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한 영릉(寧陵, 사적)이다. 조선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으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에서 북동쪽으로 700여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왕과 왕비의 능이 상하로 조영되어 있는 동원상하릉으로 조성된 최초의 사례이다. 왕릉을 두르는 담장인 곡장은 위쪽 왕의 능에만 있다. 또한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금천이 흐르며, 참도 중간에 금천교가 있다. 원래 구리 동구릉 건원릉 서쪽편에 있던 것을 현종 때(167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당시 석물에 틈이 있어 봉분안으로 비가 샐 염려가 있다는 여론이 있어서 능을 옮기기는 했는데, 실제로 별 문제가 없어 이에 연루된 인사들이 면직을 당했다. 조선시대 산릉의 조성과 천장 등에 관련하여 정치 세력간 대립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여주 영릉(사적)>
세종대왕 영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동구릉에 있던 것을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현재의 위치로 능을 옮겼다. 당쟁이 극심했던 조선후기 정치상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홍살문>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가운데 금천이 흐르고 있으며, 세종의 영릉과 마찬가지로 삼도로 되어 있다. 1970년대 성역화하는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산릉제례를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
신도와 연결되는 계단이 안쪽에 있는 것이 다른 왕릉의 정자각과 다른 형태이다.
<정자각 내부>
<수라간>
<수복방>
그 앞으로 금천이 흐르고 있다.
<정자각 뒷편 표석이 세워진 비각>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다.
<봉분>
효종의 봉분은 위쪽에, 왕비의 봉분은 아래쪽에 배치한 동원상하릉이다. 봉분을 두르는 담장인 곡장은 왕의 봉분에만 있어 같은 능역임을 말해주고 있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아들로 봉림대군으로 봉해졌으며,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패한이후 볼모로 청나라 심양에 끌려가 8년간 머물렀다. 같이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인조의 미움을 받아 소현세자의 맏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자로 책봉되었다. 볼모생활 동안 설욕에 뜻을 두었기때문에 왕으로 즉위하자 북벌계획을 수립하고 군사를 양성하고 군비를 확충하였다. 당시 청나라는 국가의 세력이 강대하여 그 꿈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청나라에 따라 러시아 정벌에 군대를 파견하였다. 효종은 북벌을 꿈꾸었지만 당시 지배세력은 표면상 그의 북벌을 지지할 뿐 실질적으로 현상을 유지하는 기득권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었던 시기였다. 효종 사후 숙종.영조.정조가 기득권을 타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정조이후에는 세도정치하에 왕권이 추락하면서 조선은 멸망의 길로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영릉 재실(보물)>
재실은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왕릉 재실 중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영릉으로 들어가는 숲길>
여주 영릉, 사적, 경기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영릉은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능이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소현세자가 돌아가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649년 조선조 제 17대 왕으로 즉위하여 1659년에 승하하니 재위 10년에 춘주가 41세였다. 효종은 병자호날 후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청나라 심양에서 8년간 고초를 겪었는데 당시 조선 왕조가 당한 굴욕은 씻을 수 없는 민족의 한으로 생각했다. 왕위에 오른 후 효종은 이 수치를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여 대내적으로는 대동법을 실시하고 화폐를 널리 보급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북벌 계획을 추진하여 성채를 쌓고 총수병을 양성하여 국방력을 강화하였다. 이즈음 러시아가 시베리아쪽으로 남진하자 청나라는 조선에 원병을 청하였다. 이에 왕은 우리 군대의 능력을 시험하고 청나라의 군사 정세를 탐지하고자 두 차례에 걸쳐 나선정벌 원정군을 보내어 송화강, 흑룡강에서 러시아군을 크게 격판하였다. 그러나 북벌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갑자기 승하하여 그 뜻을 펴지 못하였다. 영릉은 원래 경기도 양주(현 구리시)의 건원릉 서쪽에 있었던 것을 현종 14년(1673)에 여주로 옮겨왔으며, 효종의 이 북벌웅지를 기리고자 1977년 경역을 정비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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