을 기리는 밀드레드 세실, 버리 남작부인(Mildred Cecil, Lady Burghley)과 그녀의 딸 앤 세실, 옥스퍼드 백작부인(Anne Cecil, Countess of Oxford)의 무덤이다.

<밀드레드 세실, 버리 남작부인, 앤 세실, 옥스퍼드 백작부인의 무덤>

14세기 잉글랜드의 귀족이었던 더럼의 주지사이자 제2대 네빌 데 라비 남작인 랠프 네빌(Ralph Neville, 2nd Baron Neville de Raby)의 아내, 앨리스 드 오들리(Alice de Audley, ?~1374) 왕실 궁정 여관의 무덤이다. 제단 위에는 그녀의 누워 있는 조각상(Effigy)이 안치되어 있었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며 현재는 소실되어 빈 제단만 남아 있다.

<앨리스 드 오들리의 무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기의 귀족 여성이었던 위니프레드 브라이던, 윈체스터 후작부인(Winifred Brydges, Marchioness of Winchester, ?~1586)의 무덤이다.

<위니프레드 브라이던, 윈체스터 후작부인의 무덤>

백대리석 기념비는 노섬벌랜드 공작 가문의 여공작이었던 에리자베스 퍼시, 노섬벌랜드 공작부인(Elizabeth Percy, Duchess of Northumberland, 1716~1776)의 무덤이다.

<에리자베스 퍼시, 노섬벌랜드의 무덤>

성 에드먼드 예배당

성 에드먼드 예배당(Chapel of St. Edmund)은 니콜라스 예배당 옆에 있는 6각형 모양의 예배당이다. 9세기 덴마크인들에게 순교당한 동앵글리아의 왕이자 영국의 주요 성인인 ‘순교왕 에드먼드(St. Edmund the Martyr)’에게 헌정된 공간이다.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성 에드워드 예배당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주로 왕실의 어린 자녀들이나 왕과 가까웠던 최고위급 귀족들이 이곳에 묻혔다.

<성 에드먼드 예배당(Chapel of St. Edmund)>

왼쪽의 큰 무덤의 주인은 콘월 백작 엘섬의 존 (John of Eltham, Earl of Cornwall, 1316~1336)이다. 에드워드 2세 왕의 둘째 아들이다. 스코틀랜드와의 전쟁 중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작은 무덤은 에드워드 3세 왕의 자녀들인 윈저의 윌리엄과 타워의 블란치 (William of Windsor & Blanche of the Tower)의 무덤이다. 영아 때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무덤이다. 이 예배당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에드워드 3세 왕의 자녀들 무덤>

오벨리스크 형태의 독특한 대리석 기념비의 주인은 스태퍼드 백작 존 폴 하워드 (John Paul Howard, 4th Earl of Stafford, 1700~1762)이다. 왼쪽 하얀 대리석 판은 그의 아내인 백작부인이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며 바친 긴 영문 찬양 비문이다.

< 스태퍼드 백작 존 폴 하워드의 무덤>

상자 모양 무덤(Altar Tomb)의 주인은 서퍽 공작부인 프랜시스 그레이(Frances Grey, Duchess of Suffolk, 1517~1559)입니다. 로마 장군의 갑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의 조각상이 있는 무덤은 18세에 네덜란드 참전 후 사망한 프란시스 홀리스 (Francis Holles, 1622년 사망)의 기념비이다.

<서퍽 공작부인 프랜시스 그레이 무덤>

러셀 가문(Russell Family)의 유명한 기념비 두 개가 나란히 있다. 누워 있는 무덤의 주인은 존 러셀 경 (John, Lord Russell, 1553~1584)이다. 왼쪽 원기둥 위의 앉아 있는 조각상은 엘리자베스 러셀 (Elizabeth Russell, 1601년 사망)의 기념비이다. 이 조각상은 영국 역사상 최초로 독립된 기념비 위에 ‘의자에 앉아 있는 형태’로 제작된 인물상이다.

<존 러셀 경과 엘리자베스 러셀의 기념비>

검은색 금속 기념비(Floor Stone)의 주인은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에드워드 불워 리턴 (Edward Bulwer-Lytton, 1803~1873)이다. 소설 《폼페이 최후의 날(The Last Days of Pompeii)》의 저자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거장이다.

