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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런던탑, 중세 궁전(Medieval Palace)

런던탑 중세 궁전(Medieval Palace)은 13세기 영국의 왕실 거주 공간이다. 런던 탑에서 화이트타워 남쪽과 동쪽의 최내곽 구역(Inmost Ward)’에 위치하고 있다. 13세기 헨리 3세(Henry III)와 그의 아들 에드워드 1세(Edward I)가 런던탑을 방어용 요새를 넘어 중세 국왕의 위엄을 보여주는 화려한 궁전으로 확장하면서 조성되었다. 템스강을 바라보는 내성 벽을 따라 연결된 3개의 핵심 타워로 이루어져 있다. 왕의 사적 공간이자 침실이 있는 성 토머스 타워 (St Thomas’s Tower), 헨리 3세가 알현실(Throne Room) 및 접견실로 사용한 웨이크필드 타워 (Wakefield Tower), 국왕의 사적인 보물과 장신구 등을 보관하던 랜턴 타워 (Lanthorn Tower) 등이 남아 있다. 남쪽 내성에서 화이트 사이에 있던 많은 부속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되고 넓은 잔듸밭으로 바뀌었다.

<런던탑 중세 궁전(Medieval Palace)>
<중세 궁전 공간 배치>

‘왕비의 계단(Queen’s Stairs)’은 템스강에서 배를 타고 런던탑으로 들어오는 공식 선착장 겸 계단으로, 왕실 가족과 외국 사절, 고위 귀빈들이 이용하던 출입구였습니다. 1533년, 앤 불린은 헨리 8세와의 결혼 후 왕비 대관식을 앞두고 화려한 수상 행렬을 통해 런던탑에 입성했다. 불과 3년 뒤인 1536년 그녀는 반역과 간통 혐의로 같은 런던탑에 수감되었고 처형되었다.

<왕비의 계단(Queen’s Stairs)>

성 토머스 타워 (St Thomas’s Tower)

성 토머스 타워는 에드워드 1세가 건립한 타워로, 국왕의 사적 공간이자 침실이 위치했다. 원래 금박을 입힌 창살과 채색된 조각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화려한 벽화와 가구가 당시 모습대로 재현되어 있다. 에드워드 1세는 건축을 위해 유대인들에게 부과한 막대한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했다. 그는 1290년, 잉글랜드의 유대인 공동체 전체를 국외로 추방하기에 앞서 이러한 세금을 거두었다.

<성 토머스 타워 (St Thomas’s Tower)>

성문(Gatehouse), 왕실 거처(Palace), 수상 출입구(Water Gate)의 기능을 하나로 결합한 복합 건축물이다. 중앙에는 아치형 통로가 있어 템스강에서 들어오는 배가 바로 성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출입구 양쪽에는 두꺼운 석조 벽과 망루가 배치되어 방어력을 높였다. 일반적인 성문과 달리 상층에는 왕이 사용할 수 있는 호화로운 거주 공간이 마련되었다.

<왼쪽에서 본 모습>
<오른쪽에서 본 모습>
<내성 서쪽에서 본 모습>

외성 성벽을 오르는 계단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다. 탑의 상층부에는 왕과 왕실이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숙소와 접견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웨이크필드 타워 (Wakefield Tower)과 직접 연결되어 왕실 생활의 중심 공간을 이루고 있다.

<성벽을 오르는 계단>
<작은 출입문>

성 토머스 타워(St Thomas’s Tower) 내부 전시 공간이다. 왼쪽의 목조 계단은 중세 왕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성 토머스 타워 상층부의 왕실 거처와 연결된다. ‘반역자의 문’ 바뤼 위층에 있는 공간이다.

<내부 전시공간>

이 방은 아마도 손님과 사절을 맞이하는 접견실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강 쪽 벽을 살펴보면 대형 벽난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에드워드 1세는 전사 왕이자 뛰어난 성곽 건설자였습니다. 그는 키가 매우 커서 ‘롱생크스(Longshanks, 긴 다리)’​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성격이 급하고 강인했으며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한 군주였다. 그는 웨일스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스코틀랜드와 프랑스에서의 전쟁에서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템즈강 방향>

창문 밖으로 템스강이 보이며, 왕실 거처가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광을 들이는 동시에 강을 감시할 수 있는 위치로 남서쪽 모서리 망루 아래인 것으로 보인다.

