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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베트남 고대문명전]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과 농업의 발달

1. 청동북, 동선문화 상징2. 홍강 유역 청동기문화3. 동더우, 고문문화4.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 5. 동선문화 사람들6. 사후인문화7. 남비엣국, 동선문화의 전승

베트남의 고대 문화 중에서 잘 알려진 동선(Dong Son) 문화는 기원전 500~0년 사이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 형성된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청동기문화이다. 명칭은 1924년 발견된 홍강델타 하류의 타인호아 성에 위치한 동선 유적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선문화의 주거 유적이나 무덤에서는 주로 청동기, 무기, 장신구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에 해당하지만 의례에 사용한 제기를 비롯하여 청동기 제작기술이 매우 발달되었으며 제사를 위한 의례용 용기로 알려져 있는 청동 북은 동선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동선문화 시기의 청동기는 상당히 세련되고 발달된 모습을 보이는데 동선문화 사람들이 만들었던 청동기들은 타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중국 남부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동선문화 사람은 의례용 제기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청동제 도구들을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석기와 철기를 많이 사용하고 청동기는 의례용으로 제작했던 한반도와는 달리 베트남에서 구리가 풍부하게 생산되었던 보인다.

베트남 최초의 국가는 반랑국(Van Lang,文郞)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기원 3000년 경에 국가를 세웠다는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다. 실제 반랑국은 동선문화와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7세기에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랑국은 뛰어난 청동 주조기술을 바탕으로 홍강 유역의 비옥한 농토에 기반한 쌀 경작 중심의 경제였다. 반랑국은 기원전 3세기에는 툭판(Thuc Phan)에 의해 멸망하고 어울락(Au Lac)국이 세워졌다. 어울락국은 기원전 111년에 전한의 무제의 의해 멸망하고 이후 1000년간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받는다.

<청동기 동선문화시기 국가의 성립을 보여주는 각종 무기류들.>


<1.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의 청동검을 우리나라의 비파형동검이나 한국형동검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칼의 몸통과 손잡이를 함께 주조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청동 검과 제작 방식이 다르다. 칼날의 형태가 독특하며, 날의 양면과 손잡이 부분에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2.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손잡이가 투조로 장식된 칼이다. 날의 형태가 버들잎 모양이며, 중앙에 문양이 있다. 이 칼도 손잡이를 함께 주조한 일체형으로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1.꺽창(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유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표면에 세밀하게 장식을 하고 있다.

꺽창은 전투에서 마차나 말을 탄 적을 끌어내리기 위해 고안된 무기이다. 동선 시기에 실제 사용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표면에 동물이 새겨져 있고 투조(透彫)로 장식되어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처:중앙박물관>

<2.창(동선, 타안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2.창(동선, 타안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창의 길이가 비교적 짧은 편이고, 거푸집에 용액을 부어 만드는 주조(鑄造)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자루가 끼워지는 공부의 끝이 ‘-‘자형인 것과 제비꼬리처럼 갈라진 연미형(燕尾形)으로 구분된다.

<3.화살촉(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투겁이 달려 있는 청동 화살촉이다. 촉의 머리는 삼각형으로 꼬리처럼 미늘이 달려 있다. 투겁에는 화살대에 고정시키기 위한 고정용 구멍이 뚫려있다. 동선 시기 제작된 장거리 공격용 무기이다.


<4.사람모양 손잡이 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사람모양의 장식이 있는 손칼로 발달된 청동기 제작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동선문화의 대표적인 장식 손칼이다. 사람 모양 손잡이가 부착된 형태로, 당시 동선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남자상은 윗옷을 입지 않고, 바지인 ‘코(Kho)’를 입었다. 여자상은 치마와 저고리인 ‘엠(Yem)’을 입었다. <출처:중앙박물관>

<5.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 문화의 청동 손칼이다. 구멍을 뚫어 장식하는 투조기법으로 장식된 것과 장식없이 실용성이 강조된 두가지 형식이 있다. 날과 손잡이가 연결된 일체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6.가슴걸이(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청동판으로 제작된 사각형 가슴걸이는 전투에서 가슴부분을 보호해 주는 방어용 무기이다. 형태에 따라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으로 구분되며, 가장자리에 끈을 연결하여 고정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베트남 동선문화를 대표하는 청동기 형태인 발모양 도끼이다. 동선시기에 가장 유행한 청동도끼는 발모양 도끼이다. 발모양 도끼는 버선모양의 날과 투겁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날의 형태에 따라 삼각형, 사각형, 곡선형 등이 있다. 날의 겉면에는 사람, 사슴, 악어 등의 동물 그림을 새겨 넣었다.

