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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승안사지, 고려시대 삼층석탑과 석조불상이 남아 있는 절터

경남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 북쪽 승안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시대 사찰이었던 승안사(昇安寺) 절터이다. 조선초 이곳에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절터에는 고려초에 조성된 삼층석탑(보물)과 높이 2.8m의 거대한 고려시대 석조불상 외에는 특별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1962년 탑을 옮기는 과정에서 조선중기인 1494년에 중수했다는 내용이 적힌 문서가 발견되어 이때까지 사찰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함양 승안사 절터>

경남 함양군 수동면 승안산 기슭에 위치한 승안사 절터. 고려초에 조성된 삼층석탑과 석조불상이 이곳이 절터였음을 말해준다. 절터 오른쪽 능선에는 정여창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오른편에는 집안 재실이 있다.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고려 초에 조성된 석탑으로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과 1층 몸돌에 부조상을 새겨놓고 있는 등 통일신라 말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조선중기에 탑을 옮겼다는 글이 적힌 종이와 사리함 등이 출토되었다. 현재의 위치는 원래 탑이 있던 자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리함과 구슬>

조선 성종 때 탑을 옮기는 과정에 봉안한 것으로 보이는 사리함과 구슬(국립진주박물관 소장.전시). 1962년 탑을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출토되었다.

<사리병과 반지>

<사찰 건물이 있던 자리>

사찰 건물들이 있던 자리는 농경지로 사용하고 있고,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옛 모습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절터 뒷편>

절터에는 조선초 문신이자 학자로 남계서원에 모셔진 정여창의 묘소를 비롯하여 집안 재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 정여창이 승안사에 어머니 산소를 쓰고자 했으나 사찰 승려들이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후 정여창을 비롯하여 후손들의 무덤이 절터 주변에 자리잡았다. 이후 승안사가 폐사된 것으로 볼 때 지역의 유력가문인 정여장 후손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 옆 재실>

절터 옆에는 정여창 집안 재실 건물과 살림집이 자리잡고 있다.

<석조불상이 모셔진 곳>

재실 안쪽에는 고려초에 조성된 거대 석조불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있던 불상이 있는 자리는 아니고 땅에 묻혀 있던 것으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석조 불상>

높이 2.8m 의 거대 불상으로 얼굴은 크고 몸체는 왜소하여 신체의 비례가 맞지 않는다. 고려 초 지방호족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거대 석조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묘역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재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