<모서리>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성 토머스 타워(St Thomas’s Tower)의 가장 특징적인 방 중 하나인 ‘돌출 전망실(Oriel)’ 이다. 왕이 템스강을 내려다보며 머물거나 손님을 맞이하던 전망 공간으로 보인다. 여러 개의 석재 리브가 교차하는 초기 영국 고딕(Early English Gothic)의 전형적인 천장이다. 세 방향으로 창이 배치되어 있어 템스강과 런던 시내를 넓게 조망할 수 있다.

<돌출 전망실(Oriel)>
<이곳에서 보이는 템스강과 타워브리지>
<바깥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창문>
<바깥 경치>

성 토머스 타워 내부의 왕의 침실(King’s Bedchamber)이다. 왕실 문장(紋章)이 그려진 화려한 후드형 벽난로,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4주식(four-poster) 침대 등을 볼 수 있다.

<왕의 침실(King’s Bedchamber)>
<침대>

붉은 셔터에 그려진 금색 문장은 잉글랜드 왕실 문장(Royal Arms of England)이다. 붉은 바탕에 금색 사자 세 마리가 옆모습으로 걸어가는 자세(passant guardant)로 배치되어 있다. “잉글랜드의 삼사자(Three Lions of England)”라고 부른다. 12세기 후반 리처드 1세(사자심왕) 때 확립된 후 잉글랜드 왕실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잉글랜드 왕실 문장(Royal Arms of England)>

에드워드 1세는 매일 미사에 참석했으며, 종종 개인 예배당에서 예식을 드렸다. 이곳은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으로, 제단, ​보석으로 장식된 십자가, 그리고 ​장식 타일 바닥을 통해 중세 왕실 예배당의 분위기를 보여 주고 있다.

<작은 예배당>

침실에 딸린 작은 예배당(chantry chapel)이다. 왕이 개인적으로 기도하던 소규모 예배 공간이다. 리브 볼트(rib vault) 천장, 뾰족한 고딕 아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은 13세기 후반 고딕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침실에 딸린 작은 예배 공간>

반역자의 문(Traitors’ Gate)

하층부에는 강과 직접 연결되는 수문이 설치되어 조수의 흐름을 이용해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 수문에는 쇠창살문(Portcullis)과 견고한 목재문이 설치되어 평상시에는 방어시설로 기능했다. 15~16세기 이후 왕실 출입보다 죄수의 수상 출입이 많아지면서 ‘반역자의 문(Traitors’ Gate)’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다.

<반역자의 문(Traitors’ Gate)>
<안쪽에서 본 모습>

레이디 제인 그레이(Lady Jane Grey)와 같은 튜더 시대의 유명한 죄수들이 이 수문(水門)을 통해 런던탑으로 들어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레이디 제인 그레이는 1553년 왕위에 오른 지 9일 만에 폐위되었으며, 이후 런던탑에 수감되었다가 처형되었다. 죄수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템스강을 거슬러 올라가 웨스트민스터 법원(Westminster courts)으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았다. 흥미로운 스토리는 지금도 런던탑 탐방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스토리 설명을 듣고 있는 탐방객들>

웨이크필드 타워(Wakefield Tower)

웨이크필드 타워(Wakefield Tower)는 남쪽 내성에 위치한 원형 방어탑이다. 13세기 중반 Henry 3세가 왕궁을 확장하면서 건설한 탑이다. 국왕의 개인 거주 공간 및 공식 접견실(Audience Chamber) 용도로 사용되었다. 적의 침입에 대비해 매우 두꺼운 석조 벽체로 설계되었다. 런던탑 중세 궁전에서 화의트 타워 다음으로 큰 규모의 건물이다. 장미전쟁 중 폐위된 헨리 6세는 런던 탑에 수감되었으며, 이곳에서 살해된 것으로 전해진다.

