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번째 전시실은 <국제적인 18세기 미술(The International 18th Century)>이란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18세기 유럽 각국의 예술가들이 주고받은 교류와 당대 미술적 경향, 그리고 당시 귀족·학자들의 유행이었던 그랜드 투어(Grand Tour) 문화 및 일상, 풍자, 신화적 주제를 다룬 다양한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Francisco de Goya)의 작품 <소풍 (A Picnic)>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베네치아 도시 풍경화가 카날레토(Canaletto)의 <이턴 칼리지 (Eton College, 1754년경)>이다. 카날레토가 영국에 머물던 기간에 그린 영국 전원 풍경화이다. 전경에는 강가에서 여유를 즐기는 인물들과 낚시하는 사람, 배를 젓는 모습 등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탈리아 특유의 명랑하고 맑은 햇살 표현이 영국의 전원 풍경과 결합되어 한가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카날레토가 영국에서 9년간 머무는 동안 그린 마지막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템스강 강변에서 바라본 이튼 칼리지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영국의 귀족 후원자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베네치아의 운하와 궁전을 그려 명성을 얻었던 카날레토는 여기서 붓을 돌려, 고요한 영국의 전원 풍경과 잔잔하게 흐르는 템스강을 묘사하고 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카날레토(Canaletto)의 <래널러 로툰다의 내부(London: Interior of the Rotunda at Ranelagh, 1754)>이다. 런던 첼시 지역에 위치했던 래널러 가든의 로툰다는 오케스트라 연주회, 무도회 등이 열리던 당대 최고 명소였다. 카날레토 특유의 정교한 수학적 투시도법을 통해 도출된 드넓은 천장 곡선과 아치형 회랑은 실내 공간의 압도적인 웅장함을 전달하고 있다.

첼시의 라넬라 가든(Ranelagh Gardens)은 18세기 런던에서 가장 유행하던 사교·유흥 정원 가운데 하나였다.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는 당시 상류사회의 사람들이 무도회를 열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던 거대한 원형 건물이었다. 그림 뒷면에 적힌 이탈리아어 명문에 따르면, 이 작품은 카날레토가 영국에서 성공적인 체류를 마무리하던 1754년에 그린 것이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베르나르도 벨로토(Bernardo Bellotto)의 <북쪽에서 바라본 케니히슈타인 요새(The Fortress of Königstein from the North, 1756~8)>이다. 드높은 절벽 위에 우뚝 선 케니히슈타인 요새의 거대한 위용과 전경에 작게 배치된 농민, 가축,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일상이 대비를 이룬다. 폴란드 국왕이자 작센 선제후였던 아우구스트 3세의 의뢰로 제작된 케니히슈타인 요새 연작(총 5점) 가운데 하나이다.

드레스덴에서 남동쪽으로 약 25마일(약 40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센의 쾨니히슈타인 요새가 옅은 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다. 벨로토는 세밀한 묘사와 대형 화면을 활용하여, 베네치아의 도시 풍경화(베두테, vedute) 전통을 이 북유럽의 풍경에 적용했다. 이 작품은 폴란드 국왕 아우구스트 3세(1696~1763)가 1756년 벨로토에게 의뢰한 쾨니히슈타인 풍경화 5점 가운데 하나이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클로드조제프 베르네(Claude-Joseph Vernet)의 <해안 풍경(A Sea-Shore, 1776)>이다. 17세기 해양 풍경화의 대가인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의 유산을 이어받아 대기 표현과 일광의 변화를 매우 섬세하게 포착했다.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햇살과 수면에 반사되는 빛의 잔물결이 화폭 전체에 온기와 우아함을 더해준다.

베르네는 이탈리아에서 18년 동안 생활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풍경과 상상의 풍경을 모두 그렸다. 이 작품의 풍경은 실제 장소를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상상하여 구성한 장면이지만, 등대는 베르네가 나폴리에서 스케치한 등대에서 부분적으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다. 화면에는 유행하는 옷차림의 숙녀들이 항구를 바라보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어부의 아내들이 새우를 잡으러 물에 들어가기 위해 스타킹을 벗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주제는 빛과 대기, 구름과 물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분위기와 그 변화이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Giovanni Paolo Panini)의 <인물들이 있는 로마 유적(Roman Ruins with Figures, 1739)>이다. 파손된 기둥과 석조물 사이에는 고대 로마의 토가를 입은 인물들과 당대 18세기 의상을 입은 이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적에 생동감을 더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인간 삶의 무상함, 그리고 영원히 남아있는 고대 유산의 위엄을 대조해 보여준다.