<1.도끼(동선,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발모양도끼에 새겨진 장식>

<1.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3.끌(타우두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4.집게(푸쑤엔, 하노이시,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5.못(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6.가래(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홍강 평야와 농경
홍강 유역에는 1,500㎢에 달하는 너른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동선 사람들은 농경에 필요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비옥한 홍 강 삼각주로 이주하며 저습지 개발을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홍수와 바닷물이 농지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제방을 쌓았으며, 수로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고, 배수시설도 설치하였다. 동선 사람들은 소로 논을 갈았으며, 볍씨 뿌리는 시기를 조절하고 관개(灌漑)도 하였다. 또한 겨울에 파종하여 봄에 수확하는 겨울벼가 보급되면서 2모작도 가능해졌다. 벼농사가 발달함에 따라 홍강 삼각주 주변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기원후 2년 시행된 군현의 인구조사에서 홍강과 마강 유역의 호수는 128,174戶.912,250인으로 조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선문화 사람들의 농경생활을 보여주는 농기구와 토기들>

<쟁깃날(티우도용,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 사람들이 실생활에서도 많이 청동기를 많이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로 한반도에서는 철로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청동기시대에도 청동기는 의례용 기기로 사용되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지역에서는 구리가 상당히 많이 생산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쟁깃날(티우도용,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농경사회의 동선 사람들은 청동으로 다양한 농기구를 만들었다. 둥근 대형 쟁깃날은 소가 끄는 용도이고, 소형의 마름모꼴과 원형의 쟁깃날은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청동쟁기와 황소.물소를 이용한 우경이 보급되면서 농업생산성이 증가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소형 낫(고문, 푸토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석기로 만든 한반도의 반달모양 돌칼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도구이다. 한반도에서는 철기시대 초기까지 석기를 사용했던데 반해 청동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조개 모양으로 생긴 소형 낫은 우리나라의 반월형 돌칼과 같이 칼 등을 한 손에 움켜쥐고 이상을 자르는 수확용이다. 손에 움켜쥐기 쉽도록 단면에 곡률이 있으며, 톱니와 같은 날이 형성되었다. 끈을 묶을 수 있는 구멍도 뚫려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낫(고문, 푸토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에서 처음 나타난 형식이다. 자루와 연결되는 공부(鞏部)가 함께 주조되어 자루를 끼워 넣은 방식이다. 날 중앙에 돌출된 등날을 만들어 날의 강도를 높였다. 동선 시기 청동 낫 사용은 보편화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선토기, 두옹코(Duong Co)토기
동선토기는 그릇을 빚을 때 사용하는 점토가 매우 엄선되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입자가 고운 흙을 사용하여 기벽이 단단하고, 물이 잘 투과되지 않았다. 그릇의 입은 넓게 벌어지고, 둥근 동체로 이어지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토기표면의 색조는 붉은 색을 내거나 회색을 띠며, 새끼줄무늬와 바둑판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당시 두옹(Duon)천 주변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홍강 유역의 동선 토기를 대표하였지만, 이후 중국 제도(製陶)기술이 베트남에 유입되고 도기(陶器)의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동선토기의 제작 전통은 도자기로 전화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1.새모양토기(해남 군곡리 BC 100년, 토제), 2.새모양토기(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3.항아리(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4.단지(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5.사발(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6.항아리(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국가의 성립
비옥한 평야지대인 홍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당시 부족들 사이에 많은 전쟁이 있었다. 동선 사람들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청동기로 창, 화살, 검 등의 공격용 무기와 가슴보호구와 같은 방어용 무기를 만들었다. 이 홍강 유역에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랑(Van Lang)국이 세워진다. 당시 반랑국은 15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부족연맹체 사회로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처럼 흥브엉(Hung Vuong)의 건국신화가 전해지고있다. 하지만 반랑국은 당시 홍강 삼각주 일대에서 백월족(百越族)의 세력을 규합한 툭판(Thuc Phan)에 의해 기원전 257년 멸망하고, 툭판은 어울락(Au Lac)국을 세웠다. <출처:중앙박물관>

* 반랑국(Van Lang, 文郞): BC 690~BC 257년, 홍브엉(Hung Vuong, 雄王):반랑국의 시조
* 어울락국(Au Lac, 甌雒):BCE 257~179년, 툭판(Thuc Phan, 蜀泮):어울락 국의 왕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