<웨이크필드 타워(Wakefield Tower)>

연결통로는 에드워드 1세가 1270년대 런던 탑을 확장하면서 조성되었다. 왕과 왕실 가족, 수행원들이 외부를 거치지 않고 두 건물을 오갈 수 있도록 만든 전용 통로였다. 통로는 두꺼운 석조 벽, 비교적 좁은 통행 폭, 외부를 감시할 수 있는 창과 틈, 유사시 병력이 이동할 수 있는 방어 통로 등 궁전과 요새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남쪽은 템스강을 향하고 있어 강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왕의 침실에서 통로로 나오는 출입문>
<통로 계단>
<접견실로 연결되는 통로>

‘웨이크필드 타워(Wakefield Tower) 2층’에 위치한 왕의 접견실이다. 왕좌와 예배당 스크린 등은 중세 기록을 참조하여 재현한 복제품이다. 13세기 고딕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리브 볼트(rib vault) 천장의 정교한 아치가 특징이다. 벽난로 상단에는 잉글랜드 왕실을 상징하는 세 마리의 사자 문양이 그려져 있다.

<왕의 접견실>
<성 토마스 타워와 연결되는 통로>
<삼사자 문양이 있는 벽난로>

당시 헨리 3세가 외빈을 맞이할 때 앉았던 어좌(Throne)가 복원된 공간이다.

<어좌(Throne)>

2층 접견실 한쪽에 위치한 ‘왕실 소예배당’이다. 예배당 입구를 경계 짓는 알록달록한 목재 판넬 스크린이 복원되어 설치되어 있다. 장미 전쟁 당시,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6세가 1471년 5월 21일 밤, 바로 이 소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 살해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매년 헨리 6세의 기일이 되면, 그가 설립한 이튼 칼리지와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관계자들이 찾아와 이곳에 백합과 백장미를 바치는 추모식이 열린다고 한다.

<왕실 소예배당>

이 창문은 ‘오리엘 창(Oriel window)’으로 불리는, 중세 건축의 특징적인 요소이다. 창문 양옆으로 돌로 만들어진 벤치가 놓여 있습니다. 이 벤치에 앉으면 런던탑의 핵심 공간인 ‘화이트 타워’를 바라볼 수 있다. 당시 왕이나 귀족들이 바깥 풍경을 감상하거나 대화를 나누던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리엘 창(Oriel window)>

2층 내부의 창가 벽감 공간이다. 창문 옆에는 당시 방한 및 방어를 위해 설치된 커다란 나무 덧창(Wooden Shutter)이 달려 있으며, 천장은 상부의 무게를 견디도록 석조 아치 구조로 마감되어 있다.

<창가 벽감 공간>

내부 성벽 통로(Inner Curtain Wall Walk)

13세기 헨리 3세와 에드워드 1세 시절, 웨이크필드 타워는 왕의 거처 및 접견실로, 랜턴 타워는 왕비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이 통로는 왕과 왕비가 외부로 나가지 않고 안전하게 왕래할 수 있도록 연결된 수평 동선이었다. 성벽 상단을 따라 연결되는 방어시설 역할을 했으며, 통로를 지날 때 탬스강과 런던탑 내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내부 성벽 통로(Inner Curtain Wall Walk)로 나가는 출입문>
<계단>
<내부 성벽 통로(Inner Curtain Wall Walk)>
<통로에서 보이는 화이트타워>

왕과 왕비들은 무역과 방어의 핵심이었던 템스강을 장악하기 위해 런던탑을 활용했다. 헨리 3세는 1240년대에 성벽 위 보행로를 따라 견고한 외성(外城)을 새로 쌓았다.

