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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태조 건원릉 정자각(보물), 조선 왕릉 건축의 표준이 되었던 건물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건원릉에 있는 정자각(보물)이다. 정자각은 왕릉에서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고려시대 능제의 하나였다. 1408년(태종8)에 태조가 승하한 후 왕릉을 조성할 때 공민왕 현릉의 제도를 참조하여 지어진 건물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후 처음으로 조성된 왕릉의 정자각으로 여러차례 중수를 하기는 했으나 <국조오례의>에 정의된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건물은 장대석으로 쌓은 월대에 올려 놓고 있다. 제사를 올리는 공간인 앞면 3칸, 옆면 2칸의 정전과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툇간인 옆면 2칸의 배위청이 결합하여 전체적으로 ‘丁’모양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익공을 하고 있는데 건물을 크게 중수했던 영조대(18세기)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왕릉 정자각의 표준이 되었던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보물)>

조선왕릉의 표준이 되었던 건축물로 고려 공민왕 현릉의 제도를 참조하여 조성되었다.

<정전과 배위청>

건물은 앞면 3칸의 정자각과 복도 형태의 배위청이 연결되어 ‘丁’자 모양을 하고 있다. 정전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쪽과 뒤쪽 가운데 칸에는 문을 달았으며, 옆면과 뒷편 양쪽칸은 벽면을 하고 있다.

<월대와 계단>

건물은 큰 장대석을 4단으로 쌓은 월대 위에 올려 놓고 있다. 홍살문에서 월대 옆면까지 참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월대 옆쪽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정자각 내부>

복도형태의 배위청과 정전에는 전돌을 깔아 놓고 있다. 봉분이 있는 뒷편에 문을 달아서 혼령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전 창호>

문살은 장식적인 효과가 거의 없는 단순한 띠창살을 하고 있다.

<공포와 추녀>

지붕을 받치고 있는 공포는 익공계를 하고 있다. 이 건물을 수리했던 18세기 건축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이다.

<추녀마루에 올려진 잡상>

<뒤에서 본 모습>

건원릉(健元陵)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1335~1408년, 재위 1392~1398년)의 능으로 구리 동구릉(사적)에 자리잡고 있다. 태조가 승하한 이후 풍수지리 등을 고려하여 명당자리를 찾아 6천여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조성되었다. 고려 왕릉의 제도를 받아 들이면서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공민왕의 헌정릉 양식을 많이 따랐으며 내부는 석실로 만들었다. 하지만 봉분 주위에 곡장으로 두르고 석물의 배치 등이 이전 고려왕릉과 다른 독자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부분도 있다.

<구리 동구릉 건원릉>

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 보물, 경기 구리시 인창동
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은 태종 8년(1408)에 건원릉과 함께 건립되었다. 그 후 여러차례 수리를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건원릉 정자각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제향을 모시는 상싱성도 있지만, <국조오례의> 중 길례의 단묘도설과 비교할 때 건립 당시의 기본적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조선왕릉 조영제도에 있어서 정자각의 표준이 된 건축물로서 그 가치가 크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