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삼릉곡 6번째 절터 뒷편 큰 바위에는 얼굴부분만 선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상과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있다.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석가여래가 도를 깨닫는 순간을 표현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약사여래는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로 둥근 약단지를 들고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광배에는 불상과 꽃무늬, 불꽃무늬로 화려하게 장식고 있으며 대좌에는 향로와 공양천인상을 새겨놓고 있다. 신체의 표현이나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화려한 광배 장식 등 9세기 불상의 특징도 같이 가지고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
<불상 부분>
<오른쪽에서 본 모습>
남산 삼릉계곡 6번째 절터 언덕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옮겼다고 한다. 광배에 불상과 불꽃무늬, 꽃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불상을 올려 놓은 연화대좌.>
<대좌 안상에 새겨진 공양인상과 화로 등>
<불상이 있던 자리>
경주 남산 삼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 통일신라,9세기,
이 불상은 원래 경주 남산 삼릉곡 정상 가까이에 있는 마애대불 건너편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항마촉지인의 손갖춤을 하고 있는 약사불로 근엄하면서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통통한 얼굴, 건장한 신체, 얌전하게 흘러내린 계단식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절정기인 8세기 불상의 여운이 보인다. 그러나 침울한 얼굴표현, 생감감이 둔화된 웅크린 자세, 화려하고 장식적인 광배와 대좌 등 9세기 불상의 특징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든 불상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남산 삼릉계곡 6번째 절터 뒷편에 이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부근에서 기와 등이 발견되어 원래 불전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애선각여래좌상>
<절터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
삼릉곡 제6사지 마애선각여래좌상과 석조약사여래좌상터
석조여래좌상 뒤쪽 30 m 바위 절벽 면에 얼굴부분만 선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상이 있다. 부드러운 선으로 새겨진 원만한 상이다. 바위 면에 비하여 불상이 너무 커서 본래부터 완전한 모습의 상은 아니었던 듯하다. 바위속에 숨어 있던 부처님이 이 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 반겨주는 모습은 아닐까? 이 바위의 오른쪽 바위 절벽 중턱에는 1915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있었다.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어 작은 전각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출처>
- 안내문, 국립중앙박물관, 2016년
-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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