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 중 하나인 오담고택이다. 구한말인 19세기에 지어진 저택으로 건물 상량문에 건축연대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남부지방 양반가 저택의 형태가 잘 반영된 고택으로 건물은 ‘-‘자형으로 지어진 안채와 사랑채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마당을 넓게 쓰고 있어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정여창의 후손인 오담 정환필이 종가에서 분가하면서 이 집을 처음 지었다고 한다. 구한말 건축양식과 남부지방 양반가 저택의 형태가 잘 반영된 고택이다.
<함양 오담고택>
구한말 정여창 후손이 분가하면서 지은 고택으로 당시의 건축양식 등이 잘 반영되어 있다.
<뒤에서 본 모습>
앞쪽에 사랑채, 뒷편에 안채가 배치되어 있으며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사랑채>
사랑채는 앞면 5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옆쪽에 반칸 정도 툇마루를 두어 누마루와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안채 출입문>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담장을 쌓고 별도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안채>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개평마을은 안동과 함께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함양의 대표적인 양반들이 세거지이다. 하동정씨, 풍천노씨와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다. 조선중기 유학자이자 문신인 일두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일두고택, 풍천노씨 대종가, 오담고택을 비롯하여 많은 전통 한옥들이 남아 있다. 개평(介坪)이란 말은 두개의 하천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마을 특산물로는 정여창 종가에서 손님을 접대했던 지리산 솔송주가 있다.
<오담 고택 앞 골목길>
함양 오담고택,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오담고택은 종두리에 기록된 상량문에 의해 사랑채가 1838년, 안채는 1840년 등 건립 연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전.후퇴 집으로 기단은 자연석을 3~4단 쌓고 그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모두 방주이며 약한 민흘림을 적요한 점 등 조선후기 주거건축의 양식과 가구기법을 볼 수 있는 건물로서 종가에서 분가한 양반계층의 주거형태를 볼 수 있는 건물이다. 오담 정환필(1798~1895년)선생은 일두 정여창 선생의 12대 후손으로 생전에 경로효친 정신을 제일 덕목으로 실천하였으며, 성균관에서 동문 수학한 노사(기정진, 1798~1876년)선생과 함께 남계서원의 “풍영루”에 대한 글을 찬술하여 일두 정여창 선생의 높은 학문적 경지를 재조명하는 등 조선후기의 문장력이 특출한 학자였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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