<에드워드 불워 리턴의 무덤>

화려한 청색과 금색의 고딕 양식 캐노피 아래에 누워 있는 기사 상(Effigy) 무덤의 주인은 버나드 브로카스 경 (Sir Bernard Brocas, 1330?~1395)이다.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인 ‘흑태자’ 에드워드가 매우 아끼던 기사로, 크레시 전투와 푸아티에 전투 등 백년전쟁의 주요 전장에서 활약했다.

<버나드 브로카스 경의 무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기사이자 왕실 사냥개 관리관이었던 리처드 펙살 경 (Sir Richard Pecksall, 1571년 사망)의 기념비이다. 중앙에는 리처드 펙살 경이, 양 옆에는 두 아내가, 아래에는 네 딸이 표현되어 있다.

<리처드 펙살 경 기념비>

제8대 슈루즈버리 백작 에드워드 탤벗(Edward Talbot, 8th Earl of Shrewsbury, 1561~1618)과 그의 아내 제인 탤벗 백작부인(Jane Talbot, Countess of Shrewsbury, ?~1626)의 무덤이다.

<슈루즈버리 백작 에드워드 탤벗 부부의 무덤>

헨리 3세 왕의 이복동생이자 펨브록 백작인 윌리엄 드 발랑스 (William de Valence, Earl of Pembroke, 1296년 사망)의 무덤이다. 성 에드먼드 예배당 내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이다. 중세 영국의 에나멜 기사 무덤 중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다.

<펨브록 백작인 윌리엄 드 발랑스 무덤>

가운데 있는 대리석 기념비(Low Altar Tomb)의 주인은 스태퍼드 백작부인 메리(Mary, Countess of Stafford, 1620~1693)이다. 뒷편의 대형 청동판 무덤은 그녀의 선조인 엘레아노르 드 보훈(Eleanor de Bohun, 1399년 사망)의 유명한 기념비적 브라스(Monumental Brass)이다.

<스태퍼드 백작부인 메리의 기념비와 레아노르 드 보훈의 기념비적 브라스>

성 베네딕트 예배당

성 베네딕트 예배당(Chapel of St. Benedict)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부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사원을 세우고 수백 년간 지켜온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의 유산이 집약된 곳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본래 10세기경 성 던스턴에 의해 설립된 베네딕토회 수도원 공공 교회로 출발했다. 이 예배당은 수도회의 창설자인 성 베네딕토(St. Benedict)에게 헌정된 공간이다.

<성 베네딕트 예배당(Chapel of St. Benedict)>

서섹스 백작부인 프랜시스 래드클리프 (Frances Radclyffe, Countess of Sussex, 1589년 사망)의 무덤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시드니 서섹스 칼리지(Sidney Sussex College)의 설립자로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서섹스 백작부인 프랜시스 래드클리프

가브리엘 굿맨 (Gabriel Goodman, 1528~1601) 학장의 무덤이다. 엘리자베스 1세 시기,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제5대 학장으로서 무려 40년간 재임하며 사원과 부속 학교의 발전에 헌신한 정치가이자 종교인이다.

<가브리엘 굿맨의 무덤>

드린 사이먼 랭엄 추기경 (Simon Langham, 1310년경~1376)의 무덤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수도원장(Abbot)을 거쳐 런던 주교, 캔터베리 대주교, 그리고 대법관(Lord Chancellor)까지 지낸 당대 최고의 권력자이자 종교인이었다.

<드린 사이먼 랭엄 추기경의 무덤>

제1대 미들섹스 백작 라이오넬 크랜필드 (Lionel Cranfield, 1st Earl of Middlesex, 1575~1645)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앤 크랜필드 백작부인 (Anne Cranfield, ?~1670)의 무덤이다. 제임스 1세 시기에 뛰어난 상업적 능력을 인정받아 고위 재무관의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제1대 미들섹스 백작 라이오넬 크랜필드 부부의 무덤>

남측랑(South Transept)

남측랑(South Transept)은 전 세계 문학도들과 예술 애호가들의 성지인 ‘시인의 코너(Poets’ Corner)’로 아주 유명하다. 이 공간에는 영국의 문학, 연극, 음악 등 문화 예술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100명이 넘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안장되어 있거나 기념비로 기려지고 있다. 이곳에 처음으로 묻힌 문인은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400년 안장)이다. 이후 찰스 디킨스, 토머스 하디 등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들이 이곳에 묻히거나 기념비가 모셔졌다.

