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구리 동구릉 건원릉(健元陵, 사적),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능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사적)에 있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1335~1408년, 재위 1392~1398년)의 무덤인 건원릉(健元陵)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에 이어 두번째로 조성되었다. 태조가 승하한 이후 풍수지리 등을 고려하여 명당자리를 찾아 6천여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조성되었다. 건원릉은 고려 왕릉의 제도를 받아 들이면서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공민왕의 헌정릉 양식을 많이 따랐으며 내부는 석실로 만들었다. 하지만 봉분 주위에 곡장으로 두르고 석물의 배치 등이 이전 고려왕릉과 다른 독자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부분도 있다.

건원릉은 태종이 풍수지리설을 받아들여 조성한 동구릉은 뒷편 검암산을 주산으로 하고 좌우 지형이 청룡과 백호의 산세를 하고 있으며 남쪽의 안산을 바라보도록 능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에는 잔디가 아닌 억새풀로 덮여 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함흥에서 흙을 가져와 봉분을 조성하고 억새로 덮었다고 한다. 왕릉 앞 제사를 모시는 정자각(보물)은 왕릉이 조성할 때 처음 세워진 것으로 후대 정자각의 표준이 되는 건물이다. 건원릉의 원찰은 개경사이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구리 동구릉 건원릉>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무덤으로 후대 왕릉의 모범이 되었다. 고려 공민왕 헌정릉의 형태에 영향을 받았다. 후대 왕릉과는 달리 봉분 내부는 석실로 되어 있으며, 비각에서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왕릉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

신성구역임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놓은 구조물이다. 안쪽에 왕이 절을 올린는 판석이 깔린 배위(拜位)가 있다.

<참도>

홍살문 안쪽에서 제사를 올리는 건물인 정자각까지는 참도로 연결되어 있다. 가운데에는 혼령이 다니는 신도(神道)이며 작은 길은 국왕이 다니는 어도(御道)이다. 궁궐 정전 앞 마당과 마찬가지로 자세를 단정히 가질 수 있도록 거친 박석을 깔았다.

<월대 계단>

참도는 정자각 월대 옆면으로 연결된다.

<건원릉 정자각(보물)>

왕릉에서 제사를 올리는 공간이다. 건릉릉을 조성할 때 같이 세워진 건물로 여러 차례 수리를 했지만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조선의 법전인 <국조오례의>에 정의된 정자각의 표준이 된 건축물이다.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건물로 앞쪽에 월대가 있어, 그 위에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툇간을 달아내어 ‘丁’자처럼 생겼다고 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 내부>

뒷쪽 봉분을 향해 문이 열려 있으며, 내부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올린다.

<수복방>

왕릉을 관리하는 관리나 하인들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다.

<수라간>

제사를 준비하는 건물이다. 수복방과 수라간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재실에서 그 기능을 수행하면서 대부분 없어졌던 것을 최근에 복원되고 있다.

<정자각 뒷편에 위치한 비각>

후대 왕릉과는 달리 선왕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와 왕릉의 주인을 알려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왕릉의 주인을 알려 주는 표석>

고황제(高皇帝)란 글자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볼 때 대한제국 선포 이후 세워진 비석으로 보인다.


<태조 신도비(보물)>

태조 이성계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해 놓고 있다. 신도비는 조선초 왕릉에만 볼 수 있다. 조선중기 이후 왕릉에서는 신도비는 없고 비석만 세워진다.

<봉분>

뒷편 검암산을 주산으로 하고 좌우 지형이 청룡과 백호의 산세를 하고 있으며 남쪽의 안산을 바라보도록 능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에는 잔디가 아닌 억새풀로 덮여 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함흥에서 흙을 가져와 봉분을 조성하고 억새로 덮었다고 한다.

동구릉(사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1408년에 승하하면서 조성한 건원릉을 중심으로 역대 왕과 왕후의 능 9기가 조성되어 있다. 동구릉에는 한 분만 모신 단릉, 두분을 모신 쌍릉, 한곳에 산줄기를 달리해서 모신 동원이강릉, 두분을 함께 모신 합장릉, 세분을 나란히 모신 삼연릉이 있어 다양한 모습의 왕릉을 볼 수 있다. 동구릉에 왕릉을 조성한 왕으로는 태조를 비롯하여 5대 문종과 왕비, 14대 선조와 왕비,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18대 현종과 왕비, 21대 영조와 왕비, 추존왕인 문조와 왕비, 24대 헌종과 왕비이다.

<동구릉 입구 재실>

동구릉은 건원릉을 포함하여 9기의 왕릉이 모여있는 곳으로 입구에 큰 재실을 두어 왕릉을 통합하여 관리하고 있다.

<금천과 금천교>

능역과 바깥세상을 분리해 주는 작은 개천과 다리. 궁궐과 마찬가지로 금천과 금천교라 부른다.

<건원릉의 관리 이력을 기록해 놓은 건원릉지(健元陵誌)>

태조 건원릉
조선 제1대 왕인 태조(1335~1408)는 함경도 영흥에서 태어났고, 1392년에 조선을 창건한 후 1408년에 돌아가셔서 이곳에 안장되었다. 태조 건원릉은 조선을 창업한 군주의 무덤답게 동구릉 중에서 유일하게 이수와 귀부를 갖춘 대형 비석 2기가 세워져 있다. 본래 태조는 먼저 돌아가신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을 도성 안에 조성하면서 자신이 묻힐 터로 삼았으나, 태조의 아들인 태종이 이 지역에 건원릉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건원릉을 관리하기 위하여 재궁으로 개경사를 세워 태조의 명복을 빌었다. 태조는 돌아가실 때 자신의 무덤에 고향에서 나는 억새를 심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건원릉에만 봉분에 억새가 심어져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