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사적)에 있는 현릉(顯陵)이다. 세종의 맏아들로 훈민정음 창제를 돕고, 세자시절 많은 업적을 남긴 조선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이다. 동구릉 건원릉 동쪽 언덕에 봉분이 나란히 배치된 동원이강릉이다. 세조때 만들어져 예종 때 반포된 <국조오례의>에 따라 조성된 가장 오래된 왕릉이다. 문종의 능은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으나, 현덕왕후는 왕비가 되기 전에 단종을 낳은 직후 죽어 경기도 안산의 소릉에 안장되었다. 이후 단종의 복위사건으로 세조가 다른 곳에 옮겼다가 중종 8년(1513)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원찰은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구리 동구릉 현릉>
세종대왕의 큰아들로 세자시절 많은 업적을 남긴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이다. 원래 세종의 영릉 부근에 안장할려고 했으나 물이 나오는 등 풍수적으로 좋지 않아 태조의 건원릉 동쪽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중종 때 다른 곳에 있던 현덕왕후의 능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동원이강릉이 되었다.
<홍살문>
참도가 홍살문 바깥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옆에 절을 올리는 절을 배위가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지형적 환경 등을 고려하고 ‘ㄱ’자로 꺽여서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연결된다.
<산릉제례를 올리는 건물인 정자각>
잘다듬은 화강석 석재를 4단으로 쌓은 월대 위에 제사를 올리는 정전과 툇간인 배위청이 연결되어 ‘丁’자 모양을 하고 있다. <국조오례의>에 따른 정형화된 정자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정자각 내부>
정전 뒷문을 열어 두어 혼령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복방>
<표석이 세워진 비각>
<정자각 뒷편 언덕에 있는 문종의 능>
<옆쪽 언덕에 위치한 현덕왕후의 능>
중종때 현덕왕후가 복위되면서 안산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동구릉(사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1408년에 승하하면서 조성한 건원릉을 중심으로 역대 왕과 왕후의 능 9기가 조성되어 있다. 동구릉에는 한 분만 모신 단릉, 두분을 모신 쌍릉, 한곳에 산줄기를 달리해서 모신 동원이강릉, 두분을 함께 모신 합장릉, 세분을 나란히 모신 삼연릉이 있어 다양한 모습의 왕릉을 볼 수 있다. 동구릉에 왕릉을 조성한 왕으로는 태조를 비롯하여 5대 문종과 왕비, 14대 선조와 왕비,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18대 현종과 왕비, 21대 영조와 왕비, 추존왕인 문조와 왕비, 24대 헌종과 왕비이다.
<동구릉 재실>
문종.현덕왕후 현릉, 사적, 경기 구리 인창동
조선 제5대 왕인 문종(1414~1452, 재위 1450~1452)은 세종의 맏아들이며, 단종의 친아버지이다. 문종은 1421년(세종3) 왕세자가 되었고, 1450년 세종이 돌아가신 해 왕위에 올랐다. 임금자리에 있던 기간이 짧았지만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여러 책을 간행하였으며 39세의 젋은 나이에 경복궁 강녕전에서 돌아가셨다. 현덕왕후(1418~1441)는 1437년(세종19) 세자빈에 오르고, 1441년(세종23) 단종을 낳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실때 시호를 ‘현덕’으로 삼아 현덕빈으로 불리다가 문종이 즉위하면서 ‘현덕왕후’로 추승하였고, 무덤의 이름을 소릉으로 정하였다. 본래 현덕왕후의 능은 1441년에 경기도 안산 지역에 있었다. 그러나 세조가, 문종과 현덕왕후의 아들인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후에 현덕왕후의 집안에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반대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현덕왕후를 폐위시켰다. 그 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 1513년(중종8)에 현덕왕후의 훼손된 무덤을 현 지역으로 모셔 문종 현릉과 동원이강 형식으로 조성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답글 남기기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