<남측랑(South Transept)>

주제단(High Altar)의 남쪽 외벽에 있는 기념비들이다. 왼쪽은 당대 최고의 명설교가이자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성직자였던 로버트 사우스 박사 (Dr. Robert South, 1634~1716)의 기념비이다. 오른쪽은 웨스트민스터 학교의 전설적인 교장 리처드 버스비 박사 (Dr. Richard Busby, 1606~1695)의 기념비이다. 중앙에는 헨리 8세의 네 번째 왕비였던 클레브스의 앤의 무덤 구조물의 일부이다.

<로버트 사우스 박사와 리처드 버스비 박사의 기념비>

성 베네딕트 예배당 앞에 있는 영국의 위대한 시인이자 극작가, 비평가인 존 드라이든 (John Dryden, 1631~1700)의 기념비이다. 존 드라이든은 17세기 후반 영국 문학계를 지배했던 인물로, 영국의 최초 공식 계관시인(Poet Laureate)으로 임명된 인물이다.

<존 드라이든 기념비>

기둥 사이에 모셔진 대리석 흉상의 주인은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코너(Poets’ Corner)’에 기념비가 세워진 최초의 미국인이다.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벽면 중앙의 중세풍 제단 무덤은 이 구역이 ‘시인의 코너’가 되게 만든 역사적인 시발점이자,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영문학의 아버지 제프리 초서의 실제 무덤이다. 중앙에 자리 잡은 회색조의 고딕 양식 지붕(캐노피)과 하단 제단 무덤이 바로 초서의 묘입니다. 그가 1400년에 이곳에 묻힌 이후, 그를 존경하는 수많은 문학가가 주변에 함께 묻히거나 기념비를 세우면서 지금의 ‘시인의 코너’가 형성되었다. 왼쪽은 에이브러햄 카울리(Abraham Cowley, 1618~1667), 오른쪽은 존 필립스 (John Philips, 1676~1709)의 기념비이다. 초서 무덤 바로 위에는 존 드라이든 (John Dryden) 기념 석판이 있다.

<영문학의 아버지 제프리 초서의 실제 무덤>

오른쪽 하단 가장 큰 바닥 묘비는 “초서 근처에 묻힌 시인들”이다. 제프리 초서, 존 드라이든, 프랜시스 보몬트(FRANCIS BEAUMONT, 1616), 존 덴햄 경(SIR JOHN DENHAM, 1669), 매튜 프라이어(MATTHEW PRIOR , 1721) 무덤이 근처에 있음을 알려주는 묘비이다.

<시인의 코너>

기둥에 설치된 기념비의 주인은 영국의 전설적인 역사학자, 고고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윌리엄 캠던 (William Camden, 1551~1623)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에 안치된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무덤과 비문을 최초로 기록해 책으로 출판한 인물이다.

<윌리엄 캠던 기념비>

‘시인의 코너(Poets’ Corner)’의 서쪽 및 남쪽 벽면 공간이다. 《실낙원(Paradise Lost)》의 저자인 존 밀턴, 시인 토마스 그레이(Thomas Gray, 1716~1771)의 기념비, 스코틀랜드의 시인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 등의 흉상 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을 통해 ‘엘리자베스 갤러리(The Queen’s Diamond Jubilee Galleries)’로 들어갈 수 있다. 2018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사원의 높은 천장 쪽 공간을 개조해 문을 열었다.

<‘시인의 코너’의 서쪽 및 남쪽 벽면 공간>

‘시인의 코너(Poets’ Corner)’ 중 영국의 위대한 문학가, 사상가, 언어학자들의 조각상이 한데 모여 있는 구역이다. 사진 가장 정중앙 앞쪽에 둥근 원통형 기단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전신상의 주인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시인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 1777~1844)이다.