<템스강과 타워브리지>
<성 토마스타워>
<랜턴 타워 앞에서 보이는 성벽 위 통로>
<성벽 안쪽 정원>
<내성 바깥 통로에서 본 모습>
<안쪽에서 본 모습>

랜턴 타워(Lanthorn Tower)

랜턴 타워(Lanthorn Tower)는 영국 런던탑 내성(Inmost Ward) 남동쪽 모서리에 위치한 탑이다. 13세기 초 헨리 3세가 왕실 거처를 확장하면서 건립되었으며, 당시 왕과 왕비의 생활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건물 가운데 하나였다. 탑 꼭대기에 등불을 밝혀 템스강을 오가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했기 때문에 랜던타워라 불렸다. 원래의 중세 건물을 바탕으로 19세기 후반에 복원된 것이다.

<랜턴 타워(Lanthorn Tower)>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왕비(Queen Eleanor of Provence)의 개인 거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왕비의 침실(Queen’s Chamber), 예배 공간, 생활 공간과 함께 왕비 전용 거처를 구성하고 있다. 건물 내에는 관련된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출입문>

랜턴 타워(Lanthorn Tower) 내부에 있는 깊은 창문 공간(window recess)이다. 창 아래에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왕비나 시녀들이 앉아 독서, 바느질, 담소를 나누거나 템스강과 런던 시내를 바라보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건물 내부>
<내부 창문>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
<솔트 타워로 연결되는 통로>
<통로에서 보이는 랜턴 타워>
<마당에서 보이는 모습>
<내성 바깥에서 본 모습>

블러디 타워(Bloody Tower)

블러디 타워(Bloody Tower)는 영국 런던탑에 있는 가장 유명한 탑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는 왕실 정원으로 이어지는 출입구 역할을 해서 가든 타워(Garden Tower)라 불렸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인 에드워드 5세와 동생 요크 공 리처드가 런던탑에 머무러다 살해되었다고 전해진다. 그후 17세기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를 비롯하여 종교개혁과 왕위 계승 분쟁 시기에 많은 정치범과 귀족들이 이곳에 수감되어 감옥으로서 런던탑의 명성을 만들었던 장소이다.

<블러디 타워(Bloody Tower)>
<성문>
<안쪽에서 본 모습>
<내성 성벽과 블러디 타워로 연결되는 출입문>

두꺼운 석조 벽과 좁은 창문을 갖춘 전형적인 13세기 방어용 탑이다. 아래층은 경비와 출입 통제를 위한 공간이었고, 위층은 비교적 신분이 높은 죄수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블러디 타워 출입문>
<1층 출입문>

출입문을 들어서면 성문을 막던 쇠창살문(Portcullis)을 볼 수 있다. 철판과 쇠못으로 보강된 상하로 여닫는 방어용 격자문이다. 도르래 장치를 이용해 올리고 내릴 수 있으며, 적의 공격 시에는 이 요새의 출입구를 완전히 봉쇄할 수 있다.

< 쇠창살문(Portcullis)>

블러디 타워 내부의 원뿔형 창문 공간이다. 내부는 넓게, 외부는 좁게 만든 원뿔형 구조를 통해 적은 크기의 창으로도 최대한 많은 햇빛을 실내로 끌어들였다.

<원뿔형 창문 공간>
<내부 계단>
<건물 내부 통로>

런던 탑 블러디 타워(Bloody Tower) 내부의 고위 죄수 감금용 거처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비극 중 하나인 ‘탑 속의 왕자들(Princes in the Tower)’이 갇혀 있던 방이다. 에드워드 4세 사망 후 12세의 어린 왕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 요크 공작 리처드가 섭정이자 삼촌이었던 리처드 3세에 의해 감금되었던 방이다. 1483년은 두 왕자가 사라졌던 해이다. 엘리자베스 1세 시기의 탐험가이자 문인인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도 이 블러디 타워에 13년간 감금되어 생활하며 역사서 등을 저술했다.

