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신도동 서오릉(사적)에 있는 홍릉(弘陵)이다. 조선 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가 모셔진 능으로 서오릉에서 가장 후대에 조성되었다. 영조는 이곳에 왕비의 능을 조성하면서 그 옆에 자기가 묻힐 자리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쌍릉 형식이 반영되어 있다.
정성왕후는 영조가 연잉군시절에 결혼하여 66세에 죽었는데, 왕비시절에 선왕인 숙종과 경종의 부인을 잘 모시고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최씨를 모시는 사당인 육상궁을 세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왕자를 낳지 못했지만 영조와는 상당히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는 숙종과 왕비들의 능이 있는 서오릉에 자신의 능을 조성하여 숙종을 잇는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이곳에 정성왕후의 능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정조는 사도세자를 죽게한 영조에 섭섭한 감정이 있었던으로 보이며, 계비인 정순왕후 또한 영조와 같은 곳에 묻힐 의도가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 능을 조성하지 않고 구리의 동구릉에 영조의 능을 조성하여 그의 바램을 꺾었다.
<고양 서오릉 홍릉>
서오릉 안쪽에 위치한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홍릉. 영조가 자신이 묻힐 자리로 조성한 곳이다. 정성왕후는 영조와 연잉군시절에 결혼하여 66세에 죽었기때문에 일반인들에 비해서도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부부로 살아왔다. 선왕인 숙종과 왕비들의 능이 있는 서오릉에 상당히 정성스럽게 능을 조성하였다. 사도세자가 죽음을 당한것도 정성왕후가 죽은 이후인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는 왕실내 가족관계를 상당히 원할하게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홍릉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산릉제례를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
<정자각 내부>
<정자각 뒷편 표석이 세워진 비각>
<홍릉 봉분>
영조는 왕비의 능을 조성하면서 그 옆에 자신이 묻힐 자리를 가묘형태로 만들어 놓았기때문 전체적으로 쌍릉 형식을 하고 있다. 영조 때 재정리된 <국조상례보편> 왕릉제도가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고양 서오릉 홍릉, 사적, 경기 고양시 신도동
홍릉은 조선 21대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이다. 왕후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경종 원년(1721)에 세제빈이 되었고, 1724년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왕후는 자손이 없이 영조 33년(1757)에 66세로 창덕궁에서 돌아가셨다. <출처: 문화재청>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소재한 서오릉은 예종의 창릉과 숙종의 명릉을 비롯하여 많은 조선왕실을 능원이 조성된 곳으로 태조의 능이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많은 능원이 있는 곳이다. 서오릉은 1457년(세조3)에 의경세자가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세조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길지로 추천된 이 곳에 안장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세조가 터를 잡은 곳으로 그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과 왕비의 능이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창릉은 서오릉에서 왕릉으로는 처음 조성되었다. 서오릉의 원찰로 부근에 수국사가 있다.
<서오릉 재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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