< 토마스 캠벨 기념비>

중앙 아치형 감실 안에서 책대에 팔을 기대고 생각에 잠긴 듯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이다. 바로 위에 존 키츠 (John Keats, 1795~1821) & 퍼시 비시 셸리 (Percy Bysshe Shelley, 1792~1822)의 기념비가, 왼쪽 벽면에는 영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사우디 (Robert Southey, 1774~1843), 영어사전을 편찬한 사무엘 존슨 (Samuel Johnson, 1709~1784), 《오만과 편견》의 저자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1775~1817)의 기념비가 있다. 오른쪽에는 영국 국가 《통치하라 브리타니아(Rule, Britannia!)》의 가사를 쓴 인물인 제임스 톰슨 (James Thomson, 1700~1748), 그 위에 토마스 캠벨 (Thomas Campbell)의 흉상이 있다. 의자에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전신 조각상은 영국의 자연주의 문학을 개척한 거장이자 최고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기념비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들이 실제로 모여 있다. 바닥에 깔린 두 개의 기념석(바닥 묘비)의 주인은 영국의 전설적인 연극배우존 길구드 경 (Sir John Gielgud, 1904~2000)과 중세 왕실 관련 인물들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기념비가 있는 구역>

성 페이스 예배당(St Faith’s Chapel) 문 바로 위쪽에 설치된 기념비의 주인은 아일랜드 출신의 위대한 문학가 올리버 골드스미스 (Oliver Goldsmith, 1728–1774)의 기념비이다. 《웨이크필드의 목사(The Vicar of Wakefield)》 등으로 잘 알려진 18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이다. 오른쪽 소설가이자 시인인 월터 스콧 경 (Sir Walter Scott, 1771–1832)의 흉상이다. 위에 있는 부조는 시인 존 드라이든 (John Dryden, 1631–1700)의 프로필 부조이다.

<올리버 골드스미스, 월터 스콧 경, 존 드라이든>

시인의 코너(Poets’ Corner)’ 구역의 서쪽 벽면이다. 위쪽 감실 속 핵심 기념비의 주인은 바로 음악의 어머니라 불리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이다. 헨델은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실제 무덤이 있는 곳이다. 가운데 정치가이자 군인인 소장 아치볼드 캠벨 경 (Major General Sir Archibald Campbell, 1739–1791) 기념비이다. 왼쪽은 ‘메리 호프 (Mary Hope, ?–1767)의 기념비이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기념비>

왼쪽은 정치가 제임스 스튜어트 매켄지 (James Stuart Mackenzie, 1719–1800), 가운데는 사법부에서 명성을 떨친 앳킨스 가문의 인물들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오른쪽 상단 원형 부조는 ‘스웨덴의 나이팅게일’로 불린 전설적인 소프라노 가수 제니 린드제니 린드 (Jenny Lind, 1820–1887)의 부조이다. 아래쪽은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존 캠벨 공작 부부의 흉상이다. 오른쪽 흉상은 소설가 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William Makepeace Thackeray, 1811–1863)이다.

<제임스 스튜어트 매켄지 기념비 등>

전신 석상의 주인은 영국의 위대한 시인이자 극작가인 조셉 애디슨 (Joseph Addison, 1672–1719)이다. 리처드 스틸과 함께 유명한 잡지 《스펙테이터(The Spectator)》를 창간하여 18세기 영국 수필 문학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조셉 애디슨 기념비>

왼쪽은 국의 저명한 성직자이자 식물생리학, 화학, 발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과학자인 스티븐 헤일스 (Stephen Hales, 1677–1761)의 기념비이다. 가운데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교장(Dean of Westminster)이자 로체스터의 주교(Bishop of Rochester)를 역임한 존 토마스 (John Thomas, 1712–1793), 오른쪽은 군진의학(Military Medicine)의 개척자이자 왕립학회 회장을 지낸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명한 의사 존 프링글 경 (Sir John Pringle, 1707–1782)이다.

<스티븐 헤일스, 존 토마스, 존 프링글 경>

작은 흰색 흉상은 영국의 낭만주의 대표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대리석 흉상이다. 왼쪽은 성직자이자 신학자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보좌신부(Canon)와 고문관을 지낸 윌리엄 아우트람 (William Outram, 1626–1679), 가운데는 영국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아이작 뉴턴의 스승으로 매우 잘 알려진 아이작 배로우 (Isaac Barrow, 1630–1677), 오른쪽은 성직자이자 학자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보좌신부(Sub-Dean)를 역임한 토마스 트리플렛 (Thomas Triplett, 1603–1670)이다.

