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위치한 하동정씨고가 이다. 마을의 다른 저택들처럼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일렬로 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안채만 원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채 상량문에 1644년에 건물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마을의 대저택인 일두고택과 비슷한 시기에 사랑채를 당시 유행을 반영하여 새로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양의 대표적인 양반들의 세거지였던 개평마을의 명성에 걸맞게 이 집 주인은 성균관대 학장과 차관을 지냈다고 한다.
<함양 하동정씨 고가>
경남 함양군 개평마을 고택 중 하나인 하동정씨 고가이다. 원래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채와 작은 사랑채, 대문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자형으로 앞면 6칸의 상당히 큰 규모이다. 사랑채는 앞면 3칸으로 별당 또는 아래채 건물 규모이다. 원래 사랑채가 있던 자리는 잔듸와 정원수가 있는 넓은 마당으로 바뀌었다.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대문채>
<안에서 본 모습>
대문채는 양쪽에 1칸씩 판문이 달려있는 광으로 되어 있는데, 디딤돌이 있는 등 원래 구조로 볼 때 문간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 집을 수리할 때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채>
안채는 앞면 6칸 규모로 ‘-‘자형으로 되어 있어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지붕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건물 양쪽에 부섭지붕을 달았다.
<옆에서 본 모습>
건물 주위로 반칸 정도 툇마루를 달아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 툇마루>
<마당 한쪽편에 있는 사랑채>
실제 양반가 대저택의 사랑채와는 거리가 먼 형태나 규모이다. 아래채나 작은 별당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뒤에서 본 모습>
<개평마을 하동정씨 고가 마당>
개평마을은 안동과 함께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함양의 대표적인 양반들이 세거지이다. 하동정씨, 풍천노씨와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다. 조선중기 유학자이자 문신인 일두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일두고택, 풍천노씨 대종가, 오담고택을 비롯하여 많은 전통 한옥들이 남아 있다. 개평(介坪)이란 말은 두개의 하천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마을 특산물로는 정여창 종가에서 손님을 접대했던 지리산 솔송주가 있다.
<대문채 앞 골목길>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 경남 하동군 지곡면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는 1880년에 지은 집으로서 당초 건립시에도 사대부가의 저택답게 사랑채를 비롯한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모두 훼철되고 현재의 모습만 남아 있다. 특히 안채는 남도의 특징인 ‘-‘자형 건물에 개방형이며, 정면 6칸 측면 1칸에 전후퇴를 두었으며, 맞배지붕에다가 부섭지붕을 하였다. 건물 배치 방식에서 조선후기 남부지방 상류주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좋은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크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며, 본 고택의 소유자인 정병조선생은 성균관대 학장과 문공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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