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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청계서원, 조선중기 문신 김일손을 모신 서원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남계사원 부근에 위치한 청계서원이다. 연산군 때 학자인 김일손을 기리기 위해 1907년에 세워졌다. 강당을 중심으로 강학공간이 낮은 곳에, 사당을 높은 곳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남계사원과 거의 비슷하게 지어졌는데 건축적 측면에서 완성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함양 청계서원>

연산군 때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었던 사초에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넣었던 김일손을 모신 서원이다. 1907년에 세워졌는데 옆에 있는 남계서원과 거의 비슷한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유허비>

이곳은 김일손이 잠깐 머무르면서 후학을 양성했던 ‘청계정사’가 있던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한 유허비가 먼저 세워졌다가 서원으로 확장되었다.

<청계서원 홍살문과 외삼문>

<강당>

강학공간의 중심이 되는 강당. 앞면 4칸 규모의 건물로 가운데 2칸은 넓은 대청마라,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강당 대청마루>

지역 유림들이 회의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재에 해당하는 건물>

온돌방 1칸과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청계서원은 제향기능만 가지는 서원으로 실제로는 손님들이 잠깐 머무는 정자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편에 위치한 동재>

누마루를 판벽으로 막아 놓고 있다.

<사당 내삼문>

김일손(1464~1498년)은 조선 성종~연산군대 활동한 학자이자 관리로 남계사원에 모셔진 정여창과 함께 김종직의 제자였다. 그는 사관으로 김종직의 ‘조의제문’이란 글을 사초(史草)에 넣어 무오사화 때 희생되었다. 한때 이곳에서 ‘청계정사’를 세후고 후학들을 양성했다고 하여 지역 유림들이 그를 기리는 유허비와 서원을 세웠다. 목천 도동서원과 청도 자계서원에 모셔졌다.

<청계서원 사당>

김일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함양 청계서원>

<서원 관리인의 살림집>

<서원 담장>

<청계서원 앞 지나는 도로>

그 너머로 남강이 흐른다.

함양 청계서원,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이 서원은 1907년에 청계정사(靑溪精舍)가 있던 터에 세워진 것으로, 탁영 김일손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다. 김일손은 성종 때 사림파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청요직을 두루 지냈으나 연산군 때 무오사화에 희생되었다. 그가 이곳 청계정사에서 한 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어 유림에서 그 터에 서원을 세운 것이다. 서원의 건물은 중앙에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기와집 형태의 강당이 있으며, 그 뒤쪽 높은 지대 위에 묘우(墓宇)인 청계사가 있고, 강당 앞으로 학생들이 거처하던 동재인 구경재와 서재인 역가재가 있다. 경내에는 탁영김선생유허비와 네모난 연못이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