<윌리엄 워즈워스, 윌리엄 아우트람, 아이작 배로우, 토마스 트리플렛>

왼쪽은 8세기 영국의 매우 유명한 건축가이자 조각가 로버트 테일러 경 (Sir Robert Taylor, 1714–1788), 가운데는 신고전주의와 고딕 부흥 양식으로 명성을 떨친 영국의 천재적인 건축가 제임스 와이엇 (James Wyatt, 1746–1813), 오른쪽은 18세기 영국 연극계를 지배했던 전설적인 배우이자 극작가, 극장 감독 데이비드 가릭 (David Garrick, 1717–1779)의 기념비이다.

<로버트 테일러 경, 제임스 와이엇, 데이비드 가릭>

왼쪽 위는 17세기 영국의 의사이자 왕립학회(Royal Society)의 초기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토마스 콕스 (Thomas Coxe, 1615–1685), 왼쪽 아래는 건축가 제임스 와이엇의 상세 명판, 가운데는 프랑스 태생의 영국의 저명한 고전학자이자 문헌학자인 아이작 카조본 (Isaac Casaubon, 1559–1614), 오른쪽은 영국의 유명한 지리학자, 역사의사, 그리고 고고학자인 윌리엄 캠든 (William Camden, 1551–1623)의 기념비이다.

<토마스 콕스, 아이작 카조본, 윌리엄 캠든>

조셉 애디슨의 석상 앞 바닥에는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 1812–1870), 토마스 하디 (Thomas Hardy, 1840–1928), 러디야드 키플링 (Rudyard Kipling, 1865–1936) 등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들의 무덤과 묘비들이 있다.

<찰스 디킨스, 토마스 하디, 러디야드 키플링 무덤이 있는 바닥>

바닥에 나란히 놓인 검은색 대리석 묘비는 영국의 위대한 역사학자이자 시인, 정치가인 토마스 바빙턴 매콜리 경 (Thomas Babington, Lord Macaulay, 1800–1859),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보좌신부였던 존 헤일린 박사의 아내 엘리자베스 헤일린 (Elizabeth Heylyn, ?–1747) 등이다.

<바닥에 나란히 놓인 검은색 대리석 묘비>

남측 성가대 통로 (South Choir Aisle)

남측 성가대 통로의 벽면은 18세기~19세기 영국 제국 전역에서 활약한 군인, 해군 제독, 외교관, 그리고 식민지 주지사들의 기념비들이 있다. 국가에 헌신한 ‘공공의 영웅들’을 기리는 애국적 성격이 강한 곳이다.

<남측 성가대 통로>
<남측 성가대 통로>

갑옷을 입고 누워 있는 무덤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저명한 법관이자 판사였던 토마스 오웬 경(Sir Thomas Owen, ?–1598)의 무덤 겸 기념비이다. 왼쪽은 토마스 트리플렛 박사(Dr. Thomas Triplett) 기념비이다.

<토마스 오웬 경 무덤>

네이브석 남쪽 통로(South Aisle of the Nave)

남쪽 측랑(South Aisle)은 영국의 역사적 위인들을 기리는 독특한 기념비와 추모 공간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과학자, 탐험가, 예술가, 극작가, 사회 운동가들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네이브석 남쪽 통로(South Aisle of the Nave)>

남쪽 통로에 위치한 회랑 입구(Cloister Entrance) 주변의 모습이다. 문 중앙 상단에는 코틀랜드의 군사 도로 건설로 잘 알려진 영국의 군인 조지 웨이드 육군 원수 (Field Marshal George Wade, 1673–1748)의 기념비가 있다. 문 오른편 하단에는 링컨 대성당의 학장(Dean of Lincoln)이자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성직자였던 로버트 캐넌 (Robert Cannon, 1663–1722)의 기념비가 있고, 중단에는 런던 경기병대(Light Horse Volunteers)를 이끌었던 군인 스 헤리스 (Charles Herries, 1745–1819)이 있다. 문 왼편 중단에는 인도에서 활약한 영국의 장군이자 정치가 제임스 아우트램 경 (Sir James Outram, 1803–1863)이 있다. 그 아래에 1788년에 사망한 여성 앤 화이텔 (Ann Whytell, ?–1788)의 기념비가 있다.