이 장면은 카프리치오(capriccio), 즉 실제 유적과 상상의 유적을 결합하여 구성한 건축적 환상화이다. 무너져가는 석조 피라미드는 로마에 있는 가이우스 케스티우스의 무덤(기원전 약 18~12년에 건립)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나머지 요소들은 화가가 상상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파니니가 이 고전적인 장면을 누구를 위해 그렸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작품의 작은 크기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그랜드 투어(Grand Tour) 여행객들의 취향에 잘 맞았을 것으로 보인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의 <억지로 마법에 걸린 사람의 한 장면(A Scene from ‘The Forcibly Bewitched’, 1798)>이다. 화면 중앙의 클라우디오는 공포에 질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악마 모양의 램프에 필사적으로 기름을 붓고 있다. 어둠 속에서 등잔을 들고 있는 염소 머리의 악마와 그 뒤로 뒷다리로 서서 위협하는 당나귀들의 환영이 있다. 당시 스페인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던 미신과 광신, 이성의 부재를 풍자했다.

돈 클라우디오가 기괴한 실물 크기의 숫양 모양 램프에 기름을 붓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마법에 걸렸으며 램프의 불꽃이 꺼지면 죽게 될 것이라고 믿도록 속아 있다. 그의 뒤쪽 벽에는 당나귀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 보인다. 이 풍자적인 그림의 소재는 안토니오 데 사모라(Antonio de Zamora, 1665–1727)가 쓴 희곡 《강제로 마법에 걸린 남자(The Forcibly Bewitched)》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 작품은 1698년에 처음 공연되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스페인 거장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의 <소풍 (A Picnic, 1785~90)>이다. 18세기 마드리드의 서민층 청춘 남녀인 ‘마호(Majo)’와 ‘마하(Maja)’들이 야외에서 야식을 즐기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야외에서 음식을 즐기는 한가로운 풍경이지만 당시 마드리드 사회의 신분적 특성과 인간적 미묘함이 표현되어 있다.

남녀 한 무리가 잔디밭에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 간단한 식사를 즐기고 있다. 이 장면은 전원에서의 목가적인 삶을 소재로 하면서도 이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한 모습이다. 화면 중앙의 발그레한 얼굴의 남자는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고, 엎드린 채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인물은 옆에 엎어진 술병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 듯하다. 이 작품은 고야가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1716–1788)를 위해 제작한 태피스트리 밑그림(카르통, cartoon) 연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루이레오폴드 부아이(Louis-Léopold Boilly)의 <창가의 소녀(A Girl at a Window, 1799)>이다. 캔버스 단면을 따라 타원형의 액자 틀, 깨진 유리창, 그리고 나무 창틀의 질감을 실제 실물처럼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매우 정교하게 묘사했다. 작가는 화려한 색채를 배제하고 회색과 갈색조 위주의 그리자유(Grisaille) 기법을 사용하여 조각상이나 석판화, 정교한 판화의 음영 느낌을 연출했다.