<‘탑 속의 왕자들’이 갇혀 있던 방>
<창문과 휴식공간>
<통로에서 보이는 모습>

이곳은 윌터 롤리 경의 수용 구역이다. 1605~1606년, 투옥되어 있던 월터 롤리 경과 그의 가족을 위해 블러디 타워 내부를 목재 층과 격벽으로 나누어 정교한 주거 공간으로 개조했다. 목재 벽면 안쪽에는 런던 탑 통로를 차단하는 쇠창살 문(Portcullis)을 도르래로 올리고 내리는 장치와 관련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윌터 롤리 경의 수용 구역 (17세기초)>
<내부 모습>
<바깥으로 연결된 내성 성벽>
<내성 성벽과 블러디 타워>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성 토마스 타워>

건물터만 남은 곳

런던탑의 중세 궁전(Medieval Palace)에는 세 개의 탑(성 토머스 타워, 웨이크필드 타워, 랜턴 타워)만 남아 있지만, 13~14세기에는 이들 사이를 연결하는 수많은 건물이 있었다. 대부분은 17~19세기에 철거되거나 소실되었다. 대홀(Great Hall)은 연회를 열고 공식 행사를 했던 가장 큰 건물이었다. 왕실 부엌(Great Kitchen)은 수백 명의 궁중식사를 준비하던 대형 주방이었다. 웨이크타워와 랜턴타워 옆에는 개인응접실, 휴게실, 시종들의 방으로 구성된 왕실 숙소 건물이 있었다.

<중세 궁전 건물터>
<안쪽에서 본 모습>

이곳은 대연회장(Great Hall) 건물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내성 안쪽 정원과 부속 건물 등이 있던 자리>
<왕실 부엌(Great Kitchen)이 있던 자리>
<중세 궁전 담장>
<중세궁전 바깥 통로>

중세의 왕들은 야생동물을 선물로 주고받았다. 헨리 3세 왕은 1250년대에 노르웨이 왕으로부터 북극곰을, 프랑스 왕으로부터 코끼리를 선물받았다. 북극곰은 튼튼한 밧줄에 묶인 채 강에서 수영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수세기 동안 런던탑을 찾은 방문객들은 창살 안에 갇힌 사자와 표범 같은 맹수를 볼 수 있었다. 조선왕조 실록에도 코끼리를 선물 받았다는 내용이 있으며, 이런 사유로 서울 창경궁에 동물원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극곰을 전시하던 모습>

중세 시대 유대인들은 런던탑에 자주 갇히곤 했다. 당시 영국의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으며, 많은 부유한 유대인들이 왕실에 의해 재정 조사를 받는 동안 감금되었다. 일부는 지하실이나 마구간에 머물렀고, 심지어 비어 있는 코끼리 사육장에 갇히기도 했다.

<유대인이 감금되었던 코끼리 사육장>

리처드 1세 왕은 1190년경 옛 로마 성벽 위에 워드로브 타워를 건설했다. 이 탑은 국왕의 의상실 겸 보물고였던 ‘그레이트 워드로브(Great Wardrobe)’가 들어선 대형 건물의 일부가 되었다. 왕이나 여왕은 보석, 가구, 갑옷 등 휴대하기 좋은 귀중품을 이곳에 보관했다. 건물은 1878년과 1883년 사이에 철거되었다.

<워드로브 타워 (Wardrobe Tower)>

런던탑의 중세 궁전 정원은 왕실 생활과 휴식을 위한 폐쇄형 궁정 정원(courtyard garden)의 성격을 지녔다. 특히 웨이크필드 타워와 랜턴 타워 사이에 조성된 정원은 13세기 헨리 3세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 정원에는 로즈마리, 세이지, 민트, 타임, 라벤더 등 약용 및 조리용 식물, 성당과 궁전 내 향기를 내기 위한 식물들을 심었다. 17세기 초 블러디 타워에 갇혀 있던 월터 롤리 경은 정원 부지에 자신만의 약초 정원을 조성하여 의약품을 연구·조제하는 용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궁정 정원이 있던 자리>

<출처>

  1. 안내문, Tower of London, 2026년
  2. ‘Tower of London’, wikipedia, 2026년
  3.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8.03 확인)
  4. OpenAI, <ChatGPT (GPT-5.3)>의 답변, 2026년 8월 3일 작성.
  5. Anthropic, <laude (Sonnet 5)>의 답변, 2026년 8월 3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