<회랑 출입문 부근>

중앙 하단에는 영국의 유명한 자선가이자 예술 후원가였던 캐서린 보비 (Katharine Bovey, 1669–1727)의 기념비가, 그 위에는 프렌치-인디언 전쟁에서 활약하다 전사한 영국의 장군이자 정치가 조지 오거스터스 하우, 제3대 하우 자작 (George Augustus Howe, 3rd Viscount Howe, 1725–1758)의 기념비가 있다. 왼쪽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학장(Dean)이자 로체스터의 주교를 지낸 저명한 신학자 재커리 피어스 주교 (Zachary Pearce, 1690–1774), 영국의 유명한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로, 최초로 공룡(메갈로사우루스) 화석을 공식 학계에 보고한 인물인 윌리엄 버클랜드 (William Buckland, 1784–1856)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학장과 로체스터 주교를 역임한 성직자 존 토마스 주교 (John Thomas, 1712–1793)와 성직자 존 아일랜드 학장 (John Ireland, 1761–1842)의 흉상이 있다.

<캐서린 보비, 조지 오거스터스 하우, 재커리 피어스 주교, 윌리엄 버클랜드, 존 아일랜드 학장 기념비>

이 구역의 중심에는 거대한 대포, 군함, 깃발 등의 군사적 요소를 역동적인 대리석 조각으로 풀어낸 해군 제독의 대형 기념비가 자리 잡고 있다. 가운데에는 토마스 스미스 해군 제독 (Rear-Admiral Thomas Smith, ?~1759) 및 프린 해군 가문의 기념비가 있다. 왼쪽은 영국의 저명한 의사이자 의학 역사학자, 국회의원이었던 존 프린 박사를 기리는 기념비이다. 오른쪽 문 위에 있는 작은 기념비는 혁신적인 ‘콘그리브 로켓’을 발명한 군인이자 발명가 윌리엄 콘그리브 경 (Sir William Congreve, 1772–1828)의 기념비이다.

<해군 제독의 대형 기념비>

가운데는 《세상의 이치(The Way of the World)》 등의 걸작을 남긴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 윌리엄 콩그리브 (William Congreve, 1670–1729)의 기념비이다. 왼쪽은 의사이자 국회의원 존 프린 박사(John Freind, 1675–1728)의 기념비이다. 오른쪽 문 위에 있는 기념비는 18세기 초 영국의 정치가 제임스 크래그스 (James Craggs, 1686–1721)의 기념비이다.

<윌리엄 콩그리브, 존 프린 박사, 제임스 크래그스 기념비>

네이브(Nave) 남서쪽 모퉁이에 위치한 성 조지 예배당(St George’s Chapel)이다. 리처드 2세(Richard II, 1367~1400) 국왕의 초상화와 대관식 의자를 볼 수 있다. 창살 안쪽 정면을 자세히 보시면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작은 제단과 불빛이 보인다.

<성 조지 예배당(St George’s Chapel)>

기념비(묘비)의 주인공은 요스트 드 블랑(Joost de Blank, 1908~1968) 신부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주교 시절, 백인 우월주의 정권의 흑백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격렬히 저항했던 대표적인 양심적 종교인이다.

<요스트 드 블랑 신부 기념비>

영국 왕실의 일원이자 역사적 거물이었던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 부부의 기념비이다.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 (Louis Mountbatten)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의 친외삼촌이자, 현재 영국의 국왕인 찰스 3세가 ‘영혼의 멘토’로 생각하며 가장 존경하고 따랐던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동남아시아 최고사령관을 지냈고, 인도의 마지막 총독으로서 인도의 독립 과정을 이끌었다.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 부부의 기념비>

<출처>

  1. ‘Westminster Abbey, wikipedia, 2026년
  2.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7.05 확인)
  3. OpenAI, <ChatGPT (GPT-5.3)>의 답변, 2026년 7월 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