이 소녀는 당근 한 다발, 금붕어 어항, 값비싼 망원경 등 흥미로운 여러 물건에 둘러싸여 있다. 장면은 판화를 모방하기 위해 흑색·백색·회색의 색조로 그려졌다. 이러한 착시는 그림에 그려진 파란색 ‘받침대(mount)’와 화가가 인쇄한 것처럼 표현한 서명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부아이는 자신의 이러한 눈속임 기법의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트롱프뢰유(trompe-l’œil, ‘눈을 속이는 것’)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이탈리아 풍경화가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Giovanni Paolo Panini)의 <몬테치토리오 광장의 복권 추첨 (The Lottery in Piazza di Montecitorio, 1743~4)>이다. 18세기 도시풍경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로마의 실제 건물과 대중적 사건을 인상적인 원근법과 생동감 넘치는 군중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로마의 한 광장에서 복권 추첨이 진행되고 있다. 뒤쪽 발코니에서는 당첨 복권이 바람에 날리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건축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생동감 넘치는 군중의 모습이다. 잘 차려입은 귀족들 옆에는 맨발의 농민들과 채소 장수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파니니는 18세기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풍경화가(베두테 화가)였으며, 이 작품은 그의 가장 야심찬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루이 장 프라수아 라그르네(Louis Jean François Lagrenée)의 <모성애(Maternal Affection, 1775)>이다. 캔버스가 아닌 매끄러운 동판 표면에 작업하여 피부의 도자기 같은 질감과 정교한 인물 표현이 돋보인다. 고대 고전 의상을 입은 여인들과 아치형 회랑, 주홍·자줏빛 보자기, 푸른 하늘과 나뭇잎의 조화가 온화한 남유럽의 햇살과 어우러져 한가롭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라그르네는 1750년부터 1754년까지 4년간 로마에서 체류했다. 그는 프란체스코 알바니(Francesco Albani, 1578–1660)의 작품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의 알바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작은 동판화에서는 고전적인 복장을 한 세 명의 여성이 두 아기를 돌보고 있다. 그중 한 여성은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당시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모유 수유의 장점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폼페오 지롤라모 바토니(Pompeo Girolamo Batoni)의 <리처드 밀스의 초상(Portrait of Richard Milles, 1759)>이다. 18세기 영국 정치인 리처드 밀스(Richard Milles)가 교양과 식견을 쌓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 ‘그랜드 투어’ 도중 로마에 머물며 주문한 작품이다. 한쪽 손을 허리에 얹은 채 정면을 당당하게 바라보는 포즈는 인물의 우아한 지위와 자신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리처드 밀스(Richard Milles, 1735–1820)는 그랜드 투어를 하던 중 로마에 머물면서 이 초상화를 위해 모델이 되었다. 그는 지도에 표시된 ‘그리종(Grisons)’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곳은 스위스의 지역으로, 밀스가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전적인 기둥과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조각 흉상은 밀스가 교육을 많이 받은 교양 있는 신사임을 강조한다. 그는 붉은색 모피 안감 망토와 호화로운 은색 조끼, 붉은색 바지를 갖춰 입고 있어 매우 화려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앙리피에르 당루(Henri-Pierre Danloux)의 <자신의 살롱에 있는 베장발 남작(The Baron de Besenval in his Salon, 1791)>이다. 비스듬히 앉아 턱을 괸 남작은 벽난로 속 은은한 불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한때 왕실의 중심에서 권력을 누렸으나 정치적 풍파를 겪은 후, 자신의 수집품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공간에서 지난날을 되새기는 노년의 쓸쓸함과 회한이 느껴진다.

이 그림은 바롱 드 베장발(Baron de Besenval) 본인만큼이나 그의 미술품 컬렉션을 보여주는 초상화이다. 벽에는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회화가 걸려 있고, 그 옆에는 정교한 일본 도자기가 놓여 있다. 베장발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1789년 프랑스혁명이 시작되자 프랑스를 탈출하려 했다. 그는 1년 동안 감옥에 갇혔지만, 이 초상화가 그려진 해인 1791년에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프랑스 해양·풍경화가 클로드 조셉 베르네(Claude-Joseph Vernet)의 <티베르강에서의 경기 (A Sporting Contest on the Tiber, 1750)>이다. 로마의 티베르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물위의 토너먼트 경기와 화려한 사교 현장을 표현하고 있다.

로마의 테베레강 강변에 사람들이 모여 마상시합(joust)을 구경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는 중요한 왕족의 탄생이나 결혼, 그리고 주요 인사의 로마 방문을 기념하여 열리던 인기 있는 오락 행사였다. 베르네는 1734년부터 1752년까지 18년간 로마에서 생활했지만, 파리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작품은 그가 1750년 살롱(Salon) 전시회에 출품한 네 점의 그림 가운데 하나이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18세기 미술 애호가들은 이탈리아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술가와 수집가들은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의 보물들을 감상하기 위해 유럽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영국 귀족들에게 폼페오 바토니(Pompeo Batoni)의 초상화나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Giovanni Paolo Panini)가 그린 로마의 풍경화는 이러한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기념하는 매우 탐나는 기념품이었습니다.
매년 파리의 프랑스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는 가장 뛰어난 학생 몇몇을 선발하여 로마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이들은 수년간 그곳에 머물며 고대와 르네상스 미술을 모사했습니다. 루이 장 프랑수아 라그르네(Louis Jean François Lagrenée) 같은 화가들은 자신들이 직접 본 이탈리아 바르크 회화를 그대로 모방한 반면, 클로드 조제프 베르네(Claude-Joseph Vernet) 같은 이들은 이탈리아의 빛과 풍경을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동은 양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으로 인해 영국 후원자들의 베네치아 여행이 막히자, 카날레토(Canaletto)는 직접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9년 동안 영국에 머물며 영국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의 조카인 베르나르도 벨로토(Bernardo Bellotto) 역시 베네치아 풍경화의 전통을 북유럽으로 넓혀 드레스덴, 비엔나, 뮌헨, 바르샤바의 궁정에서 활동했습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출처>
- 안내문, The National Gallery, 2026년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공식 홈페이지 (https://www.nationalgallery.org.uk/), 2026.9.27. 검색
- ‘National Gallery’, wikipedia, 2027년
-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9.27 확인)
- OpenAI, <ChatGPT (GPT-5.3)>의 답변, 2